기내에 비키니 모델을

등장시킨 항공사에

비난 쏟아져

 

베트남 U-23 축구 대표팀이 귀국하는 기내에서 비키니 쇼를 벌이는 모습. ⓒ영상 유튜브 캡처-작성자 K Channel
베트남 U-23 축구 대표팀이 귀국하는 기내에서 비키니 쇼를 벌이는 모습. ⓒ영상 유튜브 캡처-작성자 K Channel

2018 아시아 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대회에서 보여준 축구 대표 팀의 선전에 온 베트남이 열광에 휩싸였다. 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에서도 축구 변방으로 불리던 베트남이 이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실시간으로 기사화되었고 귀국에서부터 카퍼레이드, 축하 갈라 쇼까지 연일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정부는 선수와 감독에게 1급과 3급의 노동 훈장을 수여했고 기업들이 마련한 포상금도 쏟아졌다.

그런 가운데 베트남 축구 대표 팀이 다시 한번 화제에 오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의 귀국 편을 후원한 비엣젯 항공사가 기내에서 비키니 환영행사를 벌이는 영상이 SNS를 통해 유출된 것이다.

사건이 보도되자 베트남 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the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는 진상 조사에 착수했고 베트남 항공청(the Civil Aviation Administration of Vietnam)은 항공 안전을 어겼다는 이유로 항공사에 4,000만 동(약 19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현지 대중의 반응도 좋지 않다. 해당 기사에는 ‘무엇으로도 정당화되지 않는 행동이다.(H****)’.‘베트남의 미풍양속은 어디로 가버렸는가?(N*****)’.‘여성의 몸은 남성에게 봉사하는 도구가 아니다(T***)’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패널들이 비키니 쇼의 적법성과 처벌 수위 등을 두고 토론회를 펼쳤고 싸구려 마케팅에 동조할 수 없다며 전국적으로 비엣젯 항공 불매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이 꾸웅 버이(Tôi cũng vậy) : 베트남어로 ‘나 역시 그렇다’는 의미로 
#미투의 베트남식 표현이다. ⓒ송수산
또이 꾸웅 버이(Tôi cũng vậy) : 베트남어로 ‘나 역시 그렇다’는 의미로 #미투의 베트남식 표현이다. ⓒ송수산

기내 비키니 쇼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

이런 움직임은 여성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베트남 사회에서 이례적인 현상으로 분석된다. 사실 작년 10월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too)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번져나갈 때만 해도 베트남에서의 미투 운동은 미비한 수준에 그쳤다. 일각에서는 베트남의 보수적인 성 문화로 인해 성 범죄가 적은 것이 이유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통계는 이와 정반대의 상황을 보여준다.

UNFPA(United Nations Population Fund)가 2015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베트남 여성의 87%가 성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고 58%의 기혼 여성이 배우자로부터 폭력을 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중 대다수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저항 대신 침묵이 대세가 된 원인은 지원 부족, 정보 불충분 등과 주변의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어렵게 시작된 베트남의 미투 운동이 비엣젯 항공의 기내 비키니 쇼를 계기로 더욱 강하게 번져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하노이 저널리즘과 커뮤니케이션 아카데미(Academy of Journalism and Communication in Hanoi)의 팜 하이 쭝(Phạm Hải Chung) 교수는 사람들이 성차별을 자행하는 브랜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비키니 쇼에 관련되었던) 여성들에 대한 혐오 발언을 막아 준 여러 목소리들이 베트남에서의 #MeToo 운동에 영향을 주는 좋은 신호라고 평가했고, Mumbrella Asia(www.mumbrella.asia)의 보도에 따르면 루이스 피알(LEWIS PR)의 아시아 태평양 수석 부사장 스캇 펫텟(Scott Pettet)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으로 인해 이러한 착취가 더 이상 대중들에게 용납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또이 꾸웅 버이(Tôi cũng vậy) : 베트남어로 ‘나 역시 그렇다.’는 의미로

#MeToo의 베트남식 표현이다. 사진 송수산>

 

성을 상품화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로 인정돼야 하는가?

비난여론이 좀처럼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비엣젯 항공의 응웬 티 픙 타오( Nguyễn Thị Phương Thảo-이하 타오) CEO는 SNS를 통해 기내 비키니 쇼가 직원들의 즉흥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이었다고 서둘러 해명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해당 항공사가 2012년 유사한 행위로 1000달러의 벌금을 납부한 전력이 있는 데다 비키니 미녀들을 공공연한 마케팅 도구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1년 운항을 시작한 비엣젯 항공이 현재 하루 평균 300회 이상의 비행을 실시하며 국내선 시장점유율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한 데에는 이러한 비키니 마케팅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타오는 미녀 승무원들을 선발하기 위해 전국의 미인대회를 찾아다녔음을 자랑스레 이야기해왔고, 비키니 쇼의 선정성을 지적하는 여론에 비키니를 입는 것은 여성의 권리라고 일축하거나 고객이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변명으로 일관해왔다.

일부이긴 하지만 베트남 내에는 타오의 편에서 미모와 젊음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 개인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U-23 기간 중에 스트립쇼를 우승 공약으로 내거는 여성이 나타나기도 했고 기내 비키니 쇼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의견을 개진하는 이들도 있다. 특정 국적 소지자만 가입 가능한 어학교류 커뮤니티에는 외국 남성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려는 여성들의 노출 사진이 가득하다. 이들의 자발성은 때로 여성의 성을 상품으로 활용하는 것이 법적·도의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도록 만든다.

문제는 이러한 시선과 직접 마주해야 하는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발생한다. 사회의 편견과 왜곡된 시각에 맞서 싸우려는 여성들은 성 상품화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라고 믿는 이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힌다. 호찌민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땀과 노력으로 삶을 개척하고 있는 대다수 베트남 여성들은 없거나 미비한 존재로 감춰지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는데 베트남 여성이 쉽고 가벼운 존재라는 편견의 대상이 될까 봐 두렵다는 그녀의 고민은 여성들의 자발적인 비키니 쇼가 왜 자유와 권리로 보장돼선 안 되는지를 시사하고 있다.

 

젊은 여성들이 시작해 여러 계층으로 번져

다행스럽게도 현재 베트남의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들은 주변에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동참을 호소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을 하며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에도 베트남에는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시도해 볼 것이라는 그들에게 많은 이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으며 인터넷상에서 동참을 선언하는 남성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며 한 네티즌(T***)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건강한 경쟁을 하라, 우리를 이용하지 마라, 2018년을 살아가는 베트남의 고객들은 현명하다.’

삶의 주체로 대접받을 권리가 있는 현명하고 용기 있는 여성들에게서 시작된 베트남의 미투 운동이 훗날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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