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7시부터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 문화제가 열려 500여명의 여성들이 시위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4일 오후 7시부터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 문화제가 열려 500여명의 여성들이 시위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퇴행” 판결에 분노한 여성들

“분노와 절망이 차오른다. 정말 여성을 위한 나라는 없나?” “사법부는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똑바로 알아야 한다.”

14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 무죄 판결에 페미니스트들은 “퇴행”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정점으로 치닫고, 분노는 더 큰 페미니스트 집단행동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사법부가 권력형 성폭력 근절 ‘걸림돌’ 

여성의 자결권 인정 않고 가해자 편들어”

시민 200여 명이 모여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를 지지하는 ‘지은이가 지은이에게’ 프로젝트를 시작한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도 “이렇게 퇴행적인 결정을 2018년에 보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은 다른 수많은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게 했다는 점에서 ‘미투(#MeToo)’ 운동의 중요한 대목이었다. 이번 판결이 미투 운동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될지 사법부가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모든 것을 걸고 피해를 고발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를 편들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니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어 “유력 대선주자의 ‘위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위력 하에 있는 수많은 여성에게는 어떤 판결을 내릴까? 중소단위 사업장 근무 피해자들, 가정 내 성폭력 피해자들은 이번 판결을 보고 나면 ‘(사법부가) 내 편을 들어 줄까’ 싶을 것이다. 많은 피해자들이 숨고 가해자들은 날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4일 오후 7시부터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 문화제가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4일 오후 7시부터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 문화제가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해자 편드는 사법부에 강력한 불신

‘청부살인’ 단어까지 등장 

이가현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는 “이번 판결로 많은 여성이 더 많은 피해에 노출되지 않을까. 앞으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수사기관과 법원을 믿고 신고하는 일을 더욱 어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온라인에서는 ‘성폭력 피해 여성은 한국 사법체계에 의존하기보다 차라리 사적 복수를 택하는 게 낫겠다’라며 사법부에 대한 강력한 불신이 대두됐다. 1심 무죄 판결이 나온 직후 SNS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청부살인’이 등장하기도 했다. 트위터리안 ‘@realgreenie’는 “이제 누가 법을 신뢰해? 자정작용은 커녕 벌 줄 생각도 없으니 피해자가 손수 위협 무릅쓰고 얼굴 신상을 다 공개하고 나서도 법원에서 비수를 꽂는데. 누가 법을 신뢰해? 누가 법의 존엄함을 믿겠냐고. 고소가 다 뭐냐? 무슨 일 나면 그냥 청부살인 맡기는 게 속 편하다 생각하는 세상이 올 거다”라고 쓰기도 했다. 이 트윗은 하루만에 약 1만7000번 리트윗됐다.

정부는 앞서 미투 운동에 대한 ‘응답’으로 업무상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 추행죄에 대한 법정형 상한을 각각 징역 5년에서 10년, 징역 2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등 권력형 성범죄자 처벌 강화와 2차 피해 예방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월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했고, 지난 3·8 세계여성의날 축사에서도 “정부는 성차별적인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사회 곳곳에서 실질적 성평등이 이뤄지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용기 있는 행동에 호응하는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여성들의 기대에 반하는 판결이 나오면서 이마저 빛이 바랜 상황이다.

이 활동가는 “‘위력은 있지만 위력 행사는 없었다’?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 아니다’와 같은 모순이다. 대한민국의 법이 여성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이 14일 오후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1심 무죄판결을 규탄하는 ‘안희정 무죄 선고한 사법부 유죄’집회를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이 14일 오후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1심 무죄판결을 규탄하는 ‘안희정 무죄 선고한 사법부 유죄’집회를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는 “피해자는 ‘예상했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얼마나 절망이 깊으면 그럴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 (페미니즘 운동에) 불이 붙을 것 같은데 끝까지 함께하겠다”며 기습 시위도 예고했다. 김 평론가도 “폭염보다 더한 화염이 가슴에서 솟는다. 포스터 제작보다 더욱 효과적인 행동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안희정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도 계속된다. 지난 14일 저녁 7시 서울 서부지방법원 앞에서 500여 명이 재판부 규탄 시위와 퍼포먼스를 했고, 오는 18일 오후 5시에는 여성단체가 긴급 집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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