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해결 방법 관심 높아져, 일방적 승리 아닌 당사자간 ‘윈윈’ 지향

갈등해결 프로그램 전문가 박수선씨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교육현장의 수요 급증과 관련해 “권력관계가 분명했던 한국사회에서 지금까지 갈등은 일방적인 힘에 의해 해소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다른 곳에 비해 닫혀 있던 학교사회에서도 은폐됐던 갈등이 사회 전반적으로 차츰 다양한 목소리를 내게 되면서 많이 표출되게 됐다. 학교가 이것을 많이 체감했고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온다는 점, 그리고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대응을 회피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교사들의 관심이 커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교육현장이 주목하고 있는 갈등해결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 갈등해결 프로그램에서 갈등해결 과정이란 갈등이 ‘노출된 상황’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원인을 끄집어내 서로 드러냄으로써 일방적인 판단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간에 자율적인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즉, 갈등이 일어났을 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 인종,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고 보면 누구나 옳을 수 있다고 인정하게 되는 철학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갈등이 해결되고 나면 이해당사자 모두가 이긴 결과가 될 수 있도록 ‘갈등의 순기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갈등해결 워크숍의 주 참여자들이 학교 사회의 주체 중 하나인 교사들이라는 점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교사간, 학생간, 교사와 학생간 갈등 유형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교내에서의 갈등은 해결이 아닌 주로 폭력과 때론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결말을 맺기도 한다.

이때 지금까지 교사들의 역할은 주로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벌점을 주는 식으로 판단을 내린다. “이런 식의 판단은 결국 한 아이는 기고만장해지고 한 아이는 앙심을 품게 돼 학교폭력의 정도가 심각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전하는 박수선씨는 “이 과정에서 교사가 판단을 내려 잘잘못을 가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숨은 감정과 문제를 끌어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아이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 과정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박수선씨는 “일정기간 반복적으로 훈련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위기에 평화적으로 대처하는 훈련이 몸에 밴다”고 강조한다.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이 분노를 삭이고 화를 억제하는 방법이 체득되기 때문이다.

‘또래중재’ 즉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갈등해결 프로그램을 9년째 시행하고 있는 미국 버지니아주 레이크 브래드독 고등학교의 예를 보자.

이 학교는 처음에 갈등해결 프로그램에 관심있던 한 교사가 동아리 형태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교장, 교감 재량으로 정규 수업시간으로 인정받았다. 이 프로그램을 실시한 후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학생들 사이에 갈등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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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 23일에 열린 ‘학교내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교사 워크숍’에서 한 참가자가 갈등분석 모둠토론한 것을 발표하고 있다.

아이들은 “친구들을 중재하는 입장이 돼 보는 것도 좋은 점이었고 폭력을 줄이고 예방하는 측면도 좋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이 열린 마음을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 예는 평화교육의 한 수단인 갈등해결 프로그램이 학교현장에 뿌리내렸을 때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박수선씨는 “아이들은 정해진 틀이 없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기 쉽다. 어릴 때부터 평화, 공존의식을 배울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능력도 함께 배우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도 기대해 볼 만하다는 얘기다.

워크숍을 마친 교사들도 “아이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내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교사 워크숍’에 참석했던 한 여교사는 “지금까지는 갈등을 부담스럽게 느꼈지만 이젠 도전의 기회로 받아들이게 됐다. 갈등은 필연적이지만 폭력은 선택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라고 밝혔다.

작년 겨울방학을 이용해 동료교사 10여명과 함께 갈등해결 프로그램에 참여한 신승미(중학교 국어) 교사는 “사실 학교는 갈등의 온상이다. 그런데 갈등을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실습을 통해 배움으로써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 교사는 “실제 교육현장에서 갈등 당사자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현실”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초임 교사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희망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는 다소 이색적인 세미나가 있었다. ‘한국의 분쟁해결 역량에 대한 평가’를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의약분업, 대우자동차 매각 협상, 환경분쟁 등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분쟁과 갈등의 유형을 살펴보고 협상과정의 중요성을 제안하는 토론을 가졌다.

이 토론에서는 갈등은 해결하는 과정이 평화적이고 민주적이면 개혁을 이루기 위한 생산적인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또한 분쟁해결을 위해 과학적인 정보가 제공되면 이를 중립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우리는 ‘지구당 갈등, 내분 심화, 노사 진통, 학교분쟁 매년 늘어, 갈등 파문 확산, 종교분쟁, 외교갈등 재연, 논쟁, 항의, 촉구, 갈등 증폭’ 등 갈등과 관련된 뉴스 헤드라인을 매일 10건 이상 접하게 된다.

갈등해결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여러 형태의 갈등 상황들을 접하면서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전은주 사무국장은 “우리는 이제 날마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을 근본에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갈등, 중재를 어떤 개념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했다.

전문가들은 갈등을 방지하고 갈등해결 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갈등 당사자들의 자율적인 협상과 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갈등해결 프로그램이 여성에겐 어떤 의미일까.

타인, 타문화에 대한 배려와 존중,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는 소수자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갈등해결 프로그램의 기본 정신이다. 즉 갈등 당사자끼리 대화를 통해 서로 합의과정을 거쳐 문제를 풀고 서로 만족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그 갈등은 해결된 것이다. 폭력적인 군사문화가 지배적인 사회를 평화의 사회로 정착시키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갈등해결 프로그램에서는 여성이나 흑인, 또는 동성애자, 장애자 등에 대해 각자가 갖는 편견들이 자연스럽게 없어지도록 훈련된다. 즉,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들이 그동안 사회적 선입견으로 인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갈등해결 전문가들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기고 합의에 도달하는 메커니즘이 형성되면 갈등이 창조적이고 건설적으로 해결된다”고 전망한다.

박수선씨는 “성폭력이나 직장내 성희롱 문제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하면 피해 여성도 두려움이나 미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가해자도 명확한 사과와 함께 더 이상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떳떳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속담을 통해 본 한국인의 갈등대응방식

▲회피 보류형

-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 달걀로 성치기, 계란으로 바위치기

-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경쟁대립형

-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

- 나도 덩더쿵 너도 덩더쿵

-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순응 양보형

- 여럿이 가는데 섞이면 병든 다리도 끌려간다.

- 친구따라 강남간다.

▲타협절충형

- 원님과 급창이가 흥정을 하여도 에누리가 있다.

▲협동적 문제해결

-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 동냥자루도 마주 벌려야 들어간다.

-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 말만 잘하면 천냥 빚 갚는다.

- 외손뼉이 못 울고 한 다리로 가지 못한다.

- 은행나무도 마주서야 연다.

- 징과 북이 맞아야 한다.

-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박정 희경 기자 chkyu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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