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기후변화는

생명권과 건강권,

인간다운 삶 위협하는

인권의 문제 

 

 

서울 여의도공원 앞 도로에 차량이 복사열로 인한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여의도공원 앞 도로에 차량이 복사열로 인한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머리에 불덩어리가 떨어지는 듯 땡볕이 내리 쬐던 한낮, 모임에 참석하려고 도심의 뒷골목을 급히 걸어가던 중이었다. 1층에 칵테일바가 있는 건물 모퉁이에서 팔십을 넘기셨을 듯 보이는 작은 체구의 할머니 한 분이 시멘트 바닥에 앉아서 주워 온 폐지를 정리하고 계셨다. 바닥의 복사열로 지쳐 보이는 할머니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가지고 있던 텀블러의 물을 드리는 것뿐이었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 지난 여름 우리나라는 40도를 넘나드는 111년 만의 폭염으로 고통을 겪었다.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가축이 폐사하고 농작물이 타들어갔다. 지구 북반부 전역에서도 고온현상이 심각하다. 리스본을 비롯해 포르투갈과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2003년에 비견되는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폭염을 동반하는 가뭄 때문에 산불 등 자연재해가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8월 15일까지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48명으로, 연평균 폭염 사망자 수의 4.5배다. 냉방기 보급으로 사망자가 3384명이었던 1994년 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매우 우려스럽다. 보통 고령자와 독거노인, 영아, 노숙자, 저소득층, 특정 질병이 있는 이들이 폭염에 더 취약하다. 대부분의 노인 임대주택에는 냉방장치가 없고, 도시의 취약한 밀집지역에서는 사람이 집을 탈출해야 할 정도다. 즉, 폭염은 신체적 또는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더 혹독하다.

8월 초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의료정보 빅데이터에 따르면, 작년에 폭염 관련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중 여성(53.5%)이 남성(46.5%)보다 많았으며, 60대 이상 질환자만 보았을 때도 여성이 56.6%, 남성이 43.4%로 여성 비율이 더 높았다. 작년의 경우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폭염사망자 중 남성이 163명, 여성이 97명으로 남성이 약 1.7배 정도 많았다.

사상 최고의 폭염을 겪은 2003년 유럽 전역에서 7만명이 사망했는데, 여성 사망률이 남성보다 높았다. 특히 8월 1~20일까지 1만5000명 이상이 폭염으로 사망한 프랑스에서 폭염 사망률은 남성의 40%에 비해 여성은 70%로 여성에게서 더 높았다(http://news.bbc.co.uk/2/hi/europe/3139694.stm, Eurosurveillance, Vol.10(7-9), p154, 2005). 사망률은 병상에 있는 노인, 냉방장치나 단열재가 미비한 노후 한 건물에 사는 이들에게서 높고, 육체노동자가 관리자보다 사망률이 3배나 높았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집단이 더 취약한 것을 알 수 있다.

1995년 미국 시카고에선 기온이 섭씨 41도까지 오르는 폭염이 일주일간 지속해 700여명이 사망했다. 『폭염 사회』의 저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당시 폭염 사망자를 조사한 결과, 희생자 대부분이 노인과 빈곤층, 사회적 접촉이 적은 1인 가구에 속한 사람들이었음을 발견했다. 비슷한 폭염에 노출됐던 두 지역 중 사망자가 더 많았던 지역은 기반시설이 낙후하고 범죄율이 높고 공동체가 와해되어 주민들이 홀로 방에서 폭염을 견뎌야 했다. 이에 그는 폭염에 의한 사망을 ‘사회적 불평등 현상’으로 규정했다.

지구는 더워지고 있고, 사람이 문제다. 폭염의 배경에는 화산 폭발과 같은 원인도 있지만 주원인은 석탄연료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제프 네스빗은 1961~2010년 사이의 전세계 폭염의 최소한 82%는 지구온난화에 책임이 있다고 한다(https://www.usnews.com/news/at-the-edge/articles/2018-08-07/the-cause-of-the-deadly-global-heatwave). 그럼에도 국내 언론은 블랙아웃 공포와 전기요금 폭탄 문제로 접근하고 폭염과 기후변화의 관계는 소홀했다. 기회다 싶다는 듯 정부의 탈원전 방침을 공격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컸다. 급기야 정부는 전기 누진제 요금을 7~8월간 한시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그간 우리사회에서 기후변화는 ‘글로벌’한 차원에서 ‘장기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인식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폭염으로 많은 이들이 기후변화가 ‘지금 당장’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차제에 기후변화에 관한 언론과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주지하다시피,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피해에 여성이 더 취약하다. 물 부족이나 사막화, 전염병과 풍토병 등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족의 건강을 살피는 역할을 하는 여성의 삶에 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흉작과 기근, 주거환경의 악화도 마찬가지다. 기후변화 난민의 80%를 이루는 여성들은 생계권을 위협당하고 각종 폭력에 노출된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빈곤하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아 혹독한 기후 사건으로부터 회복하기 더 어렵다. 기후변화는 소녀들의 천식, 중년여성의 폐암과 심장 질환, 여성노인의 심장마비와 뇌졸중, 치매 등과 연관이 있다는 증거도 있다. 특히 폭염은 임산부의 조산이나 저체중아 출산, 사산 등의 위험을 높인다 (https://www.climaterealityproject.org/blog/how-climate-change-affecting-women).

폭염과 기후변화는 생명권과 건강권, 인간다운 삶을 위협한다는 면에서 인권의 문제다. 그리고 여기에는 젠더 측면이 있다. 폭염과 기후변화를 연결하고, 환경적·과학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 측면 특히 젠더 관련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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