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처음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하고 국정과제로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을 내세우며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취임 초 여성장관을 부처 요직에 임명하고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을 추진하며 여성대표성 제고와 젠더폭력 대응에 관해 선도적으로 정책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성평등 정책을 총괄·조정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는 기존 ‘양성평등위원회’ 유지로 뒷걸음질 쳤고, 공직인사 검증에서 ‘성평등’은 빠지면서 인사에 오점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발표한 100대 과제 중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의 주요 추진 과제로 △성평등정책 추진체계 강화 △여성 대표성 제고 △성평등 의식문화 확산 △젠더폭력 방지 기반 구축 등을 제시했다. 과제별로 공약 이행 상황을 살펴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대선후보 시절 여성신문과 범여성단체가 주최한 대통령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서 직접 서명한 성평등 공약 서약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대선후보 시절 여성신문과 범여성단체가 주최한 대통령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서 직접 서명한 성평등 공약 서약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립 좌초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무총리 산하 양성평등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로 격상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동안 양성평등기본법에 의해 설치된 양성평등위원회는 직속 사무국도 없이 1년에 940만원의 예산으로 운영돼왔다. 그래서 유명무실했던 양성평등위원회를 넘어 성평등 정책의 총괄·조정 기능을 강화하고 민관 거버넌스(협치) 기능을 수행하며 성주류화 정책을 내실있게 추진할 수 있는 성평등정책 추진체계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지난해 9월 여성가족부는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위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10월 중 성평등위원회 설치·운영 계획을 확정짓고 법령 제·개정과 관계부처 협의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가 바뀐 지금도 성평등위원회 설치 계획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양성평등’위원회 대신 ‘성평등’위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반대 여론에 부딪칠 수 있다는 점과 대통령직속 위원회 격상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부 여론 등이 성평등위원회 설치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양성평등위원회를 유지하되, 상설 사무국을 설치해 실효성을 높이자는 절충안도 제시된 상태다.

 

‘성평등’ 인사검증 부실

지난 7월 정부는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과제 중 하나로 ‘성평등 의식문화 확산’ 항목을 약속하고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인식개선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성평등 교육을 강화하고 언론·미디어 종사자와 공적 서비스 전달자를 대상으로 성인지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성차별, 여성 비하 등 사회 인식을 개선하고 성평등 문화 확산을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공직자 인선과정에선 젠더 관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집권 초기 인선 과정에서 왜곡된 젠더 의식을 드러낸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에 대해 각계의 해임 요구가 빗발쳤지만, 탁 행정관의 인선은 취소되지 않았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8일 내놓은 ‘1년간의 인사검증 회고와 향후 개선방안’ 자료를 통해 “인사검증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향후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하면서 검증업무에 더 철저히 임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인사 검증 질문에 “미투 운동 관련 문제가 될 발언이나 행동이 있었는지 기술하겠다”고 밝혔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밖에도 정부는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낙태죄가 여성인권을 침해하는 현실을 인지하고 있는 듯한 태도로 주목 받았다. 그러나 여성계에 따르면 정부는 유엔 인권이사회와 사회권 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의 낙태죄 폐지 권고 이행 요구에 대해서는 여전히 낙태죄 폐지를 여성의 신체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대립 구도로 상정하고, 사회 각계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사안으로 규정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1일 논평을 통해 “지난 1년간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서 ‘성평등한 대한민국’이라는 국정과제는 가시화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여성연합은 “민주주의 회복과 ‘국민 중심’에서 ‘여성’은 소외됐고, ‘성평등’이라는 가치와 철학은 보이지 않았다”며 “집권 초기 인선 과정에서 젠더 관점이 부재한 인사에 대해 여성계의 강경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선을 취소하지 않는 등 인사검증 과정에서 부족한 젠더 관점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페미니스트 대통령’ 1년]① 여성장관급 30% 달성… 핵심 요직에 배치 (http://www.womennews.co.kr/news/14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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