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날, 누구나 가슴 한편이 텅 비는 듯한 마음이 드는 때이다.

어떤 이들은 이럴 때 좋아하는 콘서트를 가거나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연극 한편으로 쓸쓸해지는 마음을 달랠 것이다. 그렇지만 웬만해서는 영화 한편 보기도 힘든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다.

이들 곁에 가까이 다가가는 사랑의 문화봉사단의 가을 발길은 더더욱 바빠진다.

함께 노래하는 여성이 만드는 세상

9월 20일 경기도 북부 여성회관 강당은 여성들의 흥겨운 합창과 환호소리로 요란했다.

의정부에 있는 이곳은 여성의 창업을 위한 기술교육, 취미교육, 교양교육을 받는 30∼40대 주부들이 교육을 끝내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날의 공연은 가을 이미지에 꼭맞는 가수 이동원과 이미배의 콘서트. 쌓여 있는 일거리로 선뜻 들어서지 못했던 200여명의 주부들은 이미배의 첫곡 ‘베싸메무쵸’에 벌써 후끈 달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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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이은 환호 또 열창, 합창. 신바람 난 주부들 일사불란한 몸놀림까지.

“정말 스트레스 확 풀렸어요”라고 말하는 송명옥(38)씨는 싸인 받는다며 10대의 몸짓으로 바쁘게 가수에게 다가간다. 관객의 열렬한 호응에 가수들도 절로 흥을 내니 공연봉사자들의 체면이 살게 되었다.

똑같은 봉사자들이지만 우리 운영봉사자들 입장에선 관객이 냉담한 반응을 보일 때면 땀 흘려 봉사하는 공연봉사자들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가사일에 치어 고달파 하던 우리 주부들은 이 공연이 준 신명 덕에 즐거운 마음으로 명절 치루는 힘을 얻었으리라.

좌절과 원망에서 흥겨움으로

인천 은혜의집은 9월 21일 아직 개관도 채 되지 않은 강당에서 문화봉사단의 첫 공연을 가졌다.

거처가 일정치 않고 마음과 몸이 같이 아프신 분들 앞에서 하는 공연이라 과연 반응이 있을까 신경쓰이던 공연이었다. 공연은 실버악단으로 구성된 올스타 밴드와 김소연, 김광남, 남백동, 신세영 네 분의 원로가수 그리고 박영숙 부부듀엣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홍도야 우지 마라’‘동백 아가씨’등의 노래가 이어지자 맥없이 앉아 있던 이들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고 다 나와서 춤을 추는 등 활기 넘치는 공연이 되었다.

사회를 맡은 이백천씨가 늘 말씀하시던 ‘하늘이 열리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소외 받은 사람들 곁에 가는 우리의 공연이 다시 한번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봉사받던 사람들이 봉사하는 한마당

9월 22일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명일동 서울 시립 장애인복지관 마당에서는 500여명의 장애인과 장애인의 가족이 함께하는 장애인 축제를 가졌다.

한편에서 바자회가 벌어졌고 야외 가설무대에서 사랑의 문화봉사단의 공연이 있었다.

우리춤연구회의 전통 북춤으로 시작한 공연은 팰리체합창단(초등학교 저학년)의 동요와 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의 합창으로 이어졌고 송현식의 마임, 이정순, 박정식의 노래로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장애인 합창단의 영혼의 소리였다.

혼자 걷기도 힘든 장애인을 동료가 부축하고, 또 마음대로 조절이 안돼 기성이 되어 나오는 소리에 입을 막아 주기도 하던 이들의 합창은 소리의 합창이라기보다는 마음의 합창이었다. 항상 남에게 봉사 받던 이들이 다른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가을하늘에 유난히 눈이 초롱초롱하던 이들의 모습을 보고 나누는 즐거움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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