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향해 열린 ‘우리’를 위한 점검①]

“6·25 직후에 동네 남자아이들이 미국인 병사들을 쫓아다니며 먹을 것을 얻어먹었는데 백인들을 보면 ‘땡큐’라고 하면서 손을 내밀고 흑인들을 보면 ‘뻑큐’라고 하면서 주먹을 휘둘렀다.”(서울에 사는 50대 후반 주부의 증언)

백인에겐 과잉친절·같은 유색인종엔 무례해

근거없는 열등감과 우월감에 방문객들 당혹

피부색이 검은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차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미국 LA폭동은 경찰의 인종차별로 인해 촉발된 사건이었지만 그 피해는 백인보다 오히려 한인들이 더 많이 겪어야 했다. 당시 LA에서 학교를 다니던 박지현(28)씨는 “폭동으로 인한 한인상점들의 피해가 심해 한인으로서 억울했지만 사실 우리가 반성해야 할 점이 많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LA 한인들이 흑인들을 계속 멸시해왔기 때문에 흑인들의 반한 감정이 극에 달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씨는 그 일례로 한인상점에서 종업원이나 주인들이 백인에게는 잔돈과 영수증을 손에 쥐어주지만 흑인들이 오면 카운터 위에 내려놓고 집어가게 한다는 것을 들었다. ‘흑인과 손을 접촉하는 것이 더럽다’는 식의 태도를 흑인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한국인들의 피부색 차별은 우리 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들이 더욱 절감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 중인 알리사(27·가명)씨는 “흑인이 한국에서 지내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라며 “한국인들의 모욕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때는 오로지 백인친구들 여러 명 속에 둘러싸여 있을 때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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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인종차별은 ‘피부색’뿐 아니라 ‘못 사는 나라’에 대한 차별과 궤를 같이 한다. 우리 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타문화와 타민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상식을 넘어섰다고 지적한다. <사진·민원기 기자>/font>

90년대 중반 한국에 유학을 온 백인여성 캐롤라인(31)은 “한국인들이 내게 몹시 친절했기 때문에 외국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안 있어 그들(한국인)이 중국사람이나 태국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캐롤라인은 “백인들에 대해 마치 자신들보다 더 배운 사람들이고 뭐라도 있는 사람인양 생각하는 것을 보면 한국인들의 내면에 이상한 열등의식이 깔려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국인들의 인종차별은 피부색 뿐 아니라 ‘못 사는 나라’에 대한 차별과 궤를 같이 한다. 같은 흑인이라도 미국계 흑인과 아프리카 출신 흑인은 상당히 다른 대우를 받으며 또 같은 아시아계라도 일본 사람과 필리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천지 차이다.

한국을 방문중인 일본인 미영(25·한국이름)씨는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이 심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한국에 오기 전 걱정이 많았었는데 막상 와보니 오히려 대접을 해주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고 말한다. 반면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시아 국가사람들은 한국 땅을 밟으면서 ‘지은 죄도 없이 고개를 숙여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네팔인 남편을 둔 박모(33)씨는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이도 가졌는데 친정 식구들부터 시작해서 주위 모든 사람들이 못 사는 나라 남자라고 깔본다”고 토로했다. 동남아시아계 남편을 두었다고 불쌍한 여자취급을 당하는 게 지겹다는 것이다. 박씨는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데려가도 보호자로 남편이름을 대면 문전박대를 당한다”며 “이렇게 차별이 심할 줄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태국 한 TV방송국 간부 가족 일행이 한국여행을 하려다 인천공항에서 불법입국자로 의심을 받아 입국거부 당해 태국언론이 대대적으로 ‘한국에 가지 말자’고 보도한 사건 역시 한국인들의 동남아시아계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무관하지 않다. 공항직원이 방문객의 여권을 함부로 빼앗고 “입 닥쳐(Shut mouth)”라며 욕설을 하는 등 모욕적인 언사를 한 것은 비단 태국에 대한 입국심사 기준에만 한정시켜 볼 수 없는 문제다.

소위 못 사는 나라에 대한 차별이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차별과 결탁해 외국인 여성들은 쉽게 ‘성희롱’ ‘성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최근 들어 연예인 비자를 통해 입국한 필리핀, 러시아 등지 여성들이 다수 유흥업소로 빠지게 되면서 이들에 대한 폭행과 인권유린은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의 한 어학원에서 영어강사를 하고 있는 캐나다인 여성 리즈(27)씨는 “백인으로서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겪는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밤거리를 다닐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금발의 여자를 보면 한국남성들이 러시아에서 온 매춘여성이라고 생각해 ‘창녀’라고 부르면서 집적거리기 때문”이다.

유럽여행을 가서 ‘일본인과 한국인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에 분개하고 미국, 뉴질랜드, 호주 등에 이민 가서 ‘이 곳에도 인종차별이 있다’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한인들이 외국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피부색과 빈부에 따라 상식을 넘어선 편견과 차별을 가하고 있는 한국의 실상에 대해 리즈씨는 “어릴 적부터 교육을 통해 바깥 세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쌓을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인종차별 역시 ‘세계화’를 아무리 외쳐도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격인 한국인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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