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22년 동안 일하고 임원이 된 필자가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여성 직장인들에게 선배로서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주>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성들이 평생 다이어트에 시달립니다. 전 특히 얼굴이 크고 통통한 편이라서 젊었을 때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에 날씬하고 하늘하늘거리는 여대생들을 보면 너무도 부러웠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저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시절에 당시 유행이었던 단식도 해보려고 했고 밥을 덜 먹으려고 늘 노력했고, 그런 중에도 먹을 것을 보면 많이 먹고 잠들어 버리는 저 자신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입사 초기에 부장님을 모시고 다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부장님은, 남성이었고 입맛이 짧은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몸도 늘 슬림하게 유지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어느 날, ‘아구 아구’ 음식을 흡입하는 저한테, “자네는 밥을 참 잘 먹어서 좋아, 튼튼하고 건강해 보여”라고 했습니다. 저는 흠칫 했지요. ‘아~~ 나는 또 먹는 것을 못 참아서 고상하지 못하게 먹었구나…’라고 자책했고 ‘튼튼해 보인다’는 칭찬을 해 주신 부장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마치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칭찬을 들으면 여성들이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제가 후배사원들과 함께 일하는 위치가 되면서 다른 시각에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은 바로 나의 노동력을 기업이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은 그에 상응하는 월급을 내 노동력의 대가로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제 몸이 건강하지 못하고 체력이 약해서 걸핏하면 아프고 병원에 가고 회의 시간에 아프다고 들락거리면 제 노동력은 품질 불량이 되는 것이죠.

제가 입사 초기에는 한국사회 전체가 농업적 근면성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하여 움직였습니다. 밤낮없이 주말 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훌륭한 인재의 조건이었지요. 이럴 때 여성 인력은 남성 인력에 비해 업무하기에 적합한 인재가 아니었습니다. 아마 몸집도 제법 있고 목소리도 우렁찬 저는 회사 입장에서 보면 “고장 나지 않을 양품”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 예상대로 저는 그 흔한 감기도 잘 안 걸렸고, 밥도 잘 먹고, 밤 늦게까지 해도 아프지 않고 야근 후 퇴근해도 새벽 7시 출근에 큰 어려움이 없는 그런 직원으로 지냈습니다.

외환위기를 넘기고 한국에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디지털혁명과 정보화 사회”라는 화두가 온 나라를 휩쓸었습니다. 마치 요즘 AI나 IoT 등 4차 산업혁명처럼요. 제가 다니던 S 전자에서는, “정보화사회가 되면서 더 이상 농업적인 근면성은 핵심역량이 아니다! 따라서 체력이 약한 여성 인력도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보역량이 더 중요하다”는 인사 혁신을 강조했습니다. 저도 그래서 오랜 시간을 일해도 버텨 내는 신체적 조건은 더 이상 회사에서 성공의 요인이 아닌가?? 했습니다.

S전자는 2005년을 기점으로 영업/마케팅 담당자의 해외 인력 비중이 더 커졌습니다. 그리고 당시 마케팅 역량향상을 담당했던 저는, 해외에서 근무하는 현지인 마케팅 동료들에게 본사의 마케팅 툴을 전파하는 일을 점점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때론 1박5일로 러시아와 유럽 출장을 다녀오는 일도 생기고, 1박 4일 일정으로 미국을 다녀오는 일도 생겼습니다. 샤워는 공항에서 했지요. 새벽 비행기로 현지 공항에 도착하면 바로 출근해서 현지인들과 워크숍을 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출장용 가방에는 옷가지 뿐 아니라 워크숍을 할 때 사용할 자료도 출력해 운반 하는 경우도 있었고, 한국인이 별로 살지 않는 곳에 출장 갈 때에는 현지에 주재하는 동료를 위해 한국에서 부식도 사서 가져갔습니다. 오전 비행기로 귀국하면 바로 사무실로 출근했고요. 시차적응을 위해 하루를 쉰다는 등의 일은 없었습니다.

어라? 물리적인 신체의 강점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했는데??? 힘이 셀 필요까진 없지만, 본인이 원하는 일, 회사가 주는 업무를 적정한 시간 내에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 우리의 신체는 무엇보다 중요한 필수 요건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여성 후배들이 이런 측면에서 약해 보여서 중요하고 긴박한 업무를 맡기기에는 믿음직스럽지 못 하다는 인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대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건, 회사에서 여성 후배들에게 잔소리를 할 때건 한결같이, “몸을 건강하고 튼튼하게 유지 관리하는 것”은 필수 요건이라고 강조합니다.

제가 취업 준비생이라고 가정해 보면, 혈색이 나쁘고 몸이 너무 마르고 대답하는 목소리도 기어 들어가고 혈색이 창백하다면, 제가 보유한 역량이 훌륭하다 해도 “같이 일하기엔 무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체력은 국력, 건강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옛날 말이 정말 맞습니다.

조은정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비자학 박사 학위를 받은 조은정 박사는 1995년 삼성그룹 소비자문화원에 입사해 22년간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 연구소장, 프린팅사업부 마케팅그룹장 등 삼성전자의 마케팅 및 역량향상 업무를 진행했다. 여성신문에서 재능기부 하고 있다.

< 이 글은 여성신문의 공식의견과는 무관합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