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산업 내에서 

여성 연예인이 부여받는 

발화 자율성 제한적…

여성 연예인을 ‘인형’ 취급하는 

왜곡된 인식 개선해야

 

가수 수지는 자신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이유를 밝히는 글을 지난 18일 SNS에 올렸다. ⓒ수지 인스타그램 캡처
가수 수지는 자신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이유를 밝히는 글을 지난 18일 SNS에 올렸다. ⓒ수지 인스타그램 캡처

최근 여성인권을 위해 목소리 낸 여성 연예인에게 터무니없는 비난이 쏟아져 여성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가혹한 잣대가 또다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여성에게 유독 엄격한 기준을 들이밀고 재갈을 물리려는 사회 분위기가 여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연예인 수지의 사형을 청원합니다.” “양XX 성폭행 주장이 허위사실로 밝혀질 시 배수지도 강력처벌 바랍니다.”

가수 겸 배우 수지가 성폭력 피해자를 지지·응원하고,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강력 수사를 바란다는 의중을 내비치자 나타난 반응이다. 수지는 지난 17일 여성 유튜버 양모 씨가 폭로한 비공개 촬영회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경찰의 엄중한 수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청원 동의’ 인증샷을 올렸다. 이는 ‘미투(#MeToo·나도 말한다)’에 ‘위드유(#WithYou·당신과 함께하겠다)’로 응한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 정상적인 행동 뒤에는 엄청난 ‘후폭풍’이 딸려왔다.

일부 누리꾼들은 수지의 행동을 놓고 소위 ‘페미니즘 논란’ ‘메갈 논란’을 부추겼다. 사건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의 말만 믿고 청원에 동의한 것은 ‘섣부른 행동’이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이래서 말을 아껴야 되는 거야. 연예인이면서 그것도 몰랐냐’는 등 욕설 섞인 조롱도 적지 않았다. 

이에 수지는 자신이 왜 청원에 동의했는지 ‘해명’해야 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이, 이 용기 있는 고백이 기사 한 줄 나지 않았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만약 이 글이 사실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 같았고 수사를 했으면 좋겠고 앞으로 이런 피해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 아직 수사 중이고, 아무것도 나온 게 없다. 어디까지나 (양씨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고 아직 누구의 잘못을 논하기엔 양측의 입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아무것도 안 나왔다. 누구의 말이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의 용기 있는 고백에 힘을 보태주고 싶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피해자는 있을 테니 이 일이 더 확산돼 제대로 된 결론이 내려지길 바랐다.” 수지가 지난 18일 SNS를 통해 밝힌 입장이다.

 

가수 겸 배우 수지 ⓒJYP 엔터테인먼트
가수 겸 배우 수지 ⓒJYP 엔터테인먼트

하지만 그의 설명에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한 매체는 ‘양예원 사태 진실공방…수지, 돌아보면 경솔했던 선의’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보도하고 수지의 선의가 경솔하고 성급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여성 유튜버의 성폭력 피해 고발이 허위사실일 경우 수지의 처벌을 바란다’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해당 청원에는 실제로 수백 명이 ‘동의’했다. 양씨를 무고죄 가해자로 확신하고, 그를 옹호한 수지를 양씨의 공범으로 보는 듯했다. 수지의 행동을 비판하는 이들은 수사가 완료되기 전까지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사실상 그들의 속내는 피의자의 입장에 치우쳐있던 셈이다.

이번 사건은 연예산업 내에서 여성 연예인이 부여받는 발화 가능 내용·수위, 자율성 등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보여줬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내가 허락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말하고 행동하라’는 명령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는 셈”이라며 “특히 이는 여성 연예인에게 더 강하게 작용된다”고 짚었다. 이어 그는 “수지는 꼭 이번 사건만이 아니라 그동안 촬영을 빌미로 부당한 요구가 있어왔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과 같다. 하지만 일부 누리꾼은 초점을 엉뚱한 데 맞춰 수지가 주장하고자 한 논점을 흐렸다”고 설명했다. 

여성 연예인의 입을 막으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인형’ 취급하는 인식부터 바꿔나가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는 과연 여성 연예인을 노동하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애교 부리기나 꽃처럼 있기 등 방송사, 제작사, 팬 등이 여성 연예인에게 더 혹독하게 요구하는 것들이 과연 옳은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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