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김현주/천리안 여성학동호회 부시삽

새학기를 맞이해서 요즘 학교마다 학부모 총회가 한창이다. 학부모 총회는 담임선생님과 첫 공식적인 면담 자리이기에 중요한 자리이다. 그런데 이렇게 의미 있고 중요한 행사에 대부분의 엄마들은 참석을 꺼린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자원봉사라는 이름이 붙는 온갖 감투를 꺼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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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학생을 매개로 엄마들의 노동력을 거져 먹으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저학년 교실 청소! 급식과 관련된 자원봉사, 등하교길 교통안전을 지도하는 녹색 어머니회, 도서실 운영 자원봉사자, 심지어 컴퓨터 강좌, 글쓰기, 태권도, 종이접기, 서예, 바둑, 영어회화와 같은 보다 전문적인 자격을 요하는 고급인력도 자원봉사로 유입되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의 노동력은 언제 어디서건 그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어 인정 받아본 적이 드

물다. 결혼해서 시집엘 가면 종처럼 일해야 했고(물론 무보수이다), 가사노동은 월 100여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말은 하는데 누구 하나 주부의 손에 현금을 쥐어준 적은 없었으며, 주부들이 직장을 구하려고 알아봤을 땐 자원봉사 자리만 가득했다. 자원봉사! 그 근본적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주부 노동력은 사회 밑바닥을 떠돌며 자원봉사직에 유입되었고 이 사회는 가정 안팎으로 주부 노동력을 공짜로 쉽게 갖다 쓸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정착되어 왔다.

사정이 이러니, 뭐 학교라고 다를까. 주부들의 노동력 쯤이야 하고 쉽게 생각했고 또 볼모로 잡혀 있는 인질도 있으니, 그 엄마들의 노동력이란 얼마나 만만한가!

자원봉사는 진정 아름다움의 극치라 하겠다. 허나 강요된 자원봉사, 또는 내게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차선책으로 택하는 주부들의 자원봉사는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선생님은 월급도 받고 사회적 경력도 쌓이며 일하는 자리에서, 누구는 월급도 못받고 보조자 역할에 머물며, 오로지 ‘자식을 위해’ 자원봉사자의 이름으로 노동력을 강탈당하고 있으니!

때론 노동력 강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당신의 모습은 정말 위대하다고 치켜세워 주기도, 자녀의 활기차고 기죽지 않는 학교생활을 암묵적으로 보장하기도 하면서…

주부들이 집에서 전담하는 ‘무보수’ 가사노동, ‘사랑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육아전쟁에 이어, 이제 키울만큼 키웠다고 한숨 돌릴 때쯤, 그래서 직장을 알아보려고 노력할 때쯤, 학교는 “당신은 직장에 다니는가?” 먼저 묻고 전업주부임이 확인되면, “사실 돈은 못주겠지만, 당신은 학교에 자식을 맡겼으니까 무보수로 와서 일 좀 하라”고 부탁도 아닌 명령을 한다.

많은 학교가 신선하게 바뀌고 있지만 자원봉사의 이름으로 주부 노동력을 강탈하는 것에는 여전히 반성이 없다. 학교가 인력난으로 쩔쩔매고, 집에서 놀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주부가 잠깐 도와주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을거라고 믿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밑바닥을 기며 여기저기서 봉사해야 했던 주부들의 작고 작은 노동은 무시되어도 빼앗겨서도 안된다. 이 노동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태산 같은 거대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저학년 교실에서 청소를 담당할 사람이 필요하고(물론 청소는 교사의 몫도 아니다!), 급식 배식에도 보조인력이 필요하다면 예산을 확보하고 보수를 주면서 청소원과 보조원을 고용해야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여성의 노동력 착취’에 편승해서 맞벌이 주부나 잠재적 맞벌이 주부에게 자행되는 노동강탈은 멈춰야 한다.

꼬랑쥐: 우리에게 학교문제는 민감하다. 위의 글은 교사를 질타하는 내용은 절대 아니다. 어디서나 쉽게 주부노동력을 쉽게 거저 먹으려는 행태에 대한 한탄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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