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청구 기각한 법원 입장은

권력형 위력에 의한 성폭력

용인으로 비춰질 우려 있어

 

 

민주평화당 최경환 국회의원
민주평화당 최경환 국회의원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검찰의 재구속 영장청구에 대해 법원이 또 기각 결정을 했다. ‘범죄혐의에 대해 다퉈볼 여지가 있고, 피의자가 도망가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다’는 이유다. 법원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안희정 사건을 일반적 성폭력 개념으로만 판단한 부분은 유감스럽다.

미국 학계에서 제기돼 논의되고 있는 ‘연속선으로서의 성폭력’이라는 개념이 있다. 데이트 성폭력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많이 쓰인다. 예를 들어 성관계 당시에는 당사자 간 관계가 좋았고 문제가 없어보일지라도, 최종적으로 성폭력 여부를 가르는 기준으로, 가해자가 관계 후에 보여주는 언행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행위 당시 겉으로 보기에는 물리적 위계, 강압, 폭력 등이 없어 평화로워 보일지라도, 피해자의 동의여부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나중의 가해자의 말과 행동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피해자를 ‘성적 도구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면 성폭력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안 전 지사의 경우 위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간음했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하더라도,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볼 객관적 정황은 이미 충분한 상황이다. 당시 정무비서였던 김지은씨와 안 전 지사의 사회적 지위, 나이 차이를 고려하면 그렇다. 김씨가 지난 3월 5일 JTBC 인터뷰에서도 말했듯 김씨는 안 전 지사와 “동등한 관계가 아니며 무조건 따라야 하는 관계”였다.

안 전 지사에 대한 구속영장청구 기각 결정은 법원의 성폭력에 대한 관점이 물리적으로 끔찍한 상황만을 가정하여 보는데 따른 점이라는 데서 문제가 있다. 앞서 언급한 ‘연속선으로서의 성폭력’ 개념으로 봤다면 다른 판단이 가능했을 것이다.

법원 결정이 전국민적인 관심으로 확산됐던 미투(#Metoo) 운동을 냉각시키는, 권력형 성폭력에 법적 관용을 베푸는 것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는 것도 우려스럽다.

미투 운동이 ‘끝물이다’, ‘냉각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피해 여성들의 뼈아픈 목소리를 받아 2차 피해를 막고, 앞으로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이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신고체계를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한다. 피해자 보호(2차 피해) 제도적 방어 장치가 구비된다면 숨죽이는 피해자들이 피해경험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김씨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과연 마음이 편할까 싶다. 아마 한 사람의 정치인생을 망쳤다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두려워 바깥 출입이 힘들 것이다. 그에 비해 가해자는 불구속 결정을 받았고, 마음만 먹으면 피해자를 해코지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 소문과 숱한 해석이 돌고 있으며, 슬금슬금 가해자를 옹호하는 온건주의,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 전 지사에 대한 법원의 입장은 권력형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용인하는 것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 법원은 성폭력 판단기준에 ‘연속선의 성폭력’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현재 약 50건의 미투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미투 운동의 지속성을 위해서라도 피해자 보호의 제도적 보완책이 신속하게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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