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팝스타 케샤(Kesha·31)의 첫 내한공연이 지난 14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디투글로벌컴퍼니 제공
미국 팝스타 케샤(Kesha·31)의 첫 내한공연이 지난 14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디투글로벌컴퍼니 제공

14일 연세대 노천극장서 첫 내한공연

‘프로듀서 성폭행’ 폭로 후 법정공방

5년 공백 이후 지난해 3집 앨범 발표

화려하고 흥겨운 공연·무대매너에

여성·성소수자 인권 노래해 박수갈채

미국 팝스타 케샤(Kesha·31)의 첫 내한공연이 지난 14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지난해 발표한 앨범 ‘Rainbow’ 수록곡부터 전 세계 음악 차트를 호령했던 히트곡까지, 모두 13곡을 라이브로 선보이며 90분간 공연장을 뜨겁게 달궜다. ‘파티의 여왕(party queen)’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화려하고 흥겨운 쇼였다. 여성과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메시지도 전달해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첫 곡은 ‘Rainbow’ 앨범의 타이틀곡인 ‘Woman’이었다. “I’m a mother****ing woman!” 어둠 속에서도 번쩍번쩍 빛나는 금속 장식이 달린 흰 바디수트를 입은 케샤가 위풍당당하게 무대에 나타나자 관객들은 열광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의존해 살아간다는 편견을 조롱하며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해’라고 외치는 노래다. 

이날 공연장 곳곳엔 성소수자(LGBT)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나부꼈다. ‘사랑이 이긴다(LOVE WINS)’ ‘Pride’ 등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케샤는 “무지개 깃발을 든 여러분에게 이 ‘기본 인권’을 위한 노래를 바친다”라며 ‘We R Who We R(우리는 우리다)’를 불렀다. 화려한 ‘무지갯빛’ 의상도 눈길을 끌었다. 무지갯빛 술 장식이 달린 원피스, 무지갯빛 프린지 케이프 등을 차례로 선보였다. 밴드의 라이브 연주, 두 남성 백댄서의 열정적인 춤과 노래도 흥을 돋웠다. 

 

미국 팝스타 케샤(Kesha·31)의 첫 내한공연이 지난 14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디투글로벌컴퍼니 제공
미국 팝스타 케샤(Kesha·31)의 첫 내한공연이 지난 14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디투글로벌컴퍼니 제공

케샤는 자신의 힘든 과거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도 노래했다. 2010년 ‘Tik Tok’으로 데뷔해 인기를 얻은 케샤는 2014년부터 법적 공방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케샤는 자신의 전 음악 프로듀서이자 업계의 ‘큰 손’ 닥터 루크가 자신을 10년가량 성폭행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학대했다고 주장했다. 여러 동료 뮤지션들이 “케샤의 용감한 고발을 지지한다”며 ‘케샤에게 자유를(Free Kesha)’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소송은 케샤의 패소로 일단락됐으나, 케샤는 “나답고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겠다”며 지난해 세 번째 앨범 ‘Rainbow’를 발표했다. 발매 즉시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올랐고 음악적으로도 호평을 받았다. 

이날 그는 직접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Rainbow’ 수록곡 ‘Bastards’를 불렀다. “어느 날 인터넷 서핑 중 사람들이 (제 험담을 하며) 역겹게 구는 걸 봤어요. 그들에게 야유를 보냅니다. 그 망할놈들에게 지지 말아요, 절대로.” 

앙코르 무대에서는 ‘Praying’을 열창했다. ‘지독한 일을 겪었지만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겠다, 날 이렇게 만든 당신의 영혼도 평화를 얻길 기도한다’는 의미를 담은 노래다. 케샤는 “아픔을 겪은 모든 이들을 위한 노래”라고 소개했다. ‘미투(#MeToo)’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가던 올해 초, 그는 제60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이 노래를 불러 감동을 전했다. 관객들이 하나둘 휴대전화 불빛을 켜서 흔들면서 객석에선 거대한 빛의 물결이 일렁거렸다. 노래를 마친 그는 잠시 감정이 북받친 듯 입을 꾹 다물더니 말했다. “제 노래 대부분은 신나는 파티 음악이지만, Praying을 부를 때마다 잠시 시간을 갖고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미국 팝스타 케샤(Kesha·31)의 첫 내한공연이 지난 14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디투글로벌컴퍼니 제공
미국 팝스타 케샤(Kesha·31)의 첫 내한공연이 지난 14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디투글로벌컴퍼니 제공

‘Boogie Feet’, ‘Blah Blah Blah’, ‘We Die Young’, ‘Blow’, ‘Tik Tok’ 등 댄스팝 히트곡도 연달아 선보였다. 래퍼 핏불의 곡 ‘Timber’도 직접 랩·노래를 모두 소화했다. 무대매너와 팬서비스도 뛰어났다. 중간중간 직접 키스한 수건, 기타 피크를 객석에 던졌다. ‘Take It Off’를 부를 때는 관객들도 외투 등 옷가지를 벗어 케샤에게 던졌다. 케샤는 한 관객이 던진 붉은 브래지어를 받아들고 유쾌하게 웃더니 “정말 고맙다. 집으로 가져가서 벽에 걸어두겠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고향이자 컨트리 음악의 도시로 알려진 미 테네시주 내슈빌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며 유명 컨트리 뮤지션인 돌리 파턴의 노래 ‘Jolene’도 열창했다. 케샤는 ‘Rainbow’ 앨범에서 돌리 파턴의 1980년대 히트곡 ‘Old Flames’를 커버해 부르기도 했다. 

사실 케샤는 이날 공연에 앞서 건강상의 이유로 공연 외 한국 홍보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왼쪽 무릎엔 보호밴드를 차고 무대에 섰다. 지난 2월 두바이 공연 중 무대 추락사고로 부상당해 무릎 수술을 받은 후 세계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19∼26일 중국, 29∼10월 4일엔 일본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관객 원성 산 미숙한 행사 운영…석연찮은 해명

다만 주최 측의 홍보와 운영 방식은 관객들의 불만을 샀다. 주최사인 디투글로벌컴퍼니는 공연을 약 한 달 남겨두고서야 집중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공연하는 줄도 몰랐다”는 팬들도 많았다. 홍보가 늦어지니 티켓도 잘 안 팔렸다. 공연장인 연세대 노천극장은 총 수용 가능 인원의 절반인 3500여석만 채워졌고, 대부분이 할인 이벤트석과 초대석이었다. 티켓 정가는 VIP석 13만2000원, R석 12만1000원, S석 9만9000원이었다. 공연 당일에도 관중 안내와 입장 통제가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정석 입장은 7시 30분부터, 스탠딩 입장은 7시 50분부터 시작됐고, 결국 공연은 8시를 훌쩍 넘겨서야 시작됐다.

디투글로벌컴퍼니 측은 “케샤 소속사인 CAA(Creative Artists Agency) 측이 내한공연 홍보를 제대로 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제한을 가해서 어려움이 컸다”라고 해명했다. CAA가 케샤가 최근 정신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체중이 많이 늘었고, 그런 모습이 미디어에 고스란히 노출돼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내한공연 홍보물에서 케샤의 외모가 부각되지 않게 해달라” “방송 출연은 안 된다” “공연 사진도 케샤의 외모가 부각된 사진은 배포하지 말라”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CAA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을 지배하는 대형 연예기획사다.

케샤는 2012년부터 공연에 드랙 댄서들을 세웠으나, 이번 공연에선 보지 못한 점도 아쉬웠다. 한국 드랙 레이블 ‘네온밀크’ 소속의 드랙퀸·드랙킹들이 공연 당일 신촌역 부근에서 짧은 퍼포먼스만 벌였다. 어쨌건 한국 팬들은 수년간 기다려온 팝스타의 첫 내한을 즐거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남는 공연으로 기억하게 됐다. 

 

 

1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일대에서 드랙 레이블 ‘네온밀크’ 소속의 드랙퀸·드랙킹들이 케샤 내한공연 홍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일대에서 드랙 레이블 ‘네온밀크’ 소속의 드랙퀸·드랙킹들이 케샤 내한공연 홍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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