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이 채용과정에서 남녀고용평등법을 어겼다는 의혹을 받는 가운데,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금융노조 등이 이를 규탄하고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4일 국회에서 열었다. ⓒ뉴시스·여성신문
최근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이 채용과정에서 남녀고용평등법을 어겼다는 의혹을 받는 가운데,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금융노조 등이 이를 규탄하고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4일 국회에서 열었다. ⓒ뉴시스·여성신문

하나은행, 2013년 계획적 채용차별 의혹

여성 채용 규모 대폭 줄이고

최종면접서 여성 떨어뜨리기도

국민은행도 2015년 점수조작 ‘남성 특혜’ 의혹

여성들 분노...불매운동에 엄벌 촉구 기자회견

‘남성 우대’. 최근 연달아 터진 은행권 채용 비리의 핵심이다. 주요 은행들이 점수를 조작해 남성 채용을 늘리거나, 서류전형 단계서부터 여성을 적게 뽑기로 계획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파문이 일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2일 공개한 ‘2013년 하나은행 채용비리 검사 잠정결과’는 ‘남성·명문대 출신·고위직 자녀 우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은행은 동일한 직무에 대한 ‘성차별 채용’을 계획적으로 추진했다. 일단 채용 성비를 남성 4 대 여성 1로 미리 정해 여성 채용 규모를 크게 줄였다. 

실제 채용 결과 여성 비중은 더 낮았다. 2013년 상반기 공채에선 남성 9.4(565명) 대 여성 1(60명) 규모 채용을 계획했는데, 남성 10.8(97명) 대 여성 1(9명) 규모로 뽑았다. 하반기에도 남성 4(80명) 대 여성 1(20명) 규모 채용을 계획했는데, 실제론 남성 5.5(104명) 대 여성 1(19명)로 선발했다. 여성 지원자의 커트라인이 남성보다 확연히 높아진 이유다. 2013년 하반기 공채 서류전형에서 서울지역 여성 커트라인은 467점으로 남성(419점)보다 48점이나 높았다. 

최종 면접 단계에서도 ‘남성 특혜’가 작용했다. 하나은행은 최종 임원 면접에서 합격권의 여성 2명을 탈락시키고 합격권 밖에 있던 남성 2명을 대신 채용했다. 2013년 최종 합격자 중 남성은 201명, 여성은 28명에 불과했다. 

차별이 없었다면 서류전형 단계에서 여성 합격자는 619명이 늘고, 남성은 그만큼 감소했을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남녀 차별 없이 커트라인을 적용하면, 하반기 공채의 경우 남녀 성비는 1 대 1.04로 차이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하나은행 안팎 주요 인사 추천으로 인한 특혜 채용 정황 16건, 국내외 명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탈락자 14명이 ‘특혜 합격’한 정황도 포착됐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은행장 등 하나은행 임원은 물론 국회·청와대 고위 인사가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달 30일 관련 증거자료를 검찰에 제공했고 “위법사항이 확인되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성일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하나금융 채용 비리 의혹’ 특별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최성일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하나금융 채용 비리 의혹’ 특별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은행권의 여성 차별은 늘 문제로 지적됐지만, 주요 은행의 대규모 채용비리 사태와 맞물려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은행도 2015년 상반기 대졸 신입 공채 서류전형에서 남성 지원자 100여 명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 여성 지원자보다 높은 점수를 준 정황이 최근 드러났다. 여성 지원자 일부는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이 때문에 국민은행 인사팀장은 구속됐고, 전 인사부장에게도 업무방해·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4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는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성들은 분노했다. 지난달 25일 SNS상 ‘#여성차별_국민은행_불매’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다. 여성 의원들과 노동계도 두 은행의 성차별 채용을 규탄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 더불어민주당 서영교·한정애·권미혁·송옥주·정춘숙·제윤경 의원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종 책임자인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사죄와 사퇴,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엄벌을 요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금융권 채용비리는 미래를 위해 처절하게 경쟁하고 있는 청년들의 희망을 한 순간에 앗아간 가장 악질적인 범죄”라며 “특히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필수적 기본권인 노동의 권리를 빼앗은 것은 최악의 범죄”라고 지적했다. 또 “성차별 채용은 여성의 노동권을 빼앗았고, 사회적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뒤흔들어 무형의 해악을 끼쳤다. 최고 수준의 신뢰를 요구받는 은행이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그릇된 맹신을 현실화한 범죄로 용서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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