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22년 동안 일하고 임원이 된 필자가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여성 직장인들에게 선배로서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주>

 

[나도 승진하고 싶어요] ⑤

“빨간 펜 선생님!” P&G라는 글로벌 회사의 브랜드 매니저였던 학교 후배를 만나서 들은 말입니다. 입사 후 일정 기간 동안 상사가 빨간 펜 선생님처럼 하나 하나 고쳐 줬다는 것입니다.

제 머리 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 오르거나 내가 아는 바가 많을 때, 그것을 겉으로 표출하여 알리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말하는 것과 글쓰는 것 두 가지입니다. 제가 다니던 S전자가 점점 글로벌 영업을 많이 하게 되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해외 여러 나라의 동료들이 되면서 특히 글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일을 정말 잘 하고 열정도 넘치고 감성도 풍부한 후배가 있었습니다. 여성이었고 직급은 사원이었으나 왠만한 과장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이 친구는, 타이핑 속도가 너무너무 빨라서인지 모르겠으나, 업무용 메일을 하나 쓰면 너무 길었습니다. 날씨 등의 긴 인사말에 여러 가지 좋은 문구들을 많이 포함해서 메일을 썼지요. 그 후배가 감성이 풍부했던 것도 있고, 늘 업무에 시달리는데 메일에서 조금 부드럽고 친절한 문구를 넣으면 분위기가 좀 부드러워질 것이라는 좋은 의도였을 겁니다.

그런데 메일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메일을 읽느라 시간이 너무 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요점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 친구는 직급이 사원이었기 때문에 메일을 너무 간단 명료하게 쓰는 것이 선배들에게 무례하게 보였나 봅니다.

제가 임원 승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입니다. 본사 마케팅실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전세계적으로 추진하게 되었고, 이를 전세계에 공지해야 했습니다. 레터 1페이지 정도의 글을 제가 썼는데요, 저 나름대로 공들여서 썼지만 저의 상사는 퇴짜를 놓았습니다. 왜냐고요?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료하지 않고, 주절주절 길다는 것이었습니다. 간결하게 다시 작성하라는 요청이었습니다.

S전자에서는 글로벌 영업, 마케팅 담당자들 대상으로 메일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기 위한 간단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지요. 누구나 다 아는 건데, 지면을 빌려서 한 번 복습해 보겠습니다.

1. 쉬운 단어와 쉬운 문법, 짧은 문장으로 쓸 것. 제가 벤치마킹했던 P&G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생이 알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쉬워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특히 해외로 메일을 보낼 때에는, 특별한 초대장이나 법률문서가 아닌 업무용 문서일 경우에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메일의 수신인 입장에서 보면 미국, 영국, 호주 등의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두괄식으로 쓸 것. 이 메일을 쓰는 목적이 무엇인지 제일 먼저 쓰고, 그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쓰고,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밝혀서 상대방이 일을 진행하는 데 동기를 부여해 주고, 해야 할 일을 명료하게 정리해 주고, 인사말로 마무리를 합니다.

3. 메일을 읽고 상대방이 해야 하는 액션을 명확하게 명기할 것. 언제까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결과를 언제까지 어떻게 공유해야 하는지 등등. 가능하면 ‘-‘ 나 ‘1, 2, 3 ..’ 등으로 명확하게 구분해서 정리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4. 전체 내용을 길게 쓰지 말 것. 요즘은 메일을 오픈해서 스크린에서 읽어 보고, 업무를 파악하고 일을 진행합니다. 클릭해서 열었을 때 오른쪽을 다 내리지 않고 하지 않고 내용을 다 볼 수 있으면 가장 좋습니다.

5. 제목은 엑기스가 나타나도록 또한 매력적으로 쓸 것. 업무용 메일, 개인 메일, 광고 메일 또는 스팸 메일이 수시로 날라 듭니다. 그 많은 메일 속에서 내가 보낸 메일을 상대방이 놓치지 않고 또는 무시하지 않고 열어 보도록 하려면, 제목에서 핵심과 요청 사항이 나타나는 게 좋습니다.

6. 엔터키(Enter)를 조심할 것. 특히 영어 메일을 쓸 때는, 단락 변경할 때만 엔터키를 쳐서 줄을 변경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화면의 오른 쪽까지 꽉 채워 써서 자연스럽게 줄이 밀리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왜냐고요? PC에서 타이핑한 메일을 모바일에서 열어 보면, 중간 중간에 들어 있는 엔터 때문에 각 단락이 얼그러지기 때문이지요.

7. 오타는 절대 없도록 할 것. 아무리 멋진 문장을 써도 오타가 있으면 메일의 품격이 떨어집니다. 게다가 중요한 메일에서 오타가 발생하면, 실제로 잘못된 정보가 전달될 수 있습니다. 간혹 영업, 마케팅에서 제품의 가격에 ‘0’을 하나 덜 붙여서 회사에 큰 손해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8. 수신인과 참조인을 적절히 활용할 것. 특히 참조인은 너무 많이 넣으면 메일 폭주가 되지만, 너무 안 넣으면 불통이 됩니다.

9. 중요한 메일은, 더블 체크를 하고 보낼 것. 혼자서 두두둑 타이핑을 해서 그대로 ‘발송’을 누르지 말고, 다른 동료에게 리뷰를 부탁하는 것도 좋고, 임시 저장을 해 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한 번 맑은 정신으로 검토를 한 후에 발송하는 것이 실수와 후회를 줄이는 길입니다.

메일만이 아니라 기획안이나 보고서도 이런 원칙을 따라 작성하면 내가 추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잘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조은정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비자학 박사 학위를 받은 조은정 박사는 1995년 삼성그룹 소비자문화원에 입사해 22년간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 연구소장, 프린팅사업부 마케팅그룹장 등 삼성전자의 마케팅 및 역량향상 업무를 진행했다. 여성신문에서 재능기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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