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변호사의 이러시면 안됩니다 –20]

 

같은 회사의 동료, 선·후배 직원인 A, B, C가 있었다. 어느 날 A씨가 없는 자리에서 대화가 있었단다. B씨는 C씨에게 말했다. “그런데 A씨 있잖아. 아무리 봐도 A씨는 딱 내 스타일인 것 같아. 사람이 목소리도 섹시하고 아주 멋있어.” 이 말을 가만히 듣던 C씨는 얼마 후 B씨를 성희롱 가해자로 회사에 신고했다.

어떨까? B씨의 말이 성희롱에 해당할까? 만일 이 말이 성희롱이라고 하더라도, 우선 누구를 성희롱 피해자로 보아야 할 것인지 부터 문제된다. 말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C씨는 아닐 것 같다. ‘섹시하다’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에 C씨에 대해서도 성희롱이 성립할까? 글쎄, 그건 아닐 것 같다. 너무 지나치다.

그렇다면 A씨? A씨가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해서 피해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2006년 내려졌던 결정(06진차465)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면전 아닌 자리에서의, 흔히 말하는 ‘뒷담화’ 형태의 발언도 성희롱에 해당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당사자 없는 자리에서의 언사는 설령 그 당사자에게 사후에 전달된 바 없었더라도, 그러한 발언이 있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성희롱에 해당한다.

그러면 위 발언이 성희롱일까? 성희롱을 규제하는 것은 누군가의 소중한 인격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쉽게 간과해 버려서는 안 되는 논점이 또 다른 한편에 있다. 표현행위에 대한 규제는 그 목적이 아무리 선한 것이더라도 불가피하게 헌법상 보호되는 표현의 자유와 반드시 모종의 긴장관계에 놓일 수밖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표현의 자유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성희롱을 규제해야 할 공익적 필요성이 압도적으로 더 크다면 문제는 간단히 해소될 수 있다. 논란과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은 처음부터 완전히 금지해 버리면 된다. 입을 뻥긋할 수도 없다면 잘못을 저지를 일도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상상일 뿐이다. 개개인의 인격권과 함께 표현의 자유 또한 조화롭게 실현되어야 할 중요한 기본권이다. 성희롱을 엄격하게 규제하면서도 동시에 어느 범위까지를 표현의 자유에 따라서 보호되는 한계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을 세세하게 따져야만 한다. (물론, 최근에 영국에서 대형 풍선으로도 제작된 적이 있는, 큰 바다 건너 계시는,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어느 분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아예 입을 막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아니 드는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말이다.)

누구나 쉽게 인정할 수 있듯이, 거론되는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라면 누구든지 조금 더 폭넓고 관용적인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생각해 보자. 당신이라면 직장 상사가 없는 자리에서조차도 그/그녀에 대한 뒷담화가 금지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필자는 싫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디스토피아’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당사자 없는 자리에서의 언동까지도 우리가 성희롱으로 판단할 수 있더라도, 어쨌든 그 자리는 당사자가 없는 자리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에 어느 표현까지를 용인 가능한 것으로 볼 것인지 더욱 더 섬세하게 준별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를테면 “A씨는 딱 내 스타일인데, 목소리도 섹시하고 아주 멋있어. 언제 회식자리에 데려가서 술에 약이라도 타 먹이고 한 번 해봐야겠어.”라거나, “A씨 말이야. 저 사람 딱 내 스타일이어서 한 번 먹어주고 싶구만. 목소리까지 섹시해서 잠자리에서 죽여주겠는데. C씨는 누구랑 하고 싶어? 골라 봐.”라고 말했다면? (여기서 잠깐! 당부의 말씀을 드리자면, 이건 순전히 구체적인 설명을 위하여 실제로 있었던 여러 사례들로부터 추출해 낸 표현들일 뿐이니,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부디 불쾌해하지 마시고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를. 제가 ‘그렇게까지’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특정인을 지칭하면서 노골적이고 명백한 성적 대상화 발언을 한 것이니만큼 이와 같은 언사는, 그 지칭된 당사자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든 없었든 간에 당연히 성희롱에 해당한다. 아무리 당사자 없는 자리에서라 할지라도 특정인을 성적 대상으로 함부로 입에 올리면서, 그 사람이 천부적으로 가지는 사람으로서의 존엄한 지위를 제멋대로 격하할 자유 같은 것은 보호될 수 없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 특정인의 인격권을 땅바닥에 잔혹하게 내동댕이치는 것까지 용인해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표현의 자유 운운하고 있다면 이렇게 응수해 주자. 웃기시네!

원래의 사례로 돌아와 보자. B씨의 저 말이 특정인을 가리키면서 노골적이고 명백한 성적 대상화 발언을 한 걸까? 비하적이고 모욕적인 취지에서 A씨의 존엄성을 제멋대로 깎아내렸다고 볼 수 있을까? ‘섹시하다’라는 표현이 쓰이긴 했지만, 대화의 전체적인 맥락과 경위, 그 발언 취지 등을 보면 성적으로 모독하려는 뉘앙스가 아니라 여기서는 ‘멋지다’라는 정도의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 A씨가 없던 자리였기에 그 표현의 자유가 보호받는 범위는 좀 더 넓어질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더욱 더 그렇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필자는 위 발언은 성희롱에 해당할 수 없다는 의견을 회신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혹시 필자가 남성의 시각에서 사안을 편협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여성의 관점과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섣부른 판단 아니었느냐고. 반전! 놀라지 마시라. 위 이야기에서 B씨와 C씨는 여성이었고 A씨는 남성이었다. 여성인 상·하급자가 다른 남성 상급자 없는 자리에서 둘이 나눈 대화였다. 이건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원칙의 문제다.

어느 학교에서 고대가요 <구지가>를 수업 중에 설명하다가 해당 작품의 성적 함의를 언급했다는 이유에서 성희롱 가해자로 몰린 교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필자가 이 사건에 관해서 자세히 아는 바는 없으니 성희롱 해당 여부 등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성을 소재로 하는 내용을 발설했다고 해서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성희롱이 성립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성희롱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면 아마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성희롱 가해자 중의 한 사람은 필자가 아닐까? 성에 관해서 일언반구 한 마디도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세상은 매우 기괴하다. 성희롱·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은 이상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대법원은 최근의 판결에서,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추어 볼 때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행위인 성적 언동이 인정될 때 성희롱이 성립하는 것임을 한 번 더 명확히 하였다. 그리고 당사자의 관계, 행위가 행해진 장소 및 상황, 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인 반응의 내용, 행위의 내용 및 정도, 행위가 일회적 또는 단기간의 것인지 아니면 계속적인 것인지 등의 구체적 사정을 참작해 봄으로써 특정의 언동이 성희롱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원칙도 재확인하였다(대법원 2018. 4. 12. 선고2017두74702 판결).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 어떤 말이나 행동이 성희롱인지를 따질 때에는 구체적인 사정을 꼼꼼히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칙과 균형, 그리고 상식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애꿎은 사람에게 성희롱 가해자라는 누명을 씌우지 않더라도 응징을 요하는 진짜 성희롱 가해자들은 세상에 아직도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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