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편파수사 법원은 편파판결, 성범죄자 비호하는 사법부도 공범이다” “더이상은 못참는다 못살겠다 박살내자 강간문화 박살내자” “알고쓰냐 성적자기결정권 조병구를 탄핵하라. 무늬만 성적자기결정권 내용은 정조운운 조병구를 탄핵하라 사법정의 실현하라”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지사의 무죄 선고에 분노한 시민들이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 서울서대문역사박물관 앞 3차로와 인도를 가득 메우고 국가를 향해 울분을 토했다.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미투운동시민행동)’이 개최한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못살겠다 박살내자’ 집회는 4일 전 주최 측이 긴급 공지했음에도 이날 참가자 수는 7천명(6시 기준, 주최측 추산)을 넘어섰다.

집회가 시작된 오후 5시에 인도와 편도 1차선이 가득찼지만 참가자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앉을 공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집회가 시작됐다.

주최측은 이날 긴급 집회를 개최한 이유로 “최근 안희정 성폭력 사건 무죄 판결은 미투(#Metoo) 운동 이후 성 평등 사회로의 전환을 기대했던 수많은 시민에게 큰 좌절을 안겼다”며 “한국사회의 수많은 여성은 경찰·검찰·법원 등 국가권력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어왔다. 이런 사회에서 더이상 살지 못하겠다는 여성들이 이런 사회를 박살 내기 위해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 현장에서는 안 전 지사의 비서 김지은씨 입장을 대독하고, 여성주의 활동가 권김현영씨와 최영미 시인,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의 발언이 이어졌다.

김지은 씨는 입장문을 통해 “직장에서 잘리지 않고 일을 망치지 않으려고 티를 내지 않고 업무를 했다. 안희정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믿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검찰의 집요한 수사와 이상한 질문에 성실히 답했는데 저의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면서 “대한민국에서 이제 제가 기댈 곳은 없다. 그저 가만히 있는 수밖에 없다”고 절규했다. 이어 평범한 시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상사, 권력자들에게 당한 무수한 폭력과도 다르지 않다면서 함께 해달줄 것을 호소했다.

오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피해자의 업무행위와 일거수일투족을 피해자답지 않은 증거로 읽어낸다면 과연 어떤 법이 적용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적용하지 않은 문제부터 살펴봐야 한다”면서 “피해자 답지 않다는 색안경으로는 어떤 성폭력도 적용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법원을 비판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 씨는 발언에 앞서 경찰을 향해 도로에 시위대를 위해 차선을 열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참가자들도 함께 경찰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고, 광화문에서 서대문방향 3차로까지 세를 넓혔다.

 

권김씨는 여성인 김지은씨가 예외적으로 수행비서가 된 배경에는 안희정의 성평등 이미지를 위해서였고, 이를 위해 캠프에서 일중독자로 유명한 김씨가 발탁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성에게 더 높은 업무능력을 요구하는 한국사회에서 예외적으로 비서 자리에 발탁된 여성이 성폭력을 당한 다음날에도 업무를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은 시인에게 명예훼손으로 10억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한 최영미 시인은 “정의는 끊임없는 투쟁이다. 끝까지 연대해 싸워서 새로운 정의를 만들자”고 참가자를 독려했다.

최 시인은 “저는 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김지은씨를 지지하는 이유는 딱 하나”라면서 “그녀는 중요한 문제에 관해 진술을 번복한 적이 없다. 반면 안희정은 합의에 의한 관계냐 아니냐를 번복했다. 처음 사건 발생 때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해놓고는 이후 SNS에 합의에 의한 게 아니다,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소송이 시작되니 합의라고 억지로 진술을 만들어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그리고 미국 여성 흑인 시인 마야 엔젤루의 시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를 낭독했다.

발언이 끝난 후 집회 참가자들은 약 1시간 반 동안 서울역사박물관을 출발해 광화문과 경복궁, 인사동을 통과해 다시 서울역사박물관으로 돌아오는 대규모 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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