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차 윈문화포럼에 참석한 박은관 시몬느 회장이 핸드백의 길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제42차 윈문화포럼에 참석한 박은관 시몬느 회장이 '핸드백의 길'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42차 윈문화포럼 

박은관 시몬느 회장 강연

“한국의 정체성을 가진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나와야 합니다.”

박은관 ㈜시몬느 회장은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진행된 ‘제42차 윈(WIN) 문화포럼’에 참석해 ‘핸드백의 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며 이같이 밝혔다. 

시몬느는 세계 명품 핸드백 업계의 숨은 조력자다. DKNY, 마이클 코어스, 겐조, 지방시 등 전 세계 30여개 브랜드에 명품 가방을 공급하고 있다. 미국 유명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핸드백 물량의 40%는 시몬느가 제작을 맡는다. 연간 해외 매출 규모만 3억 달러(약 3200억원)에 달한다.

“1987년 시몬느를 창업했습니다. 당시 ‘왜 다 끝난 봉제업에 막차를 타느냐’는 말을 들었지만 또 다른 선로를 놓으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 믿었습니다. 특히 메이드 인 아시아(Made in Asia)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주목했죠. 유럽 중심으로 돌아가는 핸드백 시장의 틀을 깨고 싶었어요.”

창업 직후 새로운 거래처로는 도나카란뉴욕을 목표로 삼았다. 유명 백화점에서 도나카란뉴욕 핸드백 6개를 산 뒤 한국에 돌아와 장인들과 핸드백 제조 방법을 분석했다. 이후 최고급 핸드백을 재현해 뉴욕으로 돌아갔지만 벽은 높았다.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아닌 전통이 없는 한국 제조사라는 사실에 의구심을 품은 것. 하지만 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시아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나긴 설득 끝에 전체 생산량의 1%를 맡았고 이후 매년 공급 물량이 증가했다.

 

제42차 윈문화포럼에 참석한 박은관 시몬느 회장이 핸드백의 길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제42차 윈문화포럼에 참석한 박은관 시몬느 회장이 '핸드백의 길'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박 회장은 시몬느가 이토록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장인정신과 표준화 그리고 플랫폼 구축 등을 꼽았다.

“핸드백 장인은 우리의 자산 목록 1호입니다. 이들의 경력과 지혜는 상상을 뛰어넘죠. 환갑이 넘은 장인이 14명 정돕니다. 최고령은 72세고요. 35년 동안 이들이 만들어 온 핸드백 스타일만 19만 5000개에 달해요. 시몬느엔 다른 공장에 없는 손 정성을 표준화한 직접 자산이 매우 많습니다.”

시몬느는 아시아 시장에서 럭셔리 핸드백을 개발하고 제조한 최초의 회사다. 1988년 하청업체가 제품 개발과 생산을 모두 담당하는 ODM을 도나카란뉴욕에 제안한 것이 시초였다. 럭셔리 브랜드들에게 핸드백 제조 노하우가 없다는 점을 활용해 협업 관계를 맺은 것. 이후 시몬느는 유명 브랜드의 단순한 하청업체가 아닌 진정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럭셔리 브랜드 중 디자인부터 제조, 유통 등 수직 계열화가 이뤄져 있는 브랜드는 100개 중 5개 정도다. 에르메스, 루이뷔통, 구찌 등이 그나마 좋은 예다.

박 회장은 “작년 30주년 기념식에서 거래 브랜드 CEO들에게 시몬느와의 거래에서 좋았던 점에 대해 물었더니 ‘발 쭉 뻗고 잠 잘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며 “그만큼 시몬느가 건강한 상식을 통해 일관성 있게 일을 해 왔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 박은관 회장이 소개한 핸드백 관련 서적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날 포럼에서 박은관 회장이 소개한 핸드백 관련 서적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핸드백의 역사는 ‘허스토리’

박 회장은 이날 핸드백의 역사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최근 여성이 들고 다니는 형태의 핸드백 역사는 후하게 잡아도 120~130년 정도”라며 “럭셔리 브랜드의 마케팅 때문에 핸드백 헤리티지가 500년 이상인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핸드백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시작된 2차 세계대전 직후였다. 당시 여성은 자신의 소품을 담아야 하는 그릇 형태의 컨테이너가 필요했다. 핸드백 어원에 ‘담다’ ‘감추다’ ‘운반하다’ 등이 포함된 이유다. 이후 핸드백은 럭셔리 시장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점차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1960~1970년대 산업자본에서 전형적인 럭셔리 브랜드는 루이뷔통이었다. 왕족들이 여행 갈 때 싣고 다니는 러기지 회사였던 루이뷔통은 자사만의 정체성과 스토리텔링을 합친 명품 판타지를 만들어냈다. 1980년대는 예술과 문화의 콜라보 마케팅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미술, 건축, 여행, 음식, 호텔 등과 럭셔리 브랜드들의 협업이 주로 이뤄졌다. 2000년대엔 ‘럭셔리 핸드백을 사는 것은 제품 소유를 넘어 그러한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전달됐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핸드백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뭘까. 박 회장이 설명을 이어갔다. “‘쇼업(Show-up)’입니다.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일한 뒤 10년이 지나 승진을 했을 때 자신에 대한 선물로 루이뷔통을 사는 것이 1970~1980년대 일본 여성들의 문화였다고 합니다. 럭셔리 핸드백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삶과 살고 싶은 삶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실제로 여성들 중에는 명품 핸드백을 들며 자신이 사회 문화적으로 어느 계층에 속한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핸드백이 자기 삶의 여정을 기록해 준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이제는 한국도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브랜드가 장악한 럭셔리 시장에서 고유의 브랜드를 내놓을 역량이 풍부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특히 서울은 소비의 디테일을 선도하는 곳이다. 또 한국의 디자이너 인재 풀은 프랑스, 이탈리아보다 훨씬 클 것”이라며 “서울의 정체성을 가진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나와도 이젠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시몬느 또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2015년 ‘0914’라는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으며, ‘핸드백 박물관’과 ‘핸드백 용어사전’을 만들기도 했다. 0914는 그와 아내가 운명적으로 만난 날을 뜻한다. 현재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플래그십 스토어 매장을 통해 독특한 디자인의 핸드백을 선보이고 있다.

박 회장은 “0914는 시간의 무게에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며 “기존 시장에서 비슷한 걸 만들지 않기 위해 특이하고 실험적인 것을 도전하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긴 호흡을 통해 10년, 20년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여성문화네트워크는 여성 문화·예술 발전과 문화 리더 간 네트워킹, 성인지적 리더십 개발을 위해 2012년 시작한 모임이다. 격월로 명사를 초청해 다양한 강연을 듣는 윈문화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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