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51명으로 출발

현재 1180여명 참여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

시국 사건 도맡아

향후 30년 위한 결의문 발표

 

25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민변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변호사들이 과거 변론 요지서를 낭독했다. ⓒ여성신문
25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민변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변호사들이 과거 변론 요지서를 낭독했다. ⓒ여성신문

“권양… 온 국민이 그 이름은 모르는 채 그 성만으로 알고 있는 이름 없는 유명인사. 얼굴 없는 우상이 되어버린 이 처녀는 누구인가? (중략) 국가가, 사회가, 우리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가”

1986년 11월 21일 고 조영래 변호사가 낭독한 이른바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변론 요지 중 한 구절이다. 이 변론 요지서는 32년이 지나 2018년 5월 25일 또 다른 조영래들에 의해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위해 달려온 변호사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이날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설립 30주년을 맞아 ‘인권과 민주주의 한길로 삼십년’을 주제로 창립 3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날 민변 변호사들은 선배 변호사들이 써 내려간 이돈명 변호사 구속사건 최후변론, 반민주악법 개폐에 관한 의견서, 호주제 폐지 위헌심판 의견서 등 변론 요지서와 성명서를 낭독했다.

민변은 고 조영래 변호사와 이돈명 전 조선대 총장 등 인권변호사로 구성된 정의실현법조인회(정법회)가 발전적으로 해체하면서 구성됐다. 정법회가 청년변호사회와 결합하면서 1988년 5월28일 지금의 민변이 출발했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보안사 민간인사찰 폭로사건,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 의문사 사건,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등 시국 사건을 도맡았다. 또 김포공항 소음피해소송을 비롯한 다양한 공익집단소송을 기획했고 호주제 위헌심판 사건, 야간집회금지위헌사건 등 수많은 헌법소송을 통해서 헌법상 기본권 실현과 확대에도 기여해왔다. 최근에도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배상소송, 삼성전자서비스 간접고용 노동자 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익인권변론 활동을 넓히고 있다. 변호사 51명으로 시작한 민변은 현재 1180여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법·노동·언론·여성인권 등 15개 위원회와 공익인권변론센터를 두고 있으며 8개 지역 지부를 두고 있다.

 

한승헌 전 감사원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인권과 민주주의 한길로 30년’을 주제로 민변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여성신문
한승헌 전 감사원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인권과 민주주의 한길로 30년’을 주제로 민변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여성신문

이날 행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민변 출신 정치인이 참석했으며 창립 회원인 한승헌 전 감사원장, 함세웅 신부, 기타 지넨 일본 자유법조단 변호사,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이 축사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축전을 통해 “시대가 변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협하는 요소가 다양해졌다. 성차별 등 새로운 유형의 우리가 보호해야 할 피해자가 많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 동반자가 돼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민변의 창립 멤버로 부산·경남 지역 민변 대표를 맡기도 했다. 지난해 대통령 당선 직후 탈퇴했다.

1세대 인권변호사인 한승헌 변호사는 축사를 통해 “민변은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이라며 “이런 사람이 늘어가면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한 자에게 힘을 주고 강한 자가 바르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서 고생하는 이 시대의 선구자가 되자”고 강조했다.

30주년을 맞은 민변은 내외부적으로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회원 숫자가 1000명이 넘어서면서 활동의 폭은 넓어졌으나 회원 변호사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 내부 소통과 조직의 유연한 운영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선배 세대의 성과와 한계를 정확히 평가하고 혁신하는 것도 숙제다. 민변 측은 “역사가 어느덧 30년이 됐지만, 회원 중에 30%가 5년차 이하로 구성될 만큼 젊은 조직이기도 하기 때문에 민변의 역사와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숙제로 던져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민변은 향후 30년을 준비할 결의문도 발표했다. 결의문에는 인권단체로서 인권과 민주주의 실현, 법률가 단체로서 사법개혁과 감시, 사회운동 단체로서 시민과의 소통 및 연대 활동에 매진하겠다는 선언 등이 담겼다.

이날 행사에 앞서 열린 제31차 정기총회에서는 정연순 회장과 강문대 사무총장이 퇴임하고 김호철 회장과 송상교 사무총장이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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