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22년 동안 일하고 임원이 된 필자가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여성 직장인들에게 선배로서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주>

 

[나도 승진하고 싶어요] ⑫

 

저는 무뚝뚝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이 경상도 출신이셨습니다. 제 아래로 남자 동생이 탄생하면서 온 집안의 관심이 그 남자 동생에게 집중되었고, 저는 아주 어려서부터 모든 일을 독립적으로 감당하며 자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제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그러나 속으로 잘 참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엄청나게 잘 하진 못 했지만, 그래도 선생님으로부터 야단맞지 않을 정도로 했습니다. 학생의 생활 지침에 어긋나는 딴 짓을 다소 하긴 했지만 큰 사고 없이 무난하게 학창시절을 마쳤습니다.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의 규율은, 교복을 반듯하게 입고, 지각하지 않고, 영화관에 가지 않는 등의 별로 어려운 규율이 아니긴 했지요. 그래서 선생님이나 부모님으로부터 야단을 맞아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회사에 입사했더니, 몇 가지 생소한 요구사항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S그룹은 “신경영”이라는 것을 추진하면서, ‘고객만족, ‘친절서비스’ 등이 키워드였습니다. 그래서 고객 응대 인력 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에게 친절 서비스가 요구되었습니다. 사실 친절 서비스는 1)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2) 상대방이 기분 좋도록 대응하는 것이지요. 미소와 상냥한 말투, “고(맙습니다) / 미(안합니다) / 안(녕하십니까) 운동”이 필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별로 야단을 맞아본 적이 없었던 지라,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별로 해 본 적이 없었고 부모님께 상냥하게 큰 목소리로 인사하는 훈련도 잘 안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누군가 내게 호의를 베풀기 보다는 늘 제가 혼자서 독립적으로 해결하며 살아 왔기 때문에 고맙다는 말에도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별로 “손이 안 가는” 그러나 “무미건조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회사에서 “고미안”, “친절 서비스” 등을 강조하니 제게는 쉽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어렸을 때 훈련을 받지 못 했던 터라, 힘든 일이었습니다. 아마 제 이미지는 ‘묵묵히 사고 안치고 일을 열심히 하는’ 그런 직원이었을 겁니다.

업무 경력이 쌓이면서 드디어 제가 “쫄따구” 지위를 벗어나 같이 일하는 후배가 생겼습니다. 정식으로 그 후배의 상사는 아니지만, “PAIR”로 같이 일을 하면서, 제가 직급이나 경력이 높다 보니, 리더 역할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제 보스는 두 사람의 업무 진행상황에 대해서, 제게 집중적으로 챙겼습니다. 드디어 애로 사항이 생겼습니다. 제가 몰랐고 후배가 한 일에 대해서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었지요. 이런!!! 프로젝트 진행 일정이 늦어지고,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비용을 집행하는 등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제 입에서 이 말이 크게 나왔습니다. 저는 지금도 부장님 자리 옆에 서서, 프로젝트 오류에 대해 보고를 하면서 후배가 한 일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저의 잘 못임을 시인했던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후부터 저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는, 빈발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일은 잘 되게 해야지요. 그러나 일이 잘 못 되었을 때는 빨리 인정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매는 맞을수록 좋다’는 원리입니다. 내가 선배라면 후배의 잘 못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 조직이 굴러가는 리더십의 원리입니다.

제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관찰해 보니, 제 편견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잘 안 하고, 후배의 잘 못은 나와 별개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아마 취업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당당하게 입사하니 자존감이 넘쳐서 그런 것도 있고, 생존경쟁 속에서 개인의 책임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해져서 그런 것도 있겠지요.

그러나 잘못은 발뺌하지 말고 바로 인정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후배의 잘 못도 내 책임으로 하는 것, 이것이 저의 경쟁력과 성장에 큰 힘이 됩니다. “고/미/안”은 정말로 유용하답니다.

 

조은정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비자학 박사 학위를 받은 조은정 박사는 1995년 삼성그룹 소비자문화원에 입사해 22년간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 연구소장, 프린팅사업부 마케팅그룹장 등 삼성전자의 마케팅 및 역량향상 업무를 진행했다. 여성신문에서 재능기부 하고 있다.

< 이 글은 여성신문의 공식의견과는 무관합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