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김경애 편집위원
나비 ⓒ김경애 편집위원

나비

시골에 와서 나와 우리 강아지 ‘뭉치’는 나비만 보면 같이 쫓아다녔다. 뭉치는 처음 보는 나비가 신기해서 쫓아다니는 것 같았고, 나는 사진을 찍느라 쫓아다녔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놈들이 다 있나 싶어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어댔다.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하는 대표적인 곤충인 나비는 서울 도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어 서울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대합실에 사진으로 대신 봤는데, 바로 그 나비들이 실물로 우리 마당을 찾아왔다.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라는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않게 되는 것처럼 나비는 박제된 동물 표본 같은 존재가 돼버렸는데, 시골 우리집 마당에 그야말로 노랑나비, 흰나비, 호랑나비, 검정색 제비나비까지 찾아온다. 그 밖에도 이름 모를 여러 가지인 예쁜 나비들이 찾아온다. 작년에 보았던 나비가 다시 찾아오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살아낸 것이 대견하다. 나비는 겨울을 어떻게, 어디서 나고 자라나는지 모르겠지만 죽지 않고 다시 찾아오면 반갑고 또 안도한다. 그런데 나비가 특히 꼬이는 꽃이 있다. 부처꽃이 한창 필 때에는 흰나비가 한 가득 붙어있고, 제비나비는 범부채꽃과 프록스와 꽃무릇을 좋아해서 여기 저기 꽃에 부지런히 앉았다 날아가곤 한다.

잠자리

잠자리 떼가 날아다니기 시작하면 고통스럽게 더웠던 여름이 끝나고 있구나하고 알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서울 생활에서 잠자리는 까마득히 잊었던 존재였다. 그런데 잠자리는 이제는 한여름부터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늦여름 하루는 그야말로 떼로 몰려와 잠시 우리 집 마당을 마구 선회하다가 떠났다. 몸집이 빨간색인 고추잠자리는 노래로만 알았지 본적이 없었는데 저녁 산책길에 마주했다. 몸집이 가느다랗고 푸른빛을 띠는 잠자리도 처음 보았다. 검은색과 흰색의 줄 무늬 잠자리도 있다. 잠자리도 종류가 많은 것이다.

시골에서는 나비나 잠자리와 같이 예쁜 곤충들과는 쉽게 친해지지만 거미나 지렁이나 지네와 같이 생긴 것이 징그러운 벌레들과도 함께 살아야한다. 곤충의 세계에서도 인간은 외모지상주의를 적용해서 편을 가른다. 나도 그랬다. 그렇지만 징그러운 곤충들도 알면 애틋한 마음이 생기고 멋있기까지 하다.

지네

지네는 독사와 함께 시골 생활에서 가장 공포에 떨게 하는 놈이다. 지네는 발이 무수히 많아 생긴 것부터 징그럽다. 처음에는 발이 많은 신발이와 구분이 안가 신발이가 보이기만 해도 지네라고 비명을 지르곤 했다. 그런데 신발이는 지네에 비해 작고 연약하다(?). 지네는 파리채로 두들겨도 잘 죽지 않을 만큼 강하다. 지네는 습하고 어두운 곳에 서식하는데, 이웃들은 우리 집 대밭에 지네가 많이 살 것이라고 말하면서 닭이 지네를 잘 잡아먹으니까 닭을 놓아서 키우라고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와 17여 년간 같이 살았던 강아지 ‘뭉치’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애달팠던 기억 때문에 이별이 두려워 다시는 살아있는 생물은 키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고, 키우던 닭을 잡아먹는다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은 일이어서 닭을 키우지 않는다.

지네 이야기가 나오면 동네 이웃들은 저마다 지네에 물린 경험을 너나 할 것 없이 털어놓는다. 잠 자고 있는데 지네가 자신의 몸을 지나가는 것 같아 일어나보니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어 죽였다고 하고, 또 지네가 죽어 있는 것 같아 손을 대다 손가락을 물렸다고 하기도 하고, 자다가 지네가 물어 이불을 털면서 아무리 찾아도 못 찾았는데, 결국 자신의 몸에 붙어 있었다는 무시무시한 경험담이 수두룩하다. 하루는 우리 부엌에 지네가 나와서 내가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쳤다. 지네를 퇴치한 남편은 조만간 또다시 한 마리가 나올 것이라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에 또 한 마리가 나타났다. 지네는 암수가 커플로 다닌다고 한다. 자신의 짝이 죽고 난 후 슬퍼했을 나머지 지네 한 마리의 마음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남편과 나는 집 주변에 지네 퇴치용 가루약을 뿌렸다. 옛날 한옥은 나무의 자연적인 모습을 완벽하게 다듬지 않고 지어서 마루와 문에는 틈새가 많다. 이 틈새에 종이를 끼우는 등 지네가 집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지네는 자신이 살아가는 생존 전략으로 발을 많이 가지고 있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사람을 무는지 모른다. 다만 사람들이 자신들이 만든 편견 때문에 지네를 징그러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지네가 잡아먹는 천적도 있을 텐데 편견 때문에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마당에 있는 지네는 죽이지 않기로 결정했고, 집안에 못 들어오게 하고 혹시 들어와도 쫒아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정작 아주 작은 지네가 방안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놀라서 강력한 살충제로 한방에 죽였다. 잔인한 나!!

 

벌새 ⓒ김경애 편집위원
벌새 ⓒ김경애 편집위원

거미

도시에서 살면서 흔히 보면서 제일 징그러워하거나 무서워하는 것이 거미다. 거미는 부지런하기도 해서 여기 저기 거미줄을 친다. 하룻밤 사이에 넓은 공간을 널뛰기하듯 하면서 집을 짓는다. 아침에 마당에 나가면 늘 지나다는 길에서도 거미줄이 얼굴에 부딪치는 것은 흔한 일인데, 처음에는 아침부터 불쾌했다. 그런데 TV에서 거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고, 거미가 겁이 많은 곤충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가 거미를 무서워하는 보다 거미가 사람을 더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래로 크고 시꺼먼 거미를 제외하고는 거미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서울에서는 시꺼먼 색의 거미 만 봤는데, 시골에는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거미 종류도 많다.

지렁이

지렁이도 징그러운 모습 때문에 거미만큼이나 사람들이 싫어하는 곤충이다. 그런데 지렁이가 땅 속을 다니면서 토양을 기름지게 한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대견한 동반자로 생각하게 되었다. 땅을 파다 지렁이가 나오기라도 하면 다시 흙을 덮어주고, 햇볕 나는 마당에서 헤매고 있는 놈은 그늘이 드리운 풀 속으로 보낸다. 동덕여대에 재직할 때에 종종 해가 쨍쨍한 날 캠퍼스의 시멘트 바닥 위에서 괴로워하면서 헤매고 있는 지렁이를 보면 나무 속 그늘로 옮겨다 주곤했다. 동덕여대를 떠나면서 나 없이도 동덕여대는 잘 돌아가겠지만, 지렁이를 다들 무서워하거나 무심하게 지나칠 것이 걱정됐다.

 

노린재 ⓒ김경애 편집위원
노린재 ⓒ김경애 편집위원

노린재

씨앗을 채취하다가 줄기의 붙어 있는 색색의 아름다운 등을 가진 다양한 색깔의 벌레를 만나서 친구들에게 이놈들이 누구인지 공개 질문을 했더니 꽃과 나무에 대해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최영희가 이놈들이 노린재라고 알려줬다. 두 마리가 붙어서 여기 저기 다니며 즐겁게 뛰어논다. 영국 귀족 집안의 문양이 이 노린재를 보고 흉내 낸 것이리라. 하늘메발톱의 씨앗을 받기 위해 가지를 꺾었더니 노린재가 여러 마리 따라와서 툭 쳤더니 놀랍게도 하늘로 날아갔다. 날 줄도 아는 놈이다.

그 밖에도 우리 마당에 찾아오는 벌새도 있는데, 새로 분류돼 곤충이 아닌지 모르나 날개 짓을 빨리하기로 으뜸으로, 그 만큼 빨리 옮겨 다니며 꽃에서 꿀을 먹고 산다. 또 왕개미, 왕벌, 여치, 귀뚜라미와 달팽이도 살고 도마뱀이 가끔 보이기도 한다. 매미가 벗어놓은 허물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두꺼비와 개구리가 마당을 여기 저기 뛰어다닌다. 나비와 잠자리를 제외하고는 이 작은 동물들은 서울에서는 왠지 징그럽고 싫었지만 이제 더불어 사는 이웃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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