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이민숙 노래친구들 랄라라 대표

‘뽀뽀뽀’ 1회부터 종영까지

30년 간 음악감독 맡아

작곡 동요만 1만여곡

어린이 전문 프로덕션 세우고

제작자로 나선지 1년

자극적 콘텐츠 대신

재미·교육성으로 승부

 

1981년 5월 첫 방송한 MBC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는 국내 대표 아동 프로그램이었다.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될때까지 이어졌던 이 프로그램은 2013년 8월 7755회를 끝으로 32년 만에 막을 내렸다. 어린 시절부터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일은 성인 시청자 뿐만 아니라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들에게도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특히 뽀뽀뽀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자리를 지켰던 음악감독 이민숙씨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22살 때부터 32년 간 뽀뽀뽀 제작에 참여했어요. 방송에 쓰이는 동요를 작곡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쉽진 않았지만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보람이 컸지요. 그 전에도 폐지 위기가 있었지만 잘 넘겼는데 결국 종영돼 아쉬움이 컸어요.”

그는 뽀뽀뽀 음악감독이자 MBC 어린이합창단을 이끈 한국 동요의 산증인이다. 뽀뽀뽀가 종영될 때까지 100명의 PD가 거쳐가는 동안 그는 뽀뽀뽀 음악감독 자리를 지켰다. 지드래곤을 비롯해 배우 이인혜, 류덕환, 김민정, 김새론 등 어린 시절 그를 거쳐간 제자들도 수두룩하다. 특히 “일어나요 일어나요 어서어서 일어나 일어나세요”로 시작하는 ‘일어나요’와 ‘엄마는 예뻐요’ 같은 인기 동요는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지금까지 작곡한 곡만 해도 1만여곡에 달한다. 그가 지난 2017년 키즈 콘텐츠 전문 프로덕션 ‘노래친구들 랄라라’를 세운 이유는 이렇게 만들어진 동요가 많은 어린이들에게 불려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였다.

“대중가요가 인기를 끌면서 어린이들도 가요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귀에 꽂히고 신나잖아요. 그에 비해 느리고 밋밋한 동요를 부르는 아이들은 줄어들었고요. 동요에 대한 관심이 줄고 자연스레 동요 시장이 침체되면서 뽀뽀뽀도 막을 내렸고 MBC창작동요제도 사라졌어요. 동요만큼 동심을 잘 표현하고 교육적인 노래도 없지 않나요. 그래서 제가 만든 노래를 트렌드에 맞춰 새롭게 내놓으면 더 많은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총괄프로듀서이자 대표가 됐다. 사비를 들여 연습실과 크로마키 전용 스튜디오, 음악전문 녹음스튜디오, 영상과 음악마스터 작업을 하는 종편실까지 갖췄다. 바로 4분 내외 분량으로 동요에 쉬운 율동을 곁들인 영상을 제작했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이 직접 율동을 추는 모습도 담았다. 그는 대표적인 ‘레거시 미디어’(전통 언론)인 TV 출신이지만 TV를 포함해 유튜브, 페이스북, 온라인 포털사이트 등 뉴미디어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시청자를 찾아가겠다는 의지다. 이 대표는 노래친구 랄라라가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에 의한’ 놀이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정서적 안정이 평생을 간다고 생각한다”며 “주입식 교육에 지친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동요 분야에서 30년 넘게 한우물을 파며 수천명의 어린이와 부모를 만난 그는 동요작곡가보다 교육자에 더 가까운 듯 보였다.

 

기네스북 오른 동요 작곡가

-1981년 5월 25일은 ‘뽀뽀뽀’가 첫 전파를 탔습니다.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어요. 어머니 영향이 컸죠. 어머니께서 피아노를 치셨어요. 음악가 현제명 선생님 제자였고요. 저희 6남매에게 음악을 시키셨는데 그 중에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지인을 통해 뽀뽀뽀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고 시작했는데 30년 넘게 할 줄은 몰랐죠.”

-작곡한 곡이 1만곡에 달하신다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매주 방송을 하기 전 대본이 나오면 한 주에 40여곡을 녹음해야 하고, 그 가운데 20곡 정도를 작곡해야 했어요. 현재 보관하고 있는 작곡노트가 80여권 정도가 돼요. 가장 많은 동요를 작곡해 한국 기네스북에도 올랐었죠. 워낙 많다보니 어디서 흘러나오는 곡이 ‘많이 듣던 노래네’ 하고 보면 제 노래인 경우도 있었어요. 그래도 기억에 남는 곡은 ‘일어나요’예요. ‘똑순이’ 김민희씨가 불렀는데 뽀뽀뽀 체조곡으로 방송에 쓰이면서 국민 동요가 됐죠.”

-‘뽀뽀뽀’ 종영 후 어린이 전문 프로덕션을 시작하게된 계기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바로 뽀뽀뽀에 투입됐어요. 1981년 5월 25일 첫 방송부터 종영 때까지 32년을 함께 했는데 끝이 난다고 생각하니 섭섭한 마음이 컸죠. 하지만 뽀뽀뽀 종영은 그만큼 시대가 변했다는 방증이기도 해요. 아이들은 더이상 뽀뽀뽀 방영 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지 않는다는 거예요. 시장이 변화하고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어린이 프로그램에도 변화하가 필요하다고 본 거죠.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유튜브였어요. 양질의 콘텐츠를 그것도 무료로, 아무 때나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최근 다양한 어린이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지만 자극적인 내용이나 표현이 나오는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어린이가 시청할 수 있는 영상인데도 출연자가 소리를 지르거나 자극적 표현을 쓰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안정적이고 교육적인 내용의 영상을 제작하고 있어요. 율동을 보여주는 어린이를 선발할 때도 아무리 끼가 많아도 성인이나 출 법한 동작의 춤을 추는 아이보다는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를 뽑아요. 노래친구 랄라라 라는 작은 공간만큼은 동심을 지켜주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그렇다고 교육성만 추구하진 않아도 무엇보다 아이들과 온 가족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콘텐츠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부·칫솔질도 노래 소재

-플랫폼이 다르다보니 같은 분야라도 새로운 도전이 쉽지만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2년은 수입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웠어요.(웃음) 한두 해 할 거였으면 이렇게 투자하지도 않았죠. 장기적으로 보고 음악 전문 스튜디오와 크로마키 스튜디오, 종편실까지 갖췄어요. 제가 작곡과 편곡, 연출도 맡아서 할 수 있으니 나머지 비용은 크게 들지 않는 편이죠. 지금까지 55편 만들었고 매주 한 편씩 온라인에 업로드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저희 콘텐츠를 보고 여러 기업들의 의뢰도 이어지고 있어요. 칫솔 브랜드의 의뢰로 만든 칫솔질을 주제로 한 ‘치카포카 오케이송’은 전국 초등학교에서 교육용 동요로 사용될 예정이고, 두부 제조 업체의 제안으로 만든 ‘두부킹 마술사’는 유튜브에서 가장 인기있는 영상이에요. ”

-‘동요’ 하면 느리고 밋밋하다는 편견이 있어요.

“‘동요는 어떠해야 한다’는 정형화된 형식은 없다고 생각해요. 가사가 동심에 어울린다면 나머지는 자유로와도 된다는 거죠. 대중가요에서 쓰이는 다양한 스타일도 동요에도 충분히 쓰일 수 있죠. 동요에 트로트 리듬을 가미했더니 반응이 좋은 경우도 있었어요. ‘두부킹 마술사’가 대표적이죠. 틀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내용이죠.”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나셨죠. 30년 전과 지금 달라진 점이 있나요.

“30여년 동안 수천 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변해가는 모습을 봤어요. 예를 들면, 음식을 싸오면 예전에는 먼저 가져와서 ‘선생님 드세요’ 했다면, 지금은 애들이 먹고 남은 걸 갖다 줘요. 환경이 변하면서 아이들도 변하는 거죠. 작은 부분일 수 있지만 예의와 배려는 아이 미래에 지침이 될 수 있는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의 역할도 중요하죠. 엄마들이 자녀를 연예인 시키고 싶어 찾아오는 경우도 많아요. 너무 어린데 ‘미인대회에 내보겠다’거나, 아이는 끼가 별로 없는데도 아이돌 가수를 시키고 싶어 하세요. 가수나 배우로 데뷔한 제자도 있지만 대형기획사에 들어갔다가 데뷔를 못해 7년 만에 나온 아이도 있어요. 저는 부모들께 ‘아이의 판단력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 드려요. 바른 인성을 갖고 판단력을 키운 아이는 심지가 곧고 엇나갈 가능성도 낮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가장 큰 힘

-아이들을 ‘키운다’고 표현하시네요.

“제가 열심히 할 수 있던 원동력은 아이들이에요. 저는 비혼이라 아이가 없지만,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면서 ‘키운다’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어요. 아이들한텐 한없이 너그러웠지만 부모님들껜 엄격했죠. 아직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것은 함께 온 부모니까요. 저와 함께 노래한 아이들이 잘 되는 걸 보는 게 큰 보람이죠.”

-40년 가까이 한 우물만 파셨어요.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없으셨나요.

“주인 의식이 있었기에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맡은 일만 하기 보다 일을 찾아 다녔어요. 어린이 프로그램인데 가수를 섭외해 아이들과 함께 가요를 부르게 하는 시도도 하고, 배우를 섭외해 동요를 부르는 식의 새로운 시도를 쉬지 않았어요. 조용필씨가 출연했고 김혜자씨도 손녀와 함께 출연했어요. 주위에선 오락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지 않는 분들을 어떻게 섭외했느냐고 궁금해했지요. 저는 발로 뛰었어요. 인맥을 동원했고 안되면 녹화장에 찾아가 몇시간이고 기다리고 부탁 드렸죠. 제 정성을 보고 출연을 결심하는 분들도 많았죠. 내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니 성공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물론 힘들 때도 있었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주인의식을 가져야 주인 대접을 받는다’는 말을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아요.”

-노래친구들 랄라라가 창립 1주년을 맞았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동요는 어린이만 불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죠. 저는 노래친구들 랄라라가 어린이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되는데 힘을 쏟을 계획이예요. 시청자 참여를 늘리고 소통을 활성화하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 방식의 제작을 확대할 계획이에요. 연령대에 관계 없이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로요. 큰 돈을 벌 욕심은 없어요. 아이들이 놀고 싶을 땐 놀고 쉬고 싶을 때 올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커요. 이름 그대로 아이들이 ‘랄라라’ 콧노래 부를 수 있는 공간이요.”

 

이민숙 노래친구들 랄라라 대표

△1981~2013년 MBC 뽀뽀뽀 음악감독

△1986~1996년 MBC 어린이합창단장

△1989~2009년 MBC 창작동요제 음악감독·심사위원

△1996년~ 노래친구들 어린이합창단장

△2017년~ 노래친구들 랄라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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