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경남도의회 의장, 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 배지숙 대구시의회 의장
김지수 경남도의회 의장, 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 배지숙 대구시의회 의장

여성 구청장 3명 당선 이어

부산·경남·대구 의회 의장도

“미투 효과다”vs“아니다” 엇갈려

진정한 변화 이어져야

보수적 색채가 강한 영남권 지역에서 여성 정치인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부산 지역의 기초자치단체장에 여성이 3명이 당선된 것에 이어 부산·대구·경남의회 의장직에 모두 여성이 선출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이같은 현상이 유독 영남에서 일어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먼저 광역의회에서는 부산시의회 박인영 의장, 대구시의회 배지숙 의장, 경남도의회 김지수 의장 등 모두 여성이 선출됐다. 부산시의회의 경우 1991년부터 1~7대 전후반기 의장단 의원 45명 전원이 남성이었음을 감안하면 여성 의장 배출은 파격 그 자체다. 박 의장은 특히 초선 시의원에, 정치권에선 청년으로 분류하는 만41세로 비주류 중의 비주류다.

기초자치단체는 전국 226개이며 여성 단체장은 8명에 불과하지만 부산 지역에만 3명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인 이들은 재선 구의원 출신 서은숙 부산진구청, 3선 지역 구의원 출신 정미영 금정구청장, 지난 부산시의회에서 유일한 민주당 의원이었던 초선 비례대표 출신 정명희 북구청장이다. 서울에서 25개구 중 여성은 3명이고 부산은 16개구인 점을 감안하면 확실히 많은 편이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강세지역에 여성 후보 3명을 전략공천해서 당선시켰던 것과 달리 이들은 유리하지 않은 지역에서 경선을 통과한 후 본선까지 이겼다.

박인영 의장

“공천심사위원회서

여성들이 목소리 낸 덕분”

이같이 여성이 나타난 요인으로 박인영 의장은 “양이 누적된 후 질로 전화되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다”면서 민주당이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다는 점을 들었다. “정당공천제를 하면서 여성 의무공천, 가산점 부여, 여성 후보 정치자금 지원, 여성정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계속해서 투자했던 결과가 10여년이 지나면서 이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부산 지역에서는 부산시당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에 참여한 여성들이 제 목소리를 낸 덕분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에 대해 박 의장은 “공심위에 여성이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특히 지역 원로, 변호사, 시민활동가, 교수 등이 참여했는데 목소리가 크고 ‘기가 쎈’ 여성들이어서 공심위 안에서 열심히 싸웠다”고 전했다.

보통 공심위가 지역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 위주로 구성되고, 여성 몫에는 남성들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을 이들로 머릿수를 채우는 관행이 여성의 정치 참여를 가로막는 문제로 꼽혀왔다. 그러나 지난 선거 당시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을 맡았던 최인호 국회의원 등이 공심위의 진전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미투(#MeToo)운동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김영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미투운동 이후 보수지역 남성 정치인들의 절박함이 담긴 화해 제스처”라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미투운동에 놀란 ‘아재’들이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니라 달라졌음을 보여줘야 하는데, 보수적인 지역이기에 수도권보다 훨씬 절박하게 반응한 것이다. 구청장이나 지방의원의 공천도 그렇지만 특히 부산시의회 의원들이 박인영 의원을 의장으로 선출한 것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경력이나 나이를 따지던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고 능력과 자질이 있는 여성이 의장직을 맡을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된 것이다.

반면 김은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위원은 미투운동이 지난 선거 당시 변화를 가져오긴 했지만 정당과 정치인이 변한 게 아니라, 유권자가 정치를 보는 눈이 달라졌으며 오히려 정당은 이같은 변화에 온전히 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나마 변화를 보인 곳이 민주당 부산시당이다. 보수 지역이라는 험지에서 이기기 위해 좋은 후보를 찾는데 더 많은 노력을 했으며 신진세력의 참신함이 부각된 차별성 있는 후보를 내세운 전략이 성공했다고 봤다.

김영 부산대 교수

“여성 정치인들 통해

새로운 틀 만들어야”

험지에서조차 공천을 하면 당선이 된다는 사실이 입증된 만큼 당장 실무적으로는 성평등한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정당의 책무로 기대해선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우며, 결국 이들 여성정치인이 성과를 통해 정당을 움직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들의 책임이자 살길이라는 결론이다.

박 의장은 중요한 자리에 여성들이 진출한 만큼 다음 단계의 과제는 성공하는 여성 정치인 모델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을 배려하고 할당하는 것을 넘어서, 잘 하기 때문에 뽑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장선화 부산여성단체연합 대표는 “늘어난 여성 정치인들이 여성들의 삶을 바꾸는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 정치인이 차별과 싸우고 인권 문제에 관심가지고 노력해야 여성 정치가 더욱 공고화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영남 지역의 여성운동 진영이 이 상황을 적극 활용해 정치인들과 함께 젠더 이슈를 활성화시키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여성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은 “그동안 여성정치인은 선수나 영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역할이나 제한적이었지만 이번에 신인 정치인들이 중책을 맡으면서 이같은 고정관념을 깼다는 것은 앞으로 신진 정치인에게 의미있는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봤다. 특히 “상당수의 기초의회에서 여성이 30%를 넘어섰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새롭게 변화된 의회를 보여줘야 할당제 제도도 안착될 수 있고 시대의 변화에 부응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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