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아버지’의 공포를 아시나요

맞고 사는 피해자의 상황 이해 못해

상담원들, “교육받은 수사관은 다르다”

“18일 새벽 02시, 1년간 별거 중이던 아버지가 집에 찾아와 어머니를 상대로 무차별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둣발로 어머니를 때리고 텔레비전을 던지고 커다란 거울을 깼습니다. 112에 세 번을 신고해 파출소에서 아버지를 데리고 가고 어머니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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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관악경찰서 홈페이지에 아버지의 폭력을 고발한 딸의 호소문이 올라왔다. 내용은 가정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의 태도에 대한 항의다. “담당형사는 첫 마디에서 ‘그래도 아버지고 하니까 말로 좋게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말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겠습니까?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도 형사는 답변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고 ‘아가씨가 아버지 없었으면 어떻게 태어나고 자랐겠느냐’고 두 번이나 말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어머니와 우리를 보호하고자 한 것이었지만 경찰서에선 단지 아버지를 신고한 불효막심한 패륜아로 취급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관악경찰서 청문감사관실 측은 “담당형사의 사건처리 과정을 보면 서류상의 하자는 없다. 다만 당시 피해자의 딸에게 반말을 한 것과 상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던 것에서 비롯된 오해가 컸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항의문을 게재한 ㅇ씨는 23일 담당형사 ㅅ씨로부터 “반말을 쓰고 함부로 말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은 상태. 그러나 ㅇ씨는 “나는 1366에 연락해서 단체의 도움도 받았고 친구들과 네티즌들의 지지와 격려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항의하고 대응할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서 도중에 고소를 포기하거나 무력감과 모멸감으로 인해 더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라며 경찰서 차원에서 예방조치가 취해지기를 원하고 있다.

가정폭력 상담원들에 따르면 피해자 가족에 대한 이같은 경찰의 태도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심리상태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ㅇ씨의 아버지는 사건 다음날인 19일 풀려났는데 경찰서 로비에서 바로 ㅇ씨와 큰언니와 마주쳤다. 즉, 두 딸이 옆에 있는 상태에서 가해자를 풀어준 것이다. ㅇ씨는 “아버지가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냐”며 경찰이 2차 피해를 방기한 것이라고 항의했지만 어찌되었든 법률상으로는 위법이 아니다.

서울여성의전화 이민주 인권부 간사는 “가정폭력 사건에선 가장 먼저 어머니와 자식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 신경을 써야한다”며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공포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쩌다보면 때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남성위주의 사고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가정폭력사건 처리불만신고센터에 접수된 사건들을 보면 아직도 우리사회는 가정폭력을 ‘부부싸움’ ‘집안일’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경향이 강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조용히 해라’ 한 마디 하고 가버리거나 ‘부부싸움 가지고 뭘 그러냐’며 사건을 접수도 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접근금지 조처를 취해달라고 요청하는 피해자에게 “방에 들어가서 문 잠그고 있어라”라고 훈계하는 경찰도 있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들은 자포자기 상태가 돼 이후로도 계속되는 폭력에 대응할 용기를 잃게 된다.

1366과 가정폭력상담소, 여성의전화 등 단체들은 피해자들이 여성단체나 1366을 활용해 도움 받을 것을 제안하면서 특히 ‘경찰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청주여성의전화 조혜경 사무국장은 “처음엔 보호처분이 무엇인지, 가정폭력방지법의 내용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던 경찰들이 2년 정도 홍보를 하고 교육을 실시하면서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충북지역의 경우 충북경찰청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경찰들을 대상으로 가정폭력과 성폭력 등 대여성범죄 수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서울지역도 작년 한 해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여성단체들이 경찰대상 교육 프로젝트를 실시한 바 있지만 올해 지원사업에서 제외됨과 동시에 난관에 부딪혔다. 가정폭력 상담원들과 여성단체들은 “경찰교육이 필요하다면 경찰청이나 지자체가 나서서 교육을 실시해야지 시민단체들에게 그 역할을 전가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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