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지역 여성단체가 연 가정폭력 상담원 양성교육 중, 일부 강사들이 차별적이거나 부적절한 발언을 했으며 별다른 후속 조처가 없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은 제주YWCA 통합상담소. ⓒ여성신문 DB
제주 지역 여성단체가 연 가정폭력 상담원 양성교육 중, 일부 강사들이 차별적이거나 부적절한 발언을 했으며 별다른 후속 조처가 없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은 제주YWCA 통합상담소. ⓒ여성신문 DB

제주YWCA 주최 가정폭력 상담원 양성교육

일부 강사들 성차별·부적절 발언 논란

제주시 진상조사 착수

제주 지역 여성단체가 주최한 가정폭력 상담원 양성교육 중, 일부 강사들이 차별적이거나 부적절한 발언을 해 수강생들이 항의했으나 별다른 조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심지어 프로그램 기획·책임자까지 부적절한 발언에 가세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파문이 커지자 제주시는 27일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면전에서 “이 여성은 뚱뚱한 게 고민일 듯한데”

제주 YWCA 교육훈련원은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13일까지 제주YWCA에서 ‘2018년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양성교육’을 열었다. 강사 22명이 각각 하루 2~7시간씩 강의했고, 48명이 수강했다. 

복수의 증언에 따르면, 남성 강사 A씨는 7월 10일 ‘가정폭력 상담실습’ 강의 중 상담을 시연한다며 교육을 돕던 여성 실습생을 강단으로 불러냈다. A씨는 실습생에게 요즘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물었고, 실습생은 대학 전공과 진로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A씨는 실습생의 면전에서 다른 수강생들을 향해 “저는 이 학생은 뚱뚱한 게 고민이리라고 생각했다”라며 “여성들은 취업 시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회사들도 여성 채용 시 외모를 많이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강생들이 항의하며 사과를 요구하자 A씨는 해당 실습생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당시 목격자들은 “A씨가 보여준 태도는 상담사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에 의문이 들 정도의 아주 큰 실수” “채용 성차별적 발언이고 언어폭력이다. 몇몇 수강생은 그냥 강의실을 나가 버렸다”라고 말했다. A씨는 제주도교육연구원 사랑의상담실장, 제주상담센터 소장·이사장, 제주시가정폭력상담소 소장, 제주도가출청소년쉼터 원장 등을 거친 상담심리학 전문가로 알려졌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 문란해지거나 결핍 겪어”

제주 YWCA 통합상담소장 B씨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7월 12일~13일 강연 중 “아이가 성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엄마와 아빠가 필요하다. 엄마 역할을 할 모성 대리인이나 아빠 역할을 할 부성 대리인이 없으면 아이가 결핍돼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 수강생이 “성역할 고정관념을 갖고 아이들을 대하는 건 맞지 않다” “그럼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일반 가정 아이들과 다른가” 등 이의를 제기했다. B씨는 “제 생각이 아닌 심리학자 밀턴 에릭슨의 발달이론 얘기”라며 “아이가 성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엄마와 아빠가 필요하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여자아이는 문란해지거나 남성에 대해 아예 무감각해질 수 있다. 성역할을 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부모 가정 자녀에 대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는 수강생의 항의에, B씨는 “단어 하나를 갖고 말꼬리를 잡으시면 안 된다. 전체 그림을 보라”고 말했다.

여러 수강생들은 B씨의 발언을 비판했다. “한부모인 제가 듣기에는 너무 황당한 발언이라 듣는 내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의를 제기했지만 명확한 해명이나 사과는 없었다” “강의자의 편견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다양성이 인정되는 시대에 하나의 틀을 ‘정상성’으로 인정하고 상담에 임하는 것은 위험하다” 등 우려도 나왔다. 

“아내의 잔소리가 남편 폭력 원인”?

강사가 ‘피해자 책임론’에 가까운 설명을 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심리상담센터를 이끄는 C씨는 7월 2일 “인간관계에서 특정 행동의 원인과 결과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며 “아내가 약을 올리면서 잔소리를 하자 남편이 폭력을 행사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내가 약을 올려서 폭력을 행사한 것이고, 아내의 입장에서는 남편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잔소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수강생이 “남편이 아내 때문에 때렸다는 식의 발언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고 반박하자, C씨는 “법적으로는 남편이 잘못한 것이 맞지만, 의사소통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모두 견지해야 하며, 의사소통에는 이러한 작동원리가 있음을 말한 것뿐”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수강생들은 “상담사들에게 ‘젠더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는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언” “폭력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부적절한 예시”라고 지적했다. 

“가정폭력 여성주의 치료는 실패...한국 여성운동 잘못돼”

‘심리상담과 치료의 이론과 실제’ 강의를 맡은 대전대 상담대학원 객원교수 D씨는 교재 중 ‘여성주의 치료’ 항목 설명을 건너뛰면서, “미국에서는 이미 여성주의 치료가 실패했다” “한국 여성운동이 가부장제에 반대해 남녀 대립구도를 만들고 있다. 대립구도를 만드는 여성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여성들이) 하는 여성운동은 대단히 잘못됐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실패하지 않았나” 등 발언을 했다. 

한 수강생은 “D씨의 발언은 여성운동을 폄훼하고 여성주의 치료를 ‘실패’한 이론으로 단정지어 교육생들에게 여성주의에 대해 편향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항의 빗발치자 제주YWCA “좋은 부분만 뽑아서 배우면 돼”

수강생들의 항의가 빗발치는데도 제주 YWCA 측이 충분한 사과나 해명, 후속 조처에 나서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번 교육을 기획·총괄한 B씨는 수강생들이 익명으로 제출한 강의평가 등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도, 수강생들 앞에서 “강의 중 좋은 부분만 뽑아서 배우시면 된다. 강사가 강의 내용과 다른 내용으로 빠지거나 하면, 질문을 하거나 강사를 환기해 본 강의 내용으로 돌아오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은 “불만과 문제제기들을 슬쩍 넘기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이 기관에서 여러 젠더폭력 관련 교육을 받았지만 내용도 기관의 태도도 이렇게 문제가 많은 적은 없었다. 무척 실망했다”라고 밝혔다. 한 수강생은 이러한 내용을 정리해 한 달 전 여성가족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100시간의 소중한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을 통해 상담자는 가정폭력이 그냥 부부싸움이 아닌 ‘젠더 폭력’이라는 특수한 범죄임을 인식하고 위기 상담을 준비해야 하나 결과적으로는 핵심을 간과한 교육이 돼 버렸다. (...) 제주 지역은 현재 YWCA에서만 성폭력·가정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을 격년으로 진행하고 있다. 제주에 사는 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가부가 가정폭력 신고가 늘어나는 제주 지역만이라도 신경을 많이 써주시길 부탁드린다.”

제주시, 제주YWCA 대상 진상 조사 착수

여가부 “사실관계 파악 후 강사 교체·기관 페널티 검토”

여성신문의 취재가 시작되자, 제주시는 29일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제주시 여성가족과 관계자는 “일단 단체 측에 사실관계를 파악하도록 했다. 조사를 마치는대로 민원인의 문제 제기에 답변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원 여가부 권익보호과장은 “사실관계를 파악해 정말 강사들이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면 해당 강사를 교체할 수 있고, 이런 사례가 계속되면 해당 기관에 교육기관 자격이 있는지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했다. 

정부 공인 교육인데 내용 점검은 없어

“기관에만 맡기지 말고 모니터링 강화해야”

현재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양성교육은 기관 ‘신고제’로 진행된다. 특정 자격을 갖춘 기관이 교육을 맡겠다고 관할 지자체에 신고한 후, 자체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수강생에게 여가부 공인 수료증을 수여하는 식이다. 강사 임용이나 교육 내용은 기관의 재량에 맡긴다. 제주시 여성가족과 관계자는 “1년에 상하반기 두 차례 교육 진행 여부와 커리큘럼을 점검한다. 실제 교육 내용까지는 점검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한 수강생은 이번 논란으로 기존 제도의 허점이 드러났다며 “여가부에 전국에서 진행되는 성폭력·가정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을 모니터링 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명확한 기준으로 평가하고, 기준에 못 미치면 과감히 교육기관과 프로그램을 퇴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YWCA “일부 강사 발언 문제 있지만, 사실과 다른 비판 많아”

한편, 제주 YWCA 측은 “일부 강사가 부적절한 발언을 하긴 했지만, 문제 제기 내용 중엔 사실과 다른 것도 많다”는 입장이다. B씨는 27일 여성신문에 “가정폭력 피해자나 한부모 등이 듣기엔 불편할 만한 발언도 있었으나, 모든 수강생이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아니다. 몇몇 예민한 수강생들이 있었다”라며 “전체 발언의 일부만 잘라 문제 제기하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교과 과정은 여가부 지정 내용대로 구성했고 편향되거나 부적절한 내용은 없었다. 수강생의 불만을 충분히 듣고 내년 강사진 섭외 시 신중을 기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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