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실종 연출...‘국민개헌’ 의문”

“남성 중심의 권력구조의 당연한 결과”

“미투(#Metoo) 본질은 권력의 문제...

남녀동수 대표성 조항 반영돼야”

△선출직·공직 및 모든 분야에서 여성과 남성의 대표성 보장

△‘성평등 조항’을 독립된 조항으로 신설

△적극적 조치를 포함한 실질적 성평등 실현·보장 의무 명기

△혼인·가족생활에서의 (성)평등 실현 및 재생산권 확보

△성인지적 사회권 강화, 아동권 신설 등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20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대통령 개헌안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20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대통령 개헌안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청와대가 20일 공개한 정부 개헌안의 전문·총강·기본권 내용에 여성계가 비판의 날을 세우면서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 개헌안의 전문과 기본권에 관한 주요사항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이번 개헌은 기본권을 확대하여 국민의 자유와 안전, 삶의 질을 보장하고, 직접민주주의 확대 등 국민의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의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기본권에서 개선되는 점으로는 기본권 주체 확대, 기본권 강화, 노동자 권리 강화 등이다. 신설되는 기본권은 생명권·안전권, 정보기본권, 성별·장애 등 차별개선노력 의무, 사회안전망 구축 및 사회적 약자의 권리 강화 등이다. 삭제되는 조항은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 이중배상금지 조항이다. 이와 함께 국민주권강화를 위해 국민발안제, 국민소환제가 신설된다.

성평등과 관련해 신설되는 ‘성별·장애 등 차별개선노력 의무 조항은 “국가에 성별·장애 등으로 인해 차별 상태를 시정하고 실질적 평등 실현을 위한 노력 의무를 지워 적극적 차별해소 정책 근거를 마련한다”는 내용이다.

성평등 개헌을 촉구하고 있는 여성계는 이같은 개헌안이 문제가 많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이하 개헌특위) 기본권분과 자문위원 간사를 맡았던 신필균 헌법개정여성연대 대표는 우선 조문화된 개헌안이 발표되지 않아 자세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전제하고 기본권 전반에서 몇 가지 유감을 나타냈다. △사회적 불평등·불공정을 경제논리로만 접근한 점, 사회문화적 관점이 누락됨으로써 성평등 독립조항의지 부재 △사회의 문화적 관점이 부재함으로써 발생하는 성평등 독립조항 의지 부재 △사회 보장권에서 돌봄의 중요성 부재 △‘사회적 약자’라는 표현은 헌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본권 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은경 세종리더십개발원 원장은 “이번 대통령 개헌안은 극히 제한적이고 편협한 현실 인식의 결과이고 남성 중심의 권력구조 안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젠더를 의도적으로 실종시킨 대통령 개헌안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젠더 실종의 상황을 연출하면서 어떻게 ‘국민개헌’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특히 여성연합은 “청와대가 ‘국제사회가 한국에 기대하는 인권수준에 맞게 천부인권적 성격의 기본권을 ‘모든 사람’에게로 확대하고, 국민주권을 강화하였다’는 것이 주된 골자이다. 나아가 지속가능한 발전과 동물보호에 대한 헌법적 근거조항까지도 마련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막상 여성과 관련된 조항은 단 하나, ‘성별·장애 등 차별개선노력 의무 신설’ 뿐”이라며 정부의 안이한 인식을 꼬집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개헌안에서 동수대표성이 빠진 것은 매우 문제적”이라고 지적하면서 “현재 들불처럼 일고 있는 미투(#Metoo) 행렬의 본질은 특정 개인의 일탈이나 변태적인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다.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 의한 무권력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결과가 성폭력으로 나타난다는 자명한 현실을 간과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성별간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혁신하지 않으면 끝없이 재현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방안에 대해서 여성연합은 청와대와 국회에 개헌안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내용을 제시했다. △헌법 전문에 헌법 원칙과 국가 방향으로서의 성평등 실현 포함 △선출직과 공직 진출 및 모든 분야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 보장 △적극적 조치를 포함한 실질적 성평등 실현·보장 의무 명기 △다양한 가족을 포괄하는 가족 구성권 명시 △성적 주체로서 존엄의 원칙과 재생산권 신설 △국가 재정 운용 기준으로 ‘성평등 효과성’ 적용 등이다.

김은주 소장은 “성별 간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개혁을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권력을 부여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남녀동수 대표성의 조항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를 포함한 10개 단체를 대표해 최금숙 회장은 “선출직 및 공직에서 남녀동수 참여가 반드시 포함돼야 하고, 나아가 차별 해소를 위한 적극적 조치도 명시돼야 한다”면서 “적극 투쟁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은경 원장은 “이 구조를 어찌 깰지, 틀을 바꾸는 여성시민혁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면서 “남녀분권을 이룰 혁명적 방안이 검토돼야 하고, 여성들의 저항이 없는 한 이룰 수 없는 목표라 생각한다. 일상을 뒤흔드는 조용한 혁명을 해야 할 때다. 임금 차이 등 불평등, 차별 현실을 드러내는 일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21일에는 지방분권과 국민주권에 관한 사항, 22일부터는 정부 형태 등 헌법기관의 권한과 관련된 사항을 공개한 후 26일 대통령 개헌안을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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