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을 바꾸는 30대 사건] ‘여성발전기본법’,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면 개정

여성정책의 근간 ‘여성발전기본법’

20년 만에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성평등’ ‘양성평등’ 법 명칭 갈등

 

2015년 7월 6일 ‘양성평등기본법’ 시행 이후 맞는 첫 양성평등주간 기념식에서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아빠들로 구성된 ‘꽃보다 아빠’가 일·가정 양립을 실천할 것을 선서하고 있는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5년 7월 6일 ‘양성평등기본법’ 시행 이후 맞는 첫 양성평등주간 기념식에서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아빠들로 구성된 ‘꽃보다 아빠’가 일·가정 양립을 실천할 것을 선서하고 있는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정책의 ‘헌법’. ‘여성발전기본법’을 일컫는 말이다. 여성 지위를 향상시키고 성평등을 유도하는 여성정책을 뒷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 활용돼 왔기에 붙여진 별명이다. 1995년 제정돼 이듬해 7월 1일 여성발전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여성정책은 여러 변화를 거쳐 발전했다. 여성정책 중장기 마스터 플랜인 ‘여성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게 됐고, 채용목표제 등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가 각 분야에서 실시됐다. 여성정책을 총괄하고 조정하는 중앙행정부처 ‘여성부’가 설치됐으며, 성주류화 전략을 위한 성별영향평가, 성인지예산 등이 법제화됐다. 여성발전기본법은 여성정책의 근간이었으나, 20년 동안 19번에 달하는 개정을 거치는 등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시대상을 반영한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며 ‘여성발전기본법’은 20년 만인 2015년 7월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이름을 바꾼다.

 

변화 낳은 ‘베이징여성대회’

1995년 8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유엔(UN) 제4차 세계여성대회가 열렸다. 이른바 ‘베이징여성대회’로 불리는 이 행사에서 12개 주요 부분의 전략목표와 행동 계획으로 구성된 ‘베이징행동강령’을 채택하고 21세기 여성정책의 방향을 예고하는 화두로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을 공식화했다. 베이징여성대회 직후인 10월 대통령 자문기구인 ‘세계화추진위원회’는 서둘러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10대 과제’를 내놓았다. 그 과제 중 하나가 ‘여성발전기본법 제정’이었다. 법 제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해 12월 신한국당이 ‘여성발전기본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곧 이어 새정치국민회의도 ‘남녀평등기본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최종 ‘여성발전기본법’ 안이 대안으로 의결됐다. 베이징여성대회가 끝나고 3개월 만인 12월 30일 회기 종료를 코앞에 두고 여성발전기본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충분한 논의 시간을 갖지 않고 법이 통과하면서 법 시행부터 급조 논란에 휩싸였다. ‘여성발전’이라는 법 명칭이 성평등이라는 법 제정 취지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2017년 11월 16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성평등’ 용어 사용 반대론자들의 기습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여성신문
2017년 11월 16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성평등’ 용어 사용 반대론자들의 기습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여성신문

‘성평등’이냐 ‘양성평등’이냐

여성발전기본법이 전면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17대 국회(2004년 5월 30일~2008년 5월 29일) 때부터 나왔다. 이때 법안 명칭은 ‘성평등기본법’으로 제시됐다. 진보와 보수 모두 여성발전기본법의 전면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다. 정부의 여성정책 수립과 예산 편성의 근거법으로 여성의 사회진출과 권익 향상을 위해 큰 역할을 해왔지만 이 법이 급변하는 시대 환경과 여성의 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18대 국회(2008년 5월 30일~2012년 5월 29일)에서 본격적으로 법 개정 논의가 시작되면서 법 명칭과 여성지위위원회(현 국무총리 직속 양성평등위원회)의 역할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당시 신낙균 민주당 의원은 ‘성평등기본법’을 발의하자, 여성가족부는 법안 명칭을 ‘여성정책기본법’으로 제시했다.<‘여성정책기본법’ VS‘성평등기본법’>(1126호, 2011년3월18일)

당시 보수 진영도 ‘성평등기본법’ 법 명칭에 대해선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여성부를 이끈 변도윤 장관도 “여성발전기본법을 성평등기본법으로 전부개정해 ‘여성발전’을 넘어 ‘성평등과 성인지성’을 사회 각 분야에 통합하는 21세기형 여성정책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여성정책 새로운 패러다임 열겠다”>(1028호, 2009년4월24일)

그러나 법 명칭을 둘러싼 공방으로 법 개정은 10년이나 걸렸다. 19대 국회 때부터 법 명칭에 ‘성평등’을 사용하는 것이 제3의 성과 동성애자 등을 포함한다며 적합하지 않다는 반대론자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면 개정되면서 ‘성평등’은 정책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2017년 11월 16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성평등’ 용어 사용 반대론자들의 기습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여성신문
2017년 11월 16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성평등’ 용어 사용 반대론자들의 기습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여성신문

‘젠더 불평등’ 바로 잡아야

정부는 여성발전기본법이 ‘여성발전’에 초점을 뒀다면, 양성평등기본법은 ‘양성평등 실현’으로 여성정책의 패러다임이 전환됐다고 설명한다. 특히 부성권 보장 규정을 명시해 이른바 ‘아빠의 달’을 시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법이 시행되고 ‘양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성평등’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혼란과 잡음이 이어졌다. 실제로 2015년 대전광역시가 성소수자 인권 보호와 지원에 관한 조항을 담아 ‘성평등조례’를 제정했다. 그러자 여성가족부는 이 조항이 “성소수자와 관련된 개념이나 정책은 양성평등법의 입법 취지를 벗어났다”면서 대전시 측에 삭제를 요청해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양성평등’의 의미를 남녀 간의 기계적인 평등으로 해석해 일부 지자체는 양성평등주간 행사를 여성단체에게만 맡길 수 없다며 관련 예산을 절반으로 삭감하기도 했다. 여성단체는 “정부의 양성평등 정책 운용은 남성 역차별 주장과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맞물려 오히려 성별고정관념과 여성과 남성 간의 대결 구도를 강화시키고 있다”며 “여성과 성평등 정책 전반을 후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짐나 성평등을 반대하는 쪽은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고, 결국 동성결혼 합법화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 “전 부처 성평등 관련 정책의 총괄·조정 및 민관 거버넌스 기능을 수행할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라며 여성정책 조정기구의 역할 강화를 약속했다.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서 ‘양성평등’ 대신 ‘성평등’을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다.<정부, ‘양성평등’ 대신 ‘성평등’ 쓴다>(1448호, 2017년 7월 11일)

하지만 정부는 곧바로 보수 개신교 단체의 ‘비판’에 주춤한다.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18~2022년) 수립을 앞두고 ‘성평등’을 앞세웠던 여성가족부는 반대 진영의 의견을 받아들여 ‘양성평등’과 ‘성평등’을 혼용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성평등’과 ‘양성평등’ 모두 젠더 이퀄리티(gender equality)를 번역한 것이기에 두 용어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용어 정의가 다르지 않다면 정책 전문가와 여성단체가 요구해온 ‘성평등’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가족부의 영문 명칭 ‘Ministry of Gender Equality’를 정확히 번역하면 ‘성평등부’”라면서 “성평등부란 불평등한 젠더체제를 바로잡는 임무를 부여받은 정부의 부서이며, 성평등정책은 불평등한 젠더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그런 점에서 여성가족부의 정책은 양성평등정책이 아니라 성평등정책으로 불려야 한다”며 “‘양성평등’이란 말은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정체불명의 단어”라고 강조했다. <[여성논단] 성평등 반대 소동을 지켜보며>(1469호, 2017년 12월 13일)

성평등정책은 우리사회의 성별로 인한 불평등과 차별, 혐오와 배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다. 성평등정책을 총괄하는 여성가족부 역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든지 성별 등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헌법 10조와 11조에 따라, 인권과 평등의 가치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지켜져야 한다”면서 “여성가족부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동등하게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여 헌법이 명시하는 인권과 평등의 가치를 정책적으로 실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