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문화예술연합 회원들이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카페 담 앞에서 정부에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근절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문화예술연합 회원들이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카페 담 앞에서 정부에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근절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체부의 문화예술계 성폭력 대책, 따져보니 ‘부실’

100일간 특별조사단·신고상담센터 운영 등

단기 운영으로 실효성 ↓ 가해자 징계도 불확실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이 퍼지자, 문화체육관광부가 특별 실태조사·신고센터 운영 등 여러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따져보면 ‘부실 대책’ ‘늑장 대책’에 가깝다. 특히 100일 ‘시한부’ 대책 기구가 수십년간 은폐된 구조적 성폭력을 얼마나 파헤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주요 대책으로 이달부터 특별조사단·특별 신고상담센터 운영

문체부가 지난 8일 발표한 주요 대책은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특별조사단과 특별 신고·상담센터다. 지난주 출범한 특별조사단은 문체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함께 운영한다. 조영선 인권위 사무총장이 조사단장이며, 인권위 조사관 4명, 문체부 공무원 3명 등 7명으로 구성됐다. △피해 조사 △검찰 고발·수사 의뢰 △2차 피해 지원 △문화예술계 전반의 문제 파악과 제도 개선책 마련 등을 맡는다. 조사 결과는 보고서나 백서 형식으로 공개한다. 문화예술계 내 성희롱·성폭력 특별 신고·상담센터는 지난 12일 문을 열었다. 문체부는 성폭력 피해상담 지원기관인 서울해바라기센터를 통해 피해 신고를 받아, 필요 시 고소·고발을 돕고 피해자 법률·심리치료 지원도 할 방침이다. 모두 시급한 조처인데, 왜 ‘부실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올까?

① 100일 ‘시한부’ 운영...실효성 ‘글쎄’

문제는 모두 단기 ‘시한부’ 대책이라는 점이다. 특별 조사단, 신고·상담센터 모두 100일간 운영된다. 꼭 필요한 조처지만, 이윤택 연출의 경우처럼 수십 년간 관행적으로 벌어진 범죄를 100일간 얼마나 파헤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② 공소시효 지나거나 민간 접수 사건은 조사 어려워

오래전 발생한 성폭력 사건, 민간 상담센터가 접수한 사건은 이번 특별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인권위는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 수사나 재판 진행 중이거나 종결된 사안은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인권위법에 명시하고 있다. 문체부는 “조사단·신고센터 운영 기간을 연장하거나 상시 운영할 가능성도 열어뒀다”지만, 피해 당사자들은 장기적이고 확실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③ 2차피해 방지와 가해자 징계 대책 불확실

2차 피해 방지와 가해자 고소·징계가 제대로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문체부는 사건 파악 후 “관련 기관에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와 가해자 징계 등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예술인 대부분이 프리랜서이거나 소속 조직이 없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만으론 부족해 보인다.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 기업에서 일어난 성범죄, 프리랜서가 피해자인 경우, 정부가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까? 여성문화예술연합은 이 빈틈을 지적하며 “사법적, 행정적, 사회 제도적 규제 방법의 현실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④ 기존 상담센터보다 문화예술계 특성 아는 전문인력 필요

해바라기센터가 특별 신고·상담센터로 지정된 데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다. 대개 최신 사건을 다루는 해바라기센터가 오랜 기간 발생한 구조적 성폭력이나 수십 년 전 사건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다. 문화예술계 여성 연대체로 2016년부터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정책 개선을 촉구해온 여성문화예술연합은 “과거에도 해바라기센터 상담사가 문화예술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피해자가 상담 과정에서 2차 피해를 겪는 일이 있어 예술인들의 신뢰가 부족”하다며 “‘상담인력과 해바라기센터 상주 경찰 등에게 문화예술계의 특성부터 교육해야 한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신고접수부터 하겠다는 건 졸속 대응”이라고 꼬집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20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공연·시각·문학 등 예술분야 현장 관계자들을 만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향 논의와 활동 환경 개선, 권익향상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20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공연·시각·문학 등 예술분야 현장 관계자들을 만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향 논의와 활동 환경 개선, 권익향상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⑤ 별도 실태조사도 5개 분야만...“예산 문제로 전체 조사 힘들어” 

문체부는 이외에도 ▲내달부터 문화예술, 영화계, 출판, 대중문화산업, 체육 5개 분야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성희롱·성폭력 행위자 문화예술계 보조금 등 공적 지원 배제 ▲문화예술 정부지원·공모사업 시 성폭력 예방 교육 의무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실태조사를 5개 분야에만 한정하는 것은 “예산 때문”이다. 문체부는 문화예술 전반 실태조사 예산안을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했으나 예결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문체부 측은 “상태가 심각한, 사회적 관심이 쏠린 부분부터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⑥ 문화예술인 성평등 교육 도입 절실한데

정작 문체부 공무원들 참여율은 ‘바닥’

문화예술계 종사자에 대한 성평등 교육도 하루빨리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정작 문체부 공무원들부터가 성폭력·성희롱 예방교육에 잘 참여하질 않는다. 2016년 폭력예방교육 추진실적을 보면 문체부 공무원들의 성희롱 예방교육 참여율은 56%(국가기관 전체 평균 93%), 성폭력 예방교육 참여율도 55%(국가기관 92%)에 불과하다. 특히 고위직과 비정규직 참여율은 0%다. 

 

문체부가 최근 발표한 대책 내용은 지난해 여성 문화예술인들이 정부와 국회에 요구·제안한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성신문
문체부가 최근 발표한 대책 내용은 지난해 여성 문화예술인들이 정부와 국회에 요구·제안한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성신문

지난해부터 정책 제안 쇄도했지만...‘늑장 대책’ 비판 높아

사실 문체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앞서 지난해 여성단체와 문화예술인들이 문체부에 요구·제안한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문화예술연합과 여성단체 등은 ▲문화예술계 성폭력·성차별 정기 실태조사 ▲문제 해결과 제도 개선 위해 전담기구 발족 ▲성폭력 대응·신고 매뉴얼 보급 ▲상시 성폭력 상담기구 마련 등을 문체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문체부는 관련 예산과 인력이 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 “이런 문제는 여성가족부 소관업무”라는 이유만 대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약 2년 후 다시 성폭력 폭로가 쏟아지자 부랴부랴 나선 모양새다.

이에 대해 여성문화예술연합은 지난 11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방관했던 피해자들을 동료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하며 예술계 성폭력에 대처할 수밖에 없었고, 제도화된 대책이 없어 가해자들은 복귀하고, 피해자들은 다시금 위험에 노출됐다”며 “만약 2016년 이후 정부가 우리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했다면, 지금쯤이면 성폭력 해결에 대한 조금 더 정교한 대책이 세워졌을지 모른다”고 꼬집었다.

 

중요한 것은 특별 대책 ‘이후’다. 정기적인 문화예술계 성폭력·성차별 실태 조사와 상시 신고 창구가 마련돼야 한다. 가해자가 엄벌을 받고, 업계 내에 성평등 인식이 확산되도록 할 구체적인 기준과 법제도도 절실하다고 여성들은 애타게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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