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 바꾼 30대 사건] ② 안동 주부 사건

경북 안동에서 한 여성이

성폭행 위기서 가해자 혀를

깨물었다 ‘과잉방어’로 기소

1심서 징역 5개월 선고 받아

여성신문 창간 준비호부터

재판과정·판결 문제점 보도

정조 강조하는 언론 행태·

가부장적 검찰 인식 드러내

 

여성신문은 1988년 10월 28일자 창간 준비호(0호)에서 특집기사 ‘2천만 여성이 분노한다’를 통해 사건을 심층 보도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신문은 1988년 10월 28일자 창간 준비호(0호)에서 특집기사 ‘2천만 여성이 분노한다’를 통해 사건을 심층 보도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월 26일 새벽 1시 10분경. 경북 영양군에 사는 30대 여성이 큰길에서 집으로 가는 지름길인 골목으로 들어서던 참이었다. 뒤에서 ‘후다닥’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양쪽에서 남자 두 명이 피해자의 양쪽 팔을 틀어쥐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중 한 명의 손이 곧바로 피해자의 바지 속으로 들어왔다. 깜짝 놀란 피해자가 정신없이 발버둥쳤지만, 남자들은 피해자를 발길질했다. 이 상황에서 가해자 중 한 명인 신모(19)씨는 강제로 키스를 하려다 피해자에게 깨물려 혀가 잘린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경북 영양군에서 벌어진 이른바 ‘안동 주부 사건’ 경위다. 세상에 ‘강간범 혀 깨문 주부’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1심 구형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로 취급돼 ‘유죄’ 판결을 받으며 성폭력 위기에 처한 여성이 취할 수 있는 ‘정당’한 자기방어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 여성신문은 1988년 10월 28일자 창간 준비호(0호)에서부터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다루며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사회 통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 보도는 ‘흥밋거리’ ‘엽기사건’ 수준을 넘지 못했다. 여성신문은 곧바로 취재진을 사건 현장인 경북 안동에 급파했다. 갖가지 억측을 바로잡아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수사, 재판 과정에서 피해여성에게 가해진 2차 피해를 공론화하기 위해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현장 취재에 나섰다. 당시 여성신문은 해당 사건을 ‘안동 주부 사건’ 또는 ‘영양 주부 사건’으로 호명했다. 성폭력 사건에는 늘 피해자의 이름을 붙이는 보도 관행을 깨기 위한 시도다. 하지만 피해여성의 실명을 기사에 그대로 노출해 피해자 인권 보호에는 소홀한 측면도 보여준다. 이후 여성신문은 피해자 인권을 보호하고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실명이나 직업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여성신문 편집부장이었던 박효신씨와 박혜숙씨는 현장에서 재판 과정을 충실히 취재하고 판결문, 언론 보도를 여성의 시각에서 다루며 2개면에 걸친 창간 준비호 특집기사 ‘2천만 여성이 분노한다’를 만들어낸다. 박효신 전 여성신문 기자는 “당시 제도권 언론 보도는 이 사건을 재밋거리로 다루거나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고 관심을 받지 못했다”며 “여성신문은 여성단체들과 함께 공동변호인단을 꾸리고 안동에 내려가 재판 과정과 피해여성이 재판이 끝난 뒤 호송차를 타고 들어가는 모습 등을 심도깊게 다뤘다”고 회고했다. 창간 준비호는 여성 편집 방향과 보도 태도에 바로미터가 돼왔다. 제도권 언론에서 활동하다 여성신문 창간에 동참했던 박 전 기자는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목소리 내지 못하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여성 등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보도하는 것이 여성신문의 역할이자 힘”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기자는 이후 승소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이 사건을 추적, 보도했다. 그동안 피해자는 홀로 성폭력 가해자와 수사기관에 대항해왔으나, 이 때부터 여성계가 함께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89년 2월 3일자 제9호 ‘변OO 씨 사건 승소는 인권 승리’ 기사. 당시 피해자의 이름을 공개하고  이는 여전히 피해자 이름을 딴 ‘OOO 사건’으로 불린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89년 2월 3일자 제9호 ‘변OO 씨 사건 승소는 인권 승리’ 기사. 당시 피해자의 이름을 공개하고 이는 여전히 피해자 이름을 딴 ‘OOO 사건’으로 불린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피해자, 가해자로 법정에 서다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자였지만 남편이나 친구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발길질로 다친 몸을 이끌고 병원에 입원했을 뿐이었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되려 성폭력 가해자들이 오히려 피해자를 자처하며 피해여성을 고소하면서다. 5월 27일 구속 수감된 피해자에게 적용된 법률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죄’ 였다. 3개월 뒤인 9월 21일 대구지법 안동지원 합의부(재판장 이유주)는 피해자에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죄’를 적용,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반면, 가해자들은 ‘강간미수’에서 ‘강제추행미수’로 공소장이 변경되며 각각 2년6월, 3년으로 형량이 가벼워진다.

당시 재판 내용과 판결문은 성폭력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차별성과 성폭력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가해자의 변호사는 피해자 피해자가 사건 당일 먹은 술의 양, 동서와의 불화 등을 계속 거론하면서 사건의 중심에서 벗어나 피해자를 ‘부도덕한 여자’로 몰아세웠다. 검사도 폭행 당시 행위의 순서가 진술 때마다 바뀐다며 피해자를 호통쳤다. 판결문 또한 재판부가 여성의 인권보다 남성의 혀를 더 중시하는 남성 중심적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다. 재판부는 유죄 판결의 근거로 ‘피해자가 혀를 깨물어 가해자가 놀라 피하게 하는 정도로 그쳐도 될 것을 물어뜯어 혀를 잘랐다’는 점과 ‘범행장소가 상가가 밀집돼 있고 범인이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으니 피해자가 공포에 떨어 혀를 깨물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혀를 자른 것은 정당방어가 아니라 과잉방어라고 인정한 것이다. ‘피해자가 죄인으로 취급되는’ 성폭력 사건 재판과정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피해자는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실과 목숨을 바꾸겠다”며 “공소장과 판결문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의 남편 또한 피해자의 무죄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가족 외에는 아무도 피해자의 편에 서지 않았지만 그는 어떤 위압에도 굴하지 않았다. 당시 여성신문 보도를 보면 피해자는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조서에 “나는 술에 만취해…” “내가 유혹해서…”라고 작성하려고 하자, 수갑찬 손으로 책상을 치며 거짓조서를 받을 수 없다고 항변했다. 현장 검증도 피해 장소가 아닌 곳에서 진행하려던 것을 피해자의 문제제기로 두 곳에서 진행됐다.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현 명예교수)는 당시 여성신문에 ‘안동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기고에서 “성도덕 관련 법 조문에 강간이 살인, 강도 등과 같은 중형으로 간주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판결은 사건의 상황이나 피해자의 인적 상황 등에 대한 주관적 판단이 중시되는 것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여성 연대로 일궈낸 승리

1심 구형 소식이 알려지며 여성계를 중심으로 재판부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잇따랐다. 여성의전화(현재 한국여성의전화)를 중심으로 여성폭력 추방을 위한 긴급시민 대토론회 ‘강간에 대한 정당방위도 죄인가’를 열고, 안동지원 유죄 판결에 대한 항의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피해자의 무죄를 강력히 주장했다. 항소심 변론을 위한 공동변호인단도 구성된다. 조창영, 김은집, 강기원, 황산성, 한숭헌, 박원순, 박주현 변호사 등 7명이 무료변호를 자청한다. 대구 지역 여성단체, 여성단체연합 등도 연대하며 공동투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 결과, 이듬해 1월20일 항소심 재판부인 대구고법 형사부(재판장 변재승 부장판사)는 이 사건을 ‘정당방위’로 인정해 피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여성의 자위권을 법적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여성신문은 89년 2월 3일자 제9호 ‘OOO 씨 사건 승소는 인권 승리’ 제하의 기사에서 피해자의 항소심 승소판결을 전하면서 “기존 판례를 뒤엎고 여성의 성과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귀중한 선례”로 평가했다. 당시 노영희 여성의전화 공동대표는 “이번 승소는 개인의 승리를 넘어 전체 여성의 승리”라며 “정부 당국과 검찰, 사법부는 만연한 성폭력 근절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안동 주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법정 장면. 이 영화의 각본은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 받은 이윤택 연출이 썼다.
안동 주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법정 장면. 이 영화의 각본은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 받은 이윤택 연출이 썼다.

이 사건은 90년 9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감독 김유진) 로 영화화될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컸다. 성차별적인 현실을 고발한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인물이 이윤택 연극연출가다. 여성 차별을 꼬집고 성폭력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던 그는 28년 뒤 성폭력 가해자로 법정에 섰다. 

2018년 현재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투 운동은 미국에서 시작됐다거나 누군가 촉발한 것이 아니다. 이미 30년 전에도 한 여성이 온갖 루머 앞에서도 당당히 결백을 주장했다. 이 피해자의 ‘말하기’ 역시 미투 운동이다. 공기처럼 퍼져있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맞서는 유효한, 그리고 거의 유일한 방법인 ‘말하기’는 계속돼야 한다. 생계를 걸어야 할만큼 위험을 감수한 여성들의 말하기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경청하고 분노하고 이어 말하는 여성 연대가 뒷받침돼야 한다. 안동 주부 사건은 여성의 말하기로 드러난 성차별 현실을 여성 연대로 바꿔낸 승리의 역사로 꼽을 수 있다. 

당시 열린 ‘긴급시민대토론회- 강간에 대한 정당방위도 죄인가’에 참여했던 심영희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안동 주부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이슈화된 성폭력 사건”이라며 “성폭력이라는 말도 사용

심 교수는 당시 성폭력 가해자였던 두 청년의 어머니들이 피해자를 향해 쏟아낸 막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여성임에도 가족과 자식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피해자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퍼붓는 어머니들은 당시 한국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인식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당시 공공연히 사용되던 ‘가정파괴범’이라는 용어는 80년대 성폭력에 대한 인식 수준을 드러낸다. 가정파괴범은 부부가 사는 가정에 침입해 강도짓을 한 뒤 부인을 성폭행하는 강도강간범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아내가 성폭행 당하면 가정불화가 생기고 이혼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당연하듯 사회 전반에 자리잡았던 시대였다.

30년이 흐른 지금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심 교수는 성별, 연령 등 집단에 따라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차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미투가 이어지고 있는데 인식이 변하지 않는 쪽이 있으면 더 큰 변화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이 변화를 어떻게 불러올 것인지가 과제”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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