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성 변호사의 이러시면 안됩니다 - 13

 

여성가족부장관은 국가인권위원회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을 통하여 국가기관 등에서 성희롱 사건을 은폐한 사실이나 성희롱에 관한 국가기관 등의 고충처리 또는 구제과정 등에서 피해자의 학습권·근로권 등에 대한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한 사실이 확인된 경우에는 관련자의 징계 등을 그 관련자가 소속된 국가기관 등의 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 양성평등기본법 제31조 제5항이다. 2차 피해 유발자에 대해서 징계를 요청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어떤가?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법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국가인권위원회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은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조사 또는 수사하는 과정에서 국가기관 등이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은폐한 사실이나 그 사건에 관한 고충처리 또는 구제과정 등에서 피해자의 학습권·근로권 등에 대한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한 사실을 확인하면 지체 없이 이를 여가부장관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통보를 받은 여가부장관은 징계 등 조치의 필요성을 검토하여 그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관련자의 징계 등을 그 관련자 소속 기관장 또는 상급기관장을 포함한 징계권자(임용권자)에게 요구하여야 한다. 징계 등의 요구를 받은 기관장 등은 그 요구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요구에 따른 조치 결과를 여가부장관에게 회신하여야 한다.

한 가지를 더해 보자. 징계 등의 요구를 받은 기관장 등이 정당한 사유 없이 그 요구에 따르지 않을 때에 여가부장관은 징계요구를 한 날로부터 30일이 경과한 때에는 해당 기관의 바로 위 상급기관에 설치된 징계위원회 등에 직접 그 심의 또는 재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감사원법 제32조 제3항을 참조해 본 것이다.

아니다. 여기서 그치지 말고 조금만 더 욕심을 내보자. 이런 규정도 함께 만들면 어떨까. 여가부장관은 징계 등의 요구를 받은 기관장 등이 정당한 사유 없이 그 요구에 따르지 않은 경우에는 그 사실을 국무회의 의안으로 보고할 수 있다.

징계요구 등 불이익조치에 직결된 사항이니만큼, 무엇이 징계사유인 2차 피해에 해당하는지를 법령에서 세세하게 명시해 줄 필요도 크다. 참고로 남녀고용평등법 시행규칙 별표 1은 직장 내 성희롱에 어떠한 언동이 포함되는지를 열거해 두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최근 개정되어 올해 5월 29일부터는 제14조 제6항에서 정하는 7가지 열거사항이 2차 피해의 한 가지 주요한 예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국가기관 등에 직접 적용되는 양성평등기본법과 그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서는 아직은 ‘사건 은폐’, ‘고충처리 또는 구제과정 등에서의 학습권·근로권 등에 대한 추가적 피해’라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내용만을 담아두고 있을 뿐이다. 남녀고용평등법에 준해서 국가기관 등의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의 전형적 양태를 적어도 시행규칙 상의 별표 형식으로라도 꼼꼼하게 열거해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법을 위와 같이 개정한다면 적어도 다섯 가지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첫째, 지금은 국가인권위원회 등 법령상 조사권을 갖는 기관이 2차 피해 발생을 인지하더라도 이를 여가부장관에게 의무적으로 통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지 시에 이를 통보해달라고 여가부장관이 요청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법이 바뀌면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기관은 2차 피해 발생사실을 반드시 여가부장관에게 통보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규제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둘째, 지금은 여가부장관이 그 징계요청 여부를 임의로 결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요청 여부가 여가부장관의 의지 여하에 달려있는 것이다. 더구나 ‘요구’도 아니고 ‘요청’이다. 위와 같이 문언을 바꾼다면 여가부장관은 통보에 따라서 그 징계를 요구해야만 한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이게 중요하다.

셋째, 현행법은 징계요청을 관련자 소속 기관장에게 할 수 있다고만 정한다. 그러면 기관장이 주도하여 사건을 은폐하고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유발하고 있는 경우라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라는 뜻일까? 기관장이 2차 피해 유발의 장본인일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하여 징계요구는 기관장뿐만 아니라 그 유발자에 대한 최종징계권을 갖는 사람에게 해야 한다고 정함이 옳을 것이다.

넷째, 감사원법에 준해서 여가부장관이 재심의 요구권을 갖게 되거나, 요구에 따르지 않는 기관을 국무회의에 보고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면 징계요구의 실효성은 그만큼 강하게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단지 징계요청을 받은 기관장에게 그 조치결과를 통보 회신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섯째, 실무에서 주로 문제되는 것 중의 하나는 당면한 사안에 대하여 도대체 어느 정도의 처분을 하는 것이 적정한 수준인가 하는 점이다. 양정판단은 늘 골치 아픈 일이다. 유사 사안에 관해서 다른 기관들이 어떤 수준의 처분을 내렸는지 알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기관이 아무리 의지적으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 해도 이 부분 문제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여가부의 판단 사례가 축적되고 그 징계요구 선례를 피해자 보호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공개한다면 일선 현장에서 징계처분을 내리는 데에 부담감이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법원 종합법률정보 홈페이지에서는 양성평등기본법 제31조 제5항과 관련된 판례가 한 건도 검색되지 않는다. 판례가 검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의 의미는 명확해 보인다. 혹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조문은 있으되 이것이 실제로 적용·집행되었던 예가 많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 적극적인 개선노력으로 이 법이 실제로 작동·운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머지않은 때에 법이 이렇게 바뀌기를 고대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개선입법이 순탄하게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여가부장관의 강력한 의지와 국가의 정책적 결단에 기대어볼 수밖에 없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근거법령이 없는 것도 아니다. 2차 피해 유발은 지금도 법정 징계사유에 해당한다. 양성평등기본법 제31조 제5항이 법전 속에서 잠들어 있는 조항이 아니라, 진정으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조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응답하라, 여성가족부! 법에 쓰여 있는, 우리 법이 부여한 권한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행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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