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와 투자의 최대 적 ‘불확실성’

돈 값이 크게 떨어졌다. 호들갑스러운 언론은 사실상 금리가 없거나 마이너스라고도 한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벌써 몇 년째 제로 금리 정책을 펴왔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8월 넷째 주 미국의 중앙은행이라고 할 수 있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올해 들어 일곱 번째로 금리를 내려, 연방기금 금리가 3%에 육박하게 됐다. 그러니까 전 세계가 사상 유례 없는 저금리 시대에 돌입하게 된 셈이다.

이런 소식은 보통 사람들과 무관한 것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저금리를 실감하기조차 어렵다. 금리가 제로에 가까워졌다고 금융기관들로부터 돈을 거저 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쉽게 빌릴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금리가 싸지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뭔가 전과 다른 생각이 싹트는 것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야말로 오랜 세월 근대 경제학이 규명하고자 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많은 선진국들이 믿고 싶은 구석이기도 하다.

우선 금리가 낮아지면 미래를 대비해 저축을 할 이유가 적어진다. 빚 내기도 전보다 쉬워지니까, 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도 비슷하다. 돈 구하기가 수월해지는 데다가 사업을 확장할 이유도 생긴다. 금리 이상을 벌기가 전보다 쉬워져서다. 따라서 기업의 투자 의욕도 크게 증가한다.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면 경기는 다시 활기를 띄게 된다. 문제는 이런 경제학적인 논리가 전처럼 통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소비나 투자가 어느 정도 느는 효과야 있겠지만,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라는 얘기다.

왜 그럴까? 우리 주변부터 한 번 살펴보자. 뭔가 불안한 마음에 돈이 있어도 쓰지 못한다. 사람뿐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면 무작정 쓰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현금을 부둥켜안고 눈치를 보게 된다. 사람들은 금리가 아무리 내려도 증시에 투자를 안 한다. 미국 증시를 비롯해 세계 경제 자체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서다. 조만간 회복하게 될지, 아니면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지 누구도 모른다. 그 덕에 200조원이 넘는 막대한 자금이 여기 저기 떠돌거나 퇴장해 있다. 많은 직장인들이 노후를 걱정하게 됐다. 앞으로는 예금 이자로 생활할 수 없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서다.

이들은 돈이 생기면 생기는 족족 예금을 해두거나 현금을 챙겨두게 될 것이다. 금리가 낮으면 돈을 많이 쓰리라는 경제 원리가 안 통할 판이다. 이른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다. 우리가 이런 상황까지 간 것은 아닐지 몰라도, 그 초입(初入)에 이른 것은 분명하다.

일본이 금리를 제로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나아지지 않는 것도 유동성 함정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도 연방기금 금리가 3% 안팎에 이르면, 유동성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게 되면 FRB가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여력이 거의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금리를 낮추는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비와 투자가 제대로 되게 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부실 대기업 처리 문제를 포함해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보는 것도, 바로 이런 논리적 귀결 때문이다.

김방희/ 경제칼럼니스트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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