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성폭행을 당했어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성학 시간에 성폭력에 관한 수업을 하고 나면, 가끔 위와 같은 고민을 털어놓는 남학생들을 만난다. 한번은 밤에 공원으로 데이트를 나갔다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여자친구가 윤간을 당하고 임신까지 해 고민 중이던 대학 신입생이 상담을 해왔다. 그는 자신이 그 여자친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자기는 그녀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해서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분노, 그리고 여자친구를 잃고 싶지 않지만 자꾸만 그녀가 소위 ‘더럽혀졌다’는 생각에 너무 괴롭다고 했다. 또 강간으로 생긴 아이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아이이기도 하니 낳아서 함께 길러야 하는 게 아니냐며 자신의 혼란과 갈등을 호소했다.

또 어떤 남성은 사귀던 여자친구가 평소에 매우 적극적이며 활발한데 유독 스킨십만 하려고 하면 자신을 송충이 보듯이 혐오하더니, 며칠 전 어릴 적에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이메일로 상담을 해왔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고 키워가는 연인들에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정말 가슴아프고 사회적으로 공분할 일이다. 그런데 내가 처음 이런 상담을 받았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이들 남성들을 괴롭히고 있는 정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들의 대부분은 그녀를 자신보다 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녀에 대한 진정한 걱정이나 배려보다는 그녀가 순결치 않아 상처받은 자신의 마음이 더 크게 고민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자가 강간을 당했어요. 전 어떻게 해야 하지요?”라는 질문 그 자체는 이미 그 사랑의 종말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머리로는 그녀 잘못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가슴에선 자꾸만 그 사실이 날 괴롭힌다”고.

나는 이들에게 온 마음으로 그녀를 이해하고 함께 그 고통을 나누며 성폭력 피해 생존자인 그녀를 예전보다 더 사랑할 각오가 없이는 상대 여성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도 그녀를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면 자신이 잘못된 통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둘의 관계에서 이 사건은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한 불씨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를 당한 여성들도 이젠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더 이상 갈등하는 상대 남성에게 매달리기보다는 마음이 아프더라도 헤어지고, 오히려 더 성숙한 삶을 찾아가는 현명한 여성들이 늘고 있다. 처음 사례의 여성도 결국 강간으로 인한 임신에 대해 낙태를 했고, 그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정리한 후 힘들지만 당차게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이제 더 이상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 속에서 서로가 고통을 싸안고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녀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강간 피해를 당한 여자친구가 순결을 상실했다고 고민할 수 있는가? 만약, 자신이 없다면 과감히 그녀를 놓아주는 것이 그녀를 사랑하는 또 다른 선택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앞으로 더 충분히 행복해질 의무와 권리가 있으니까.

이미경/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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