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가현 아리타시에 위치한 백파선 갤러리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일본 사가현 아리타시에 위치한 백파선 갤러리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사료는 미미하지만, 차근차근 준비

일본 도자기의 발상지인 아리타에서 ‘도자기의 어머니’라 불리는 조선 최초의 여성도공 백파선. 그에 대한 사료는 아직은 미미하다. 그의 흔적을 보여주는 사료로는 임진왜란 때 도공이었던 남편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가서 정착해 살았던 곳이 다케오의 광복사 인근이라는 점, 백파선 일가가 도자기를 굽던 고도우게 가마터, 남편 사망 후 영주의 허락을 받아 도공과 식솔 960여명을 이끌고 이주해 도자기를 생산했던 아리타의 히에고바. 후손들이 세운 그의 법탑과 묘비 등을 들 수 있다. 1800년대에 아리타 지역에 난 큰 불로 중요 문서들이 대부분 소실된 상태다. 하지만 백파선의 존재를 되살리고, 그가 지니는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한국과 일본에 존재한다. 여성신문은 지난 7월 백파선의 후손으로 아리타 지역 등에서 도자기 관련 일에 종사하는 후카우미가(家)의 자손과, 백파선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과 연구를 하고 있는 한일관계자들을 만났다.

 

백파선갤러리의 구보다 관장(왼쪽)과 노진주 부관장(오른쪽) ⓒ후쿠오카 아리타=이유진 기자
백파선갤러리의 구보다 관장(왼쪽)과 노진주 부관장(오른쪽) ⓒ후쿠오카 아리타=이유진 기자

'백파선과 김해, 그리고 나'는 운명이었다

우선 일본 아리타시에서 백파선 갤러리와 백파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구보다 히토시 관장은 누구보다도 ‘백파선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아리타시의 시의원이기도 한 구보다씨는 한일백파선연구회 일본대표이기도 하다. 2016년은 아리타도자기 창업 400주년이었다. 아리타지역에서는 ‘도자기의 시조’로 이삼평이 유명하다. 그런 이삼평이 1616년 아리타 이즈미산에서 자석을 발견한 후, 아리타 도자기는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 수출 및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따라서 그런 이삼평을 기리며 축하하는 분위기는 아리타 창업 400주년을 맞아 더욱 화려했다. 도자기계의 공식위인으로서의 이삼평에게 가려져 잊혀질 뻔한 백파선의 존재를 더욱 알려야겠다는 결심으로 구보다씨는 2016년 백파선 갤러리를 개관했다.

구보다 관장은 “백파선의 인생을 상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리타 호온지 묘비에 새겨진 ‘우아한 일가족의 리더 백파선’이라는 글자 뿐이었다.”라고 하며 “백파선의 고향이 한국 경남 김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리타 시의원으로서 김해시 인제대학 학생들과 몇 년 전부터 교류를 해 왔기 때문이다. 매년 설날에는 우리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일본 시골의 설날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백파선과, 김해 그리고 나와의 인연은 아마도 운명인 것 같다”며, 백파선의 존재를 더 애써서 알리려는 이유를 설명했다.

보수적인 소도시인 아리타 시민들은 그동안 ‘도자기의 시조’로서 지역민들에게 섬김을 받은 이삼평 외에 여성 도공 백파선을 조명하려고 애쓰는 구보다 관장에게 호의적이지 않기도 하고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보다 관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지역 주민들에게 백파선 알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백파선을 생각하면 ‘평화’라는 단어가 떠오른다고 했다.

“백파선은 전쟁때문에 어린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왔다. 낯선 이국땅에서 얼마나 삶이 고단했을지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백파선은 전쟁을 짊어지고 살아온 인생이다. 누구보다도 도자기를 빚으며 다시는 전쟁이 반복되지 않도록 평화를 염원했을 것이다. 그런 백파선의 인생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그동안 백파선의 묘비는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아 풀과 쓰레기가 가득했었다. 하지만 구보다 관장 등이 백파선을 알리기 사작하면서 백파선의 묘비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자 동네 주민들이 백파선 묘비 일대를 깨끗이 관리해주는 변화가 일어났다. 본지 기자들이 방문했을 때도 모비는 잘 관리된 상태였다. 구보다 관장은 아리타시에서 뿐만 아니라 백파선의 고향인 김해시와도 연계하여 백파선을 되살리는데 열심이다.

백파선 관련 토론회와 세미나를 열 예정

구보다 관장과 함께 한국에서는 한국도예협회 전 회장이자 백파선 기념사업회의 윤태운 회장이 백파선 되살리기에 동분서주하고 있는 중이다. 윤 회장은 이삼평을 시작으로 간간히 백파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2년 전 구보다 관장으로부터 백파선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조명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윤 회장은 2016년에 한국도예협회를 운영하면서 조선도공기념사업회를 만들었고 그 산하에 백파선기념사업회를 두었다. 백파선기념사업회는 아직 공식적인 출범은 하지 않았지만, 최근 공식적으로 출범하기 위해 다각도로 애쓰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10월에 열릴 이천의 전통장작가마행사를 백파선기념행사 주관 사업으로 할까 구상중이기도 하다. 윤 회장은 “앞으로 백파선 관련 세미나 및 토론회를 열고, 김해시와 논의하여 ‘백파선공모전’을 여는 등, 백파선 되살리기에 매진할 예정이다. 이는 한일 문화교류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백파손의 16대 자손 후카우미 야스시 씨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백파손의 16대 자손 후카우미 야스시 씨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백파선 할머니를 자랑스러워하는 17대 손녀

백파선의 16대 자손인 후카우미 야스시 씨도 할머니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리타시에서 후카우미산류도라는 도자기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후카우미 씨는 평소 가족들에게는 할머니 얘기를 자주 듣지 못했지만, 구보다 씨 등에 의해 할머니 얘기를 최근 많이 듣고 가족들끼리도 할머니에 대해 더 얘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후카우미 씨는 “할머니가 400년 전 환경과 재료가 다른 낯선 이곳에 와서 도자기를 빚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내가 도자기 판매업을 하고 있는 것도 할머니의 영향을 받은 운명적인 일일지 모르겠다. 백파선 할머니에 대해 그리고 조상들에 대해 내 아이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후카우미 씨에게는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두 딸이 있는데, 최근 학교에서 백파선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우리반 후카우미 짱이 백파선 할머니의 자손이라는 얘기를 친구들 앞에서 하시는 선생님 덕분에 아이가 자긍심도 생기고 기뻤다고 한다”고 후카우미 씨는 전하며, 앞으로 할머니의 고향인 김해와 꾸준히 교류를 해나가길 바라며 시간이 허락하는 한 백파선 알리는 일에 적극 참여할 생각이라고 했다.

묘비의 이름 석자를 따라 그 흔적을 찾아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퍼즐 조각을 맞추듯 그 흔적의 꼬리들을 더듬으니, 실체가 보이고 새로운 의미들이 드러나고 있다. 여성도예가 백파선의 공적인 자리매김을 위해 더 많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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