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차별에 우는 장애 여성들]

‘여성’ ‘장애’ 이유로

성폭력·가정폭력에 노출

편견과 차별 이중고 겪어

“장애여성권리보장법 필요”

 

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울시 장애인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울시 장애인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장애여성은 여성이면서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더 많은 편견과 차별을 겪고 있다. 일상의 차별은 교육과 노동기회 배제로, 건강권의 차별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노출되는 일도 다반사다. 문제는 여성과 장애를 이유로 겪는 이중 차별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장애여성 인권을 보장하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친정에서 아버지한테 폭력을 당하고 시어머니한테도 언어폭력을 당했어요. ‘이거 못 한다, 저거 못 한다’ ‘네가 뭘 아느냐’면서 때렸어요. 그러면 저는 늘 사과했어요. 왜 사과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지적장애인 김소영 서울장애여성인권연대 이사는 가정폭력 피해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상담소에 알렸지만 장애인은 쉼터에 받아주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장애여성을 위한 가정폭력 쉼터를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생존자를 위한 쉼터가 있지만 대부분 비장애여성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장애여성을 위한 편의시설이 미흡하고 쉼터 종사자도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곳이 많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 지난해 여성장애인 4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57.4%가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정서적 폭력(47.9%), 통제(43.1%), 성적 폭력(35.5%), 신체적 폭력(35.3%), 경제적 폭력(34.6%) 순이었다. 2016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인 3.3%와 비교하면 약 10배 이상 많은 심각한 수준이다. 가정폭력 가해자를 살펴보면 배우자가 32.1%, 형제‧자매 10.7% 순으로 배우자를 제외한 가족원으로부터 폭력이 60%가 넘었다. 장애여성들은 배우자뿐 아니라 시부모와 가족들에게도 무시와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애여성은 가정폭력을 당해도 의지할 친정이나 이웃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안전하게 보듬을 쉼터가 필요하지만 상담소와 보호시설은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로 여성장애인가정폭력상담소는 1개소, 여성장애인통합상담소는 1개소, 장애인가정폭력보호시설은 3개소뿐이다.

 

12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장애여성 권리 쟁취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2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장애여성 권리 쟁취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폭력 문제도 심각하다. 각계에서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이 확산되고 있지만 장애여성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최근 지체장애를 가진 박지주 장애여성자립생활센터 파란 소장은 장애 여성으로는 처음 실명을 내걸고 성폭력 피해를 알리며 가해자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박씨는 2002년 당시 장애인이동권연대 사무총장이자 비장애 남성인 엄모씨가 차 안에서 가슴을 만졌고 강제로 성적 접촉을 시도했다고 폭로했다. 해당 단체에 피해 사실을 알리며 공식 문제제기를 했고 엄씨는 모든 장애인 시민단체 회원에서 영구 제명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어야 했다. 최근 엄씨의 모습이 담긴 장애인 관련 교육 영상이 지금까지 교육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박씨는 미투에 나서게 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에 영상에서 엄씨 부분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반영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단체는 “영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했다”면서 “이제라도 조직적으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고 신속하게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16년 말 기준 우리나라 여성 장애인은 모두 105만3463여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41.9%에 달한다. 이 가운데 1~3급의 중증장애인은 37.3%를 차지한다.

낮은 교육기회 사회참여의 배제로 이어진다. 실제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16년 장애인 경제활동 따르면 여성장애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2.4%로 남성장애인보다 27.9%포인트나 낮았다. 고용의 질도 떨어진다. 여성장애인의 비정규직 비율은 72.2%로 남성장애인보다 14.8%포인트 높았다. 여성장애인의 월 평균 임금은 102만2000원으로 남성장애인 임금(190만8000원)의 60% 수준이다. 이밖에도 장애여성은 모성권과 재생산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안은자 장애여성권리쟁취연대(준) 집행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장애여성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에서조차 성인지적 통계가 미흡하다”며 “장애여성의 생애주기에 맞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여성을 위한 △권리보장법 제정 △모성권 및 재생산권 보장 △양육권리 보장 지원책 수립 △독립적인 가정폭력상담소 및 단기쉼터(긴급피난처) 설치 △건강권 정책 수립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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