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성희롱·성폭력 2차 피해에 관하여 구체적인 예시를 열거한 법이 우리에게도 생긴다.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이 오는 5월 29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미투는 거창하기만 한 선언들이 아니라 세세하고도 확고한 제도화 노력 속에서 그 꽃을 피워나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새 법도 완벽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채 시행도 되기 전에 ‘초를 치는 듯한’ 느낌인지라 주저되는 점도 없지 않다. 언젠가는 고용노동부의 유권해석, 더 나아가 법원의 명확한 판단이 내려질 수 있을 것이니 필자의 ‘설익은 의견’이 행여 이에 어긋나게 될 가능성도 있어 더욱 더 조심스럽다. 그렇더라도 당장에 우려되는 현장의 혼선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기에 다만 ‘한 가지 잠정적 의견’이나마 여기에 밝혀두어야만 하겠다.

벌써부터 여러 기관들로부터 자문요청을 받고 있다. 개정법 제14조 제1항에서는 누구든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해당 사업주에게 신고할 수 있다고 정하며, 제14조 제2항에 따라서 사업주는 제1항에 따른 신고를 받거나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하여야 한다. 하지만 피해자 아닌 제3자가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하였지만 정작 피해자는 신고와 조사를 원치 아니함이 명백한 경우에 사업주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개정법은 말해주지 않는다. 이런 때에 도대체 어떻게 조치하여야 좋겠는지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 제3호는 피해자 아닌 사람이 진정하였지만 피해자가 조사를 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명백하다면 그 진정을 각하하여 절차진행을 종결하는 것으로 정한다. 남녀고용평등법 개정법에서도 이와 비슷한 조문을 마련해 두었다면 혼란의 소지가 없었을 터인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의문점이다.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 제1항에서 정하는 범죄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사람의 보호를 위한 사항들을 규정한다. 그런데 성폭력방지법에서는 미성년자 보호·교육·치료 시설의 장이나 관련 종사자 등의 제3자에게 수사기관에 대한 신고의무를 부여하면서도, 그 의무적 신고대상을 모든 성폭력범죄가 아니라 ‘19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하여 발생한’ 성폭력범죄로 제한한다. 미성년자는 보다 두텁게 보호해 주어야 하지만, 반대로 성년자의 경우에 사건 신고 등은 제3자가 함부로 먼저 나설 것은 아니고 그 본인의 온전한 의사에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일 것이다.

더 나아가 성폭력방지법에서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설치·운영하는 성폭력피해상담소가 성폭력피해의 신고접수와 이에 관한 상담 업무를 하는 것으로 정하면서도 동시에 제24조에서 피해자 등의 의사를 반드시 존중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다. 피해자 등이 분명히 밝힌 의사에 반하여 성폭력피해의 신고접수와 상담 등을 할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요컨대 피해자 의사 존중은 성폭력 사건의 처리와 해결에 있어서 최우선적 원칙이다. 이는 위와 같은 여러 법 규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대(大)는 소(小)를 포함한다는 것은 법 해석의 일반적 원칙인데, 심각한 성폭력범죄 피해의 경우조차도 피해자 의사에 반해서는 신고접수나 상담 등을 해서는 안 된다면, 때에 따라서는 성폭력범죄보다는 다소 경미하다고 볼 수 있는 성희롱 피해의 경우에 피해자 의사에 반하여 절차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성희롱 피해사실에 관한 조사 진행을 촉구하면서 이를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신고하는 행위 자체가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법에서 허위사실 뿐만 아니라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도 이를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이유를 함께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피해자 자신은 원치 않는데도 누가 피해자였는지, 어떠한 피해가 있었던 것인지를 누군가에게든 드러내는 것이 피해자에게 반드시 바람직한 것일지는 심히 의문스럽다.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결정 중에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 업무상 지속적으로 관계해야 하는 다수의 직장 동료들이 있는 회의석상에서 성추행 피해사실을 공개한 것은 당사자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켜 업무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는 행위로서 설령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사례도 있다(13진정0879300).

피해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제3자인 주변인으로서는 우선 피해자의 신고 및 절차 진행 의사를 조심스럽게 타진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개정법에서 제3자도 신고할 수 있다고 정해두었다는 것이, 피해자가 정말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아무 상관도 없이 제3자 멋대로 신고해도 좋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피해자의 의향을 확인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신고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보더라도 위험하다.

신고를 접수받은 주체로서는 제3자의 신고가 있었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러나 마찬가지로 아주 조심스럽게 피해자의 의사를 정확히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표면적인 의사 확인만으로는 부족하고, 신고에 따른 절차를 진행하더라도 어떠한 경우에도 피해자가 더 큰 2차 피해 우려에 노출되지 않도록 최선의 주의를 다하여 피해자를 보호해 주겠다는 점을 강력한 메시지로 전달하면서 실제로도 2차 피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다 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충분한 설명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절차 진행을 희망하지 않는다면 이때는 그 의사 그대로 존중해 주어야 함이 옳지 않을까 한다.

개정법 제39조 제2항 제1의4호는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위와 같이 2차 피해 방지조치를 사업주가 사전에 철저히 준비함과 함께 피해자에게 지체 없이 의사 확인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새겨야 할 것으로 본다. 사건을 뭉개거나 멈칫멈칫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를 넘어, 피해자가 분명히 원치 않고 있는데도 그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절차를 강행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는다면 이는 너무 과도하다.

어느 기관에서는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우려하여 신고를 원치 않고 있다면 이때에도 조사절차를 계속 진행하는 것이 옳은가?” 라고 질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질의내용 자체에 문제가 있다. 피해자가 2차 피해를 걱정하여 신고를 꺼린다면 그러한 상황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대로 존중해 주어야 할 절차 종결의 의사란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로지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서 더 이상의 진행을 희망하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 것일 뿐, 2차 피해의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면서 절차 종결을 원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읽으면 안 될 것이다. 피해자가 겁을 먹고 있어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어쨌든 마음을 정하지 않았으니 조사 진행 없이 절차를 종결하겠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새 개정법의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 아닐까.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는 조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미리부터 못 박아 두게 되면 어떤 사업주들은 이를 방패막이 삼아서 미온적으로 대처하게 될 것임이 능히 예상되기 때문에 법을 이렇게 만들어 두었으리라. 그러나 피해자 의사의 존중은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처리와 해결에 있어서 처음이자 끝이다. 다만, 이는 꼭 함께 기억하자.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두려워해서 절차 진행을 꺼리고 있는 것은 피해자의 온전한 자기 의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법의 핵심적 취지는 피해자를 최대한 두텁게 보호해 주라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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