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여성 친화 CEO]

직장인들이 이주하고 싶은 지역 1위 제주. 그 제주에 터를 잡은 CEO를 만나 ‘제주’와 ‘여성’, ‘여성의 일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글은 여성신문의 공식적인 의견과 무관합니다 <편집자주>.

여성용 스타킹 만드는 남자, 이제희 대표

삼다(三多)의 섬 제주에는 돌, 바람에 더불어 재주많은 여성도 많다. 삶과 죽음을 오가며 집안을 일구는 해녀부터, 감귤 밭을 가꾸며 미래를 짓는 돌담 너머 ‘삼춘’(제주에서는 나이 많은 어르신을 남녀 모두 ‘삼춘’이라 칭한다)들, 아이디어와 추진력으로 무장한 재기발랄 CEO들이 여기 가세하고 있다.

첫번째로 만난 이는 <월간 스타킹>의 이제희 대표. 월간 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잡지는 아니다. 계절 변화가 심한 우리나라에서 시기에 맞는 스타킹 배달을 창안한 사업가다. 조유진씨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문 | 스타킹을 신는 남자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보통은 여성을 위한 제품이다. 남성으로서 스타킹을 만들고 유통하기 시작한 계기가 있나?

 

 

이 | <월간 스타킹>은 ‘스타킹을 여성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에서 기획했다. 국내의 스타킹은 비너스와 비비안이라는 주류 브랜드가 양분하고 있다. 나는 이들과 차별화되는 제품을 만들고 유통하겠다는 목표로 4년간 달려왔다. 여성을 위한 제품을 하겠다는 신념에서 시작했다기 보다는 제품을 먼저 만난 후 제품의 개선점 등을 고민하다 보니 고객인 여성의 삶이 눈에 들어오더라. S라인을 강조하고, 여성성을 부각하는 관점에서 스타킹이 소비되는 데 반감이 생겼다.

문 | 국내 스타킹은 사이즈가 하나다. 프리 사이즈라고 하지만, 키나 체격을 무시하고 단일 사이즈만 내놓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키 작고 뚱뚱하거나 키 크고 체격이 큰 여성은 편하게 맞는 스타킹이 없다. 키가 작거나 마른 여성은 또 헐렁하고 줄줄 흘러내리는 스타킹이 불편하다. 시장 규모도 이유가 되겠지만, 개별 여성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여성이라면 이런 체형이어야 한다는 시각이 고정된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내놓은 ‘내 키에 맞는 스타킹’은 바로 이런 문제를 딱 지적했다.

이 | 스타킹은 신축성이 좋다는 이유로 다양한 여성의 키를 고민하지 않았다. 사이즈별로 나오는 스타킹도 일부 있지만, 같은 사이즈도 천차만별이고 가격도 부담된다. 이런 불편함은 스타킹을 신는 모든 여성들이 느끼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개선할 의지가 있는 회사가 없었거나 손익이 맞지 않아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고객의 불편함에서 시작하고, 그 불편함을 제조 과정에서 해소할 수 있는지를 끝없이 타진하며 만들어진다.

문 | 스타킹을 본인이 신어본 적도 있나?

이 | 대부분 신어본다. 사이즈 확인을 위해서다. 내가 신을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어야 큰 키의 여성에게도 맞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실제로 신어봐야 제조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문 | 직접 신어 본 스타킹의 사이즈는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졌는가?

이 | 대부분의 스타킹은 신장 기준 150~175cm를 이야기하고 있다. 25cm라는 차이는 너무 크다. 그래서 우리는 10cm를 기준으로 신장 146~155cm를 위한 S, 156~165cm를 위한 M, 166~175cm를 위한 L 사이즈로 분리했다. 제품의 길이가 다르기 때문에 신장, 다리 길이에 따른 사이즈는 맞을 것이다. 이번 론칭을 통해 구매한 소비자들에게는 실제 자신의 다리 사이즈를 재서 홈페이지에 입력해 달라는 뜻으로 줄자를 함께 제공한다. 이런 데이터가 모여 너비와 폭이 다양한 스타킹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문 | 월간 스타킹이라는 이름이 재미있다.

이 | 정기 배달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스타킹은 두께에 따라 30, 50, 100, 200, 300 데니어로 표시하는데, 어떤 날씨에 어떤 스타킹을 신어야 할지에 숫자만으로는 잘 모를 수도 있다. 옷은 날씨나 계절에 따라 구별해 입고 내 몸 사이즈에 따라 찾아 입는다. 스타킹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타킹 정기 구독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는 자기 사이즈와 날씨에 따라 적절한 스타킹을 받아보고,  생산자는 일정하게 안정된 시장을 확보함으로서 서로의 불편과 고민을 해결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문 | 제품을 구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 현재 텀블벅에서 ‘월간 스타킹’이라는 이름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중이다. 이 크라우드 펀딩이 끝나면 앱과 웹서비스를 오픈 해 정기구독자를 모집할 계획이다. 조금 빨리 제품을 만나보고 싶다면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하면 된다.

문 | 스타킹도 여성의 몸을 옥죄는 ‘코르셋’ 중 하나다. 브레지어, 메이크업, 하이힐 같은 다른 ‘‘코르셋’과 마찬가지다. <월간 스타킹>이 만들어내는 스타킹은 다를 수 있을까?

이 | 우리는 ‘담백한 스타킹’이라는 컨셉으로 패키지와 제품을 만들고 있다. 여성의 다리라인을 전시품으로 만들어내는 상품이 아니라 여성의 다리를 편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가격 거품을 빼고 품질을 높이고자 한다. 향후에는 스타킹을 통해 얻은 노하우로 맞춤형 청바지에 도전해보고 싶다.

 

월간스타킹 이제희 대표
월간스타킹 이제희 대표

여성의 몸은 단일하지 않다. 큰 몸도 있고 작은 몸도 있다. 가는 몸도 있고 굵은 몸도 있다. 그러나 프리사이즈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된 스타킹은 여성의 몸을 단일 규격화한다. 한국 시장에서 특히 그러한 현상이 심하다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인 Z, H 같은 외국 브랜드 옷들을 외국에서는 어떤 체격에서도 사 입을 수 있지만, 국내에는 작은 사이즈만 집중 수입된다. 물론 국내 시장의 평균적 특성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여성 신체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상업 자본의 규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제희 대표의 <월간 스타킹>이 다양한 사이즈의 스타킹을 시도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여성을 위한 제품이 여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또 격려한다면,  여성들도 여성임이 좀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월간 스타킹>의 ‘내 키에 맞는 스타킹’ 프로젝트는 창작자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www.tumblbug.com)에서 10월 21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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