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한국성폭력상담소가 12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공직자의 강간문화 실천 행위 옹호한 사법부와 청와대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 “우리가 눈까지 뿌려야겠냐”를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한국성폭력상담소가 12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공직자의 강간문화 실천 행위 옹호한 사법부와 청와대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 “우리가 눈까지 뿌려야겠냐”를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세연·성폭력상담소, 12일 긴급 기자회견

“탁현민 일부승소 판결은

여성의 목소리 억압하고

고위공직자 비판할 언론 자유 침해

‘탁현민 첫눈 오면 놓아준다’는 청와대,

낭만적 수사로 성폭력 감싸지 말라”

“성평등 여정에 찬물 끼얹는 판결을 규탄한다! 첫눈은 오늘도 오고 있다! 이제는 내려와! 탁현민을 즉각 퇴출하라!”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여성신문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의 1심 판결과 관련해,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12일 오전 11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청와대와 사법부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탁 행정관은 지난해 7월 여성신문에 실린 기고글 ‘내가 바로 탁현민의 그 ‘여중생’이다’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여성신문을 상대로 3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민사86단독 김상근 판사)은 지난 10일 1심 판결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여.세.연과 성폭력상담소는 “이번 판결은 가해를 폭로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지우고, 고위 공직자에 대한 비판의 자유에 재갈을 물려 언론의 공익성을 위축시킨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고위 공직자가 강간을 판타지로 여성에 대한 명백한 성폭력을 성문화로 낭만화한 내용을 출판해도 문제되지 않으며 공적 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 “‘미투(#MeToo)’ 운동으로 촉발된 여성들의 목소리를 또다시 억압하면서 성평등으로 향하는 여정에 찬물을 끼얹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탁 행정관이 과거 여성을 적나라하게 대상화하고 비하하는 내용을 책으로 써서 유포해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음을 언급하며 “탁 행정관의 명예훼손은 여성신문사가 아닌 그 책을 쓴 바로 그 자신”이라고 질타했다. 탁 행정관이 해당 기고글에 대해 정정 혹은 반론보도를 제기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소송부터 제기한 데 대해서는 “여성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틀어막으려는 저열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최근 탁 행정관이 사의를 표명하자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며 반려한 청와대에 대해서는 “‘낭만적’ 수사를 통해 성폭력 사실을 지워버리고 가해자를 감싸주는 강간 문화를 강화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고위 공직자의 왜곡된 젠더의식을 관용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며 “구조적인 성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할 정부가 고위 공직자의 문제적 저서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키게끔 하는 것은 남성 중심 정치가 전혀 바뀌지 않았으며 여성들의 요구는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진옥 여세연 대표는 지난 1년간 탁 행정관 비판·사퇴 여론이 높았으나 청와대와 주요 정관계 인사들이 탁 행정관을 옹호하는 데 “분노를 넘어 무력감과 좌절을 느낀다”며, “청와대가 탁 행정관을 보호하는 이상 ‘젠더폭력을 발본색원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믿을 수 없다. 청와대는 탁 행정관이 없이 작동하지 않는 무능한 집단인가? 우리가 촛불혁명으로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라고 질타했다.

또 “여성 운동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판결을 내린 사법부는 미투 운동과 혜화역 시위에 참여하는 수백만 여성의 절규를 다시금 외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남성들에게 강간은 낄낄대고, 추억에 젖고, 권하고, 그게 문화라고 다 그렇게 한다고 말해도 되는 일상이 됐다. 피해자를 탓하고 비방하면서 빠져나가면 끝나는 일이 됐다. 문화전문가에게 말한다. 이것이 강간문화이고 당신이 일조해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탁 행정관은 수천 개의 비판 기사 중에 여성신문만 찍어 소송했다”라며 “반성한다며 본인의 손해만 주장하고 또 다른 ‘여중생들’과 여성언론을 고발한 탁 행정관, 사법부의 1000만원 손배 결정은 1000배의 역행과 퇴행, 손해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서영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원봉사자도 “최근 성폭력 피해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탁 행정관의 과거 저술행위를 묵인하는 청와대는 이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번 판결은 정부가 사실 이런 사건들에 그렇게 신경 쓰고 있지 않다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한국성폭력상담소가 12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공직자의 강간문화 실천 행위 옹호한 사법부와 청와대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 “우리가 눈까지 뿌려야겠냐”를 열어 청와대 피켓을 향해 눈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한국성폭력상담소가 12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공직자의 강간문화 실천 행위 옹호한 사법부와 청와대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 “우리가 눈까지 뿌려야겠냐”를 열어 청와대 피켓을 향해 눈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신문은 이번 1심 판결을 부당한 판결로 판단하고 항소할 예정이다. 이세아 여성신문 기자는 “이번 판결은 사실상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을 침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 미투 운동과 같은 최근 사회 변화에 역행하는 판단이라는 점,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부당한 판결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청와대에는 탁 행정관을 즉각 경질할 것을 요구하라고 외치고 청와대가 그려진 손팻말을 향해 눈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 ‘여중생’들을 지지한다! 우리는 여성신문을 지지한다!”는 구호도 외쳤다. 

다음은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 전문.

 

공직자의 강간문화 실천 행위 옹호한 사법부와 청와대를 규탄한다!

지난 7월 10일, 탁현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이 여성신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인 여성신문은 원고인 탁 행정관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일부 승소 판결(서울중앙지법 민사86단독 김상근 판사)을 받았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과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재판부의 이러한 판결이 고위 공직자가 강간을 판타지로 여성에 대한 명백한 성폭력을 성문화로 낭만화한 내용을 출판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공적 업무 수행에 지장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인 동시에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여성들의 목소리를 또 다시 억압하면서 성평등으로 향하는 여정에 찬물을 끼얹는 결정으로 보고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

작년 7월 “탁현민 즉각 퇴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성평등 대통령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행정관, 탁현민을 경질하라” 기자회견을 열렸고, 7천 여명의 시민의 서명이 청와대에 전달된 바 있다. 그 기간 탁 행정관을 비판하는 칼럼들이 쏟아졌음에도 청와대는 탁 행정관을 경질하지 않았다. 더욱이 탁 행정관은 “제가 바로 탁현민의 그 여중생입니다”라는 기고글을 실은 여성신문을 상대로 그 글이 허위사실을 담고 있고 본인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며 3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탁현민 행정관의 소송은 수많은 기사와 언론사 중에 본인의 피해 경험을 털어놓은 생존자의 글을 실어준 <여성신문>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라는 점에서 더욱 더 문제적이다. 정정 혹은 반론 보도를 제기하는 통상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여성/젠더 이슈를 중요하게 다루는 언론사에 소송을 거는 것은 여성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틀어막으려는 저열한 행위이다. 더군다나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도대체 탁 행정관이 입었다는 3,000만원의 손해는 무엇이란 말인가. 탁현민 행정관의 명예훼손은 여성신문사가 아닌 그 책을 쓴 바로 그 자신이다.

탁현민의 책에 쓰여진 글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 젠더의식의 낮은 수준을 드러내는 해악을 끼쳤지만,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 여성인권 전반과 피해자의 목소리를 틀어막는 심대한 손해를 미쳤다. 자신의 피해사실을 용기 있게 이야기한 생존자와 그 목소리를 유일하게 실어준 <여성신문>의 보도는 여성의 성폭력 현실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키는 언론의 공익적 책무를 다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은 한 남성 고위 공직자의 개인적 분풀이를 명예훼손이라는 미명하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 즉, 이번 판결로 <여성신문>에게 ‘손해’를 배상하게 함으로써 이미 존재하는 여성의 피해사실과 가해를 폭로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지우고, 고위 공직자에 대한 비판의 자유에 재갈을 물린다는 점에서 언론의 공익성을 위축시킨다.

더불어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그의 사퇴설이 보도될 때마다 ‘제발 가지 말아달라’며, 그를 옹호하며 청와대를 성역으로 만들어 비판을 봉쇄해버렸다. 탁 행정관의 꾸준한 사퇴 의사 표현과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는 ‘낭만적’ 수사는 성폭력 사실을 지워버리고 가해자를 감싸주는 강간 문화를 강화할 뿐이다.

고위 공직자의 왜곡된 젠더의식을 관용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미투운동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대한민국의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고발해왔으며, 여성들은 성평등에 기초한 사회정의 실현을 국가에게 요구하고 있다.

구조적인 성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정부가 고위 공직자의 문제적 저서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키게끔 하는 것은 남성 중심 정치가 전혀 바뀌지 않았으며. 여성들의 요구는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한 정부임에도 여성들이 계속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구호 이상 아니었다는 것을 드러내며, 이 정부가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과 한국성폭력상담소,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이들은 탁 행정관과 같은 고위 공직자의 왜곡된 젠더의식을 관용하는 시대를 끝내기 위해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8년 7월 12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한국성폭력상담소, 그리고 오늘 기자회견에 함께 한 이들 일동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