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22년 동안 일하고 임원이 된 필자가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여성 직장인들에게 선배로서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주>

 

[나도 승진하고 싶어요]

1997년 아시아와 한국에 몰아 닥친 외환 위기는 제가 다니던 회사에 참으로 놀라운 변화를 주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동료들을 집에 보내고, 목 좋은 곳에 있는 부동산을 다 팔고 사무실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부실한 해외 거점을 다 정리하는 등의 노력을 마치고 나니 회사는 드디어 적자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자 S전자는, 앞으로 또 이런 경제 위기가 올 때를 대비해서 경영 체질을 변경해야 한다는 기조 하에 다양한 혁신을 진행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고객중심경영’이었습니다. 고객중심경영은 그 이전부터 해왔던 고객만족에서 나아가, 고객접점에서의 친절 서비스만이 아니라 소비자 이해, 상품기획부터 마케팅 및 홍보 활동, 고객서비스까지의 전 영역에 해당되는 혁신이었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직급별로 직무별로 다양한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제 전문분야가 소비자학이었고, 당시 S전자의 고객만족도 조사를 담당했었기 때문에, 고객대상의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해 ‘우리 고객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1시간 정도 강의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고객만족도 조사결과를 해당 업무 담당자에게만 한정하지 말고, 다양한 직무를 하는 직원들에게 공유함으로써 그 직원들이 맡은 분야에서 고객중심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저는 입사 전에도 대학에서 강의를 많이 했었고, 나름 강의를 잘 한다는 평가를 받았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설문조사결과를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해서 소비자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데 자신이 있었습니다. 취지도 좋았고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니, 전 열심히 데이터를 분석했고 강의 자료 준비를 했습니다.

드디어 강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분석한 다양한 결과를 교육생들에게 공유하고 설명하면서, 우리가 개선해야 할 점들이 무엇인지를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당시 저는 직급이 과장이었고, 교육생들은 입사한 지 20년이 된 부장, 차장들이었습니다.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던 중, 갑자기 교육생 중 한 분이 몹시 언짢다는 투로 손을 들었습니다.

“다각도로 데이터를 분석해서 평소에 모르던 고객 인사이트를 소개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재밌다고 하다니 화가 납니다. 우리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루 하루 전쟁을 치루고 있는데, 재밌다고 하니…. 어디 달나라 얘기를 하는 건가요?”

아뿔싸!!! 저는 조사결과를 설명하면서, 제가 발견한 인사이트를 공유하느라 “그런데 재밌는 건요…”라고 말을 꺼냈던 것이지요. S전자의 고객이 불만을 표시한 항목이 무엇이며, 그 불만의 정도가 고객의 특성에 따라서 어떻게 다른지, 경쟁사와의 비교 결과는 어떤지 등을 ‘재밌는 결과’라고 말한 것입니다.

저는 습관적으로 한 말이었으나, 그 자리에서 제 설명을 듣는 분들은 그 일을 잘 하려고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고객의 불만사항을 “재밌는 결과…”라는 말로 설명한 것은, 아무리 분석 결과가 특이했다고 하더라도 그 교육생들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제가 마치 S전자의 후배가 아니라, 방관하는 제 3자 구경꾼으로 보였겠지요.

아마 저는 20년 이상 회사에 정성을 쏟은 부장, 차장님들에 비해 회사에 대한 마음이 덜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는 분들의 노고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 했던 것이겠지요. 크게 반성하고, 그 날 이후로는 회사를 위해 고객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에게 감사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우리 회사, 우리 부서의 일을 내 일로 공감하고 즐거울 때나 힘들 때 같이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신세대 후배들이 보면 올드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의 상황을 남 일로 생각하지 않고 내 일로 생각하는 것은, 조직 생활의 첫 걸음입니다.

조은정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비자학 박사 학위를 받은 조은정 박사는 1995년 삼성그룹 소비자문화원에 입사해 22년간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 연구소장, 프린팅사업부 마케팅그룹장 등 삼성전자의 마케팅 및 역량향상 업무를 진행했다. 여성신문에서 재능기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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