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회 유일한 미투’ 비서관 A씨

“국회서 미투 나온 자체에 놀라워해”

다른 당서 ‘우린 터치만 있었다’

... 입법기관 수준 의심케 해

현재 몸담은 의원실 도움 컸다

“미투(#MeToo)가 벌써 시들해졌다”는 말이 부쩍 잦아졌다.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미투가 시작되면서 문화계, 학계, 종교계까지 곳곳에서 피해자들의 고발이 이어졌고 지목된 가해자들은 피의자 신분이 돼 수사를 받기도 했다.

어느 곳보다 미투로 관심을 모았던 곳이 정치권, 특히 국회였다. 권력의 중심부에서 철저히 남성화된 조직이라는 점에서 피해 사례가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됐다. 또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곳에서 성폭력과 성차별에 대한 고민과 반성의 계기가 될 것이란 점도 기대감으로 작용했다.

‘국회 미투 1호’가 등장한 시점은 검찰 미투 이후 한 달이 훌쩍 지난 지난 3월 5일이다. 공교롭게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관한 미투가 나와 우리 사회에 충격을 몰고 온 날이다.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현재 7년째 근무하고 있는 5급 비서관A씨는 국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본인의 실명을 내걸고 과거 3년간 같은 의원실에 근무했던 상사인 보좌관B씨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B씨가 몸담은 의원실은 즉각 B씨 면직 처리에 나섰지만, 국회 사무처가 비위 사실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면서 B씨는 아직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국회 미투 1호’ 비서관 A씨는 미투 이후 두 달간 어떤 심정으로 국회와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 10일 국회에서 만난 그는 “국회에서 2, 3호 미투가 나오지 않을 것을 예상했다”면서도 미투 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참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크게 안타까워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루머와 낭설 등 2차 피해에 시달렸고, 자신의 폭로가 더 이상의 미투로 이어지지도 않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회 사람들이 제 사례로 인해 성폭력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는 점,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됐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실명 공개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방편으로 실명을 내걸었지만, 언론은 피해 당사자의 실명이나 얼굴 공개를 막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투를 하게 된 계기는? 가해자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던 이유는?

미투로 사회가 많이 바뀌길 바란다고 생각한 사람으로서 국회에서 언제쯤 미투가 나올지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오랫동안 국회를 지켜본 입장에서 나오지 않을 거라는 예상도 했고 결국 제가 나섰다. 입법에 뜻을 품고 온 여성 후배들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가해자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악용되거나, 하고자 하는 목적과 다르게 비쳐질까 싶어서다. 개인의 문제보다, 국회라는 특수한 환경에 주목해주길 바랐다.

-국회 미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제가 미투를 할 당시에도 더 나오긴 힘들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2, 3호가 안 나올 것을 예상했다. 현직은 힘들지만 퇴직자 중에서는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오히려 미투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 되면 국회 내에서 전수 조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는데 실제로 조사가 진행됐다.

- 문자메시지로 2차 가해도 벌어졌다.

보통 가해자들이 하는 전형적인 행태다. 성폭력 행위를 했는지 안했는지에 대해선 없고, 자기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얘기하고, 마치 남녀 사이의 문제인 것처럼 썼더라. 국회 안에서 그 문자가 와전되면서 둘이 의원실에서 연인관계였더라는 식이나, 저에 대한 이상한 신상정보가 얘기됐다. 저한테는 쉬쉬하지만 많이 퍼져있더라. 가십거리가 됐다. 차라리 제 글이나 읽어본 사람이면 상식적인 판단이 가능할 텐데 말이다.

- 미투를 한 것에 후회하진 않는지.

잠도 잘 못자고 힘들었다. 헛소문은 물론이고, 지인마저 ‘좋게 합의를 보라’고 하더라. 2차 가해라는 걸 모른다. 분노, 좌절하고 당시 고통이 떠올라 힘들었다. 후회는 안 한다. 해야 할 일을 했다. 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됐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가장 힘든 점 중 하나가 자책이다. 왜 나만 당했을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왜 해결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만으로도 큰 고통인데 그 지점이 좀 해결된 느낌이다. 그게 치유의 시작인 것 같다. 지지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말하는 분도 계시다.

-정치권에서 정략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은 고민해보지 않았나.

국회의원들은 제도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OO당에서 벌어진 일이다’라고 말하거나, ‘우리는 터치만 있었다’라며 마치 남의 얘기 하듯이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는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입법기관의 수준을 의심케 하는 말이었다.

-미투 이후 국회 내 변화는 느껴지나?

국회에서 단 한 명의 미투도 나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왔다는 자체에 놀라워하더라. 사람들이 내가 당했던 성희롱, 성폭력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 같더라. 누군가에겐 상처일 수 있다는 거, 자기가 성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경우도 많다. 개인의 문제보다, 그것이 성폭력이라고 교육받지 못한 사회적 문제일 수 있기에 각성의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 제 미투는 금방 잊혀질 수 있더라도 문화가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미투가 계속되려면?

미투는 시들지 않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관련 보도가 잘 안될 뿐 학교 내, 직장 내 미투가 계속되고 있다. 피해가 있고 피해자가 호소했을 때 도와준다는 생각이 들 때 미투를 할 수 있다. 뿌리를 뽑으려면 1~2년으로 될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가야 한다. 미투가 나왔을 때 제도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곳이 국회다. 국회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미투를 하기까지 현재 근무 중인 의원실 상황은 어땠나.

미투 운동이 시작되기 전부터 소송을 검토해왔기 때문에 의원님께도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근무 시간에 자리를 많이 비우게 되고 연락을 받아야 하니까. 제가 힘들어 한 걸 아셨기 때문에 그 당시에도 흔쾌히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하셨다. 또 그 후 미투가 시작되자 국회에서도 필요하다고 공감하셨고 저에게도 치유가 된다면 미투를 하라고 하셨다.

-앞으로 설립될 국회 인권센터에 바라는 점은?

가벼운 성희롱 성추행도 분명히 처벌받아야 한다.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어야 근절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성폭력이라고 했을 때 강간 같은 충격적 사건이 아니면 처벌 안되지만, 그래야 잘못했다고 할 수 있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게끔 만들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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