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산된 미투 운동

성폭력 인신 제고·피해자 지원단체 설립 등 성과

역풍과 한계도…사회구조 근본적 변화 필요

 

 

지난 10월 초 미국 각 지역에서 연이어 열린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인준 저지를 위한 미투 행진이 벌어졌다. 이번 사건은 미투 운동이 재점화되는 계기가 됐다. ⓒMe Too March International
지난 10월 초 미국 각 지역에서 연이어 열린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인준 저지를 위한 미투 행진이 벌어졌다. 이번 사건은 미투 운동이 재점화되는 계기가 됐다. ⓒMe Too March International

 

지난 해 10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에 대한 성추문 폭로 기사로 시작된 ‘미투(#MeToo)’ 운동 이후 약 1년이 흘렀다. 배우 알리사 밀라노의 용기 있는 고백 이후 SNS에서 해시태그 운동으로 시작한 미투는 정치 사회 전반을 뒤흔들었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됐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주년을 맞은 미투 운동의 성과와 의의,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과제를 알아본다.

 

1日 평균 5만 건 해시태그 전 세계 확산

미투 운동의 시작은 뉴욕타임스의 와인스타인 폭로기사였지만 이를 확대시킨 것은 소셜 미디어였다. 전 세계 수십만 명의 여성들이 ‘미투’(#MeToo)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들의 아픈 상처와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위로했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트위터에서 약 1900만 건의 미투 해시태그 글이 올라왔다. 매일 5만 건 이상의 글이 올라온 셈이다.

온라인 캠페인에서 그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성과도 이뤄냈다. 할리우드의 여성 영화인 300여명은 성폭력・성차별 공동대응을 위한 단체 ‘타임스업’(Time’s Up)을 결성해 피해자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고 피해자들의 법률 소송을 지원하는 기금(Time’s Up Legal Defense Fund)도 마련됐다. 전국여성법률센터(NWLC)에 따르면 780명 이상의 법률가들이 서명했고 2200만 달러의 기금이 모금됐으며 50건 이상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영국에서도 엠마 왓슨, 키이라 나이틀리, 엠마 톰슨 등의 영화인들이 주축이 된 정의평등기금(Justice and Equality Fund)를 통해 100만 파운드를 모금,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영국 의 7개 여성 단체에 지원했다.

미투 운동은 정치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1년간 미국 정관계 인사 27명이 성추문에 휩싸였으며 이 중 19명이 사임하거나 재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미국 정치 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유럽연합(EU) 의회의 여성 보좌진 1000여명은 익명 블로그 ‘미투EP’를 개설하고 적극적인 고발에 나서고 있다.

 

 

지난 10월 초 미국 각 지역에서 연이어 열린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인준 저지를 위한 미투 행진이 벌어졌다. 이번 사건은 미투 운동이 재점화되는 계기가 됐다. ⓒMe Too March International
지난 10월 초 미국 각 지역에서 연이어 열린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인준 저지를 위한 미투 행진이 벌어졌다. 이번 사건은 미투 운동이 재점화되는 계기가 됐다. ⓒMe Too March International

 

성추문 캐버노 대법관 인준으로 미투 재점화

1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주춤했던 미국의 미투 운동은 지난 9월 말 미 상원의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지명자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재점화되고 있다. 고교 시절 캐버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크리스틴 포드 펠로앨토대 교수는 청문회에 참석해 증언대에 서기도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은 그를 공개적으로 모욕했고 캐버노는 근소한 차이로 청문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27년 전 마찬가지로 성추행 의혹을 받은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의 인사 청문회에서 피해자였던 아니타 힐 오클라호마대 교수가 강제로 청문회에 끌려나와 의원들의 모욕적인 추궁을 받았던 일을 떠올려보면 공화당은 청문회에서 승리했지만 사실은 패배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미투 운동이 제3세계로 확산된 모습도 눈에 띈다. 영국 데일리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검색엔진 구글을 이용해 ‘미투’를 가장 많이 검색한 도시 1위부터 5위가 모두 인도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도에서는 지난 해 10월 발리우드의 한 배우가 성추행 경험을 폭로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한 채 묻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엠제이 아크바 외교부 차관의 성추행이 폭로되면서 미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열풍에 비해 미미한 실질적 성과

지난 1년간의 미투 열풍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며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있다.

최근 타임지가 미국 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미투 운동 이후 직장 내 환경이 변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미투 운동 이후 성폭력 및 직장 내 성차별과 관련된 수많은 법안이 제안됐지만 실제적으로 가해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률은 없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1년간 미국에서만 수십 명의 성폭력 가해자 고발이 이뤄졌지만 검찰 기소 및 재판까지 간 사례는 하비 와인스타인 한 명 뿐이라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투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이에 대한 역풍도 거세지고 있다. 성희롱 의혹에도 불구하고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캐버노 대법관 지명자의 사례는 이를 보여준다. 일부에서는 지나친 폭로 열풍으로 미투 운동 자체가 변질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투 운동이 여기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 개선과 함께 사회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위해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로 고위직 여성의 수를 늘리고 조직화와 네트워킹, 캠페인, 정계 진출 등을 통해 정치적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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