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 당시 여성들 대변하는 ‘모란꽃’연극무대에 올라

광주가 고향이며 80년 4월이 생일인 내 유년의 기억 속에 5월은 늘 음산하고 우울했던 것 같다. 특히 비오는 날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소리를 들을 때면 우리는 그것이 5·18때 억울하게 죽은 혼들의 넋두리라고 말씀하시는 어른들의 얘기를 피할 수 없었다. 이제는 세월이 좋아져 5·18을 광주사태라고 하지 않고 5월 민중항쟁이라고 부르며 간첩이라든가 폭도로 불리던 사람들은 모두 민주화 투사로 불려지고 있다. 또한 총성이 울리던 도청 일원에서는 5·18을 기념해 갖가지 기념행사와 축제가 벌어지고 폭죽이 터진다. 시간은 그렇게 많은 것들을 해결하고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22주기를 맞는 올해 5·18에서 나는 한가지 예전과 다른 이슈를 발견했다. 그것은 5월 항쟁의 한복판에 함께 존재하고 있었던 많은 여성들이다. 분명 함께 있었으나 배제되고 무시되었으며 기록되지 않았던 존재들. 그 존재들에게 눈길을 주는 기특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항쟁 당시 여성들의 역할과 활동에 대한 학술적 재조명이 시작되는 한편에선 광주의 대표적인 극단 토박이가 연극을 통해 여성으로서 경험한 5월의 상흔을 되짚어 보는 ‘모란꽃’을 공연했다. 5·18이 여성에게는 어떤 의미였으며 또한 여성들의 경험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극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평범한 여대생에서 5·18때 가두방송을 하고 시민들을 선동했다는 죄로 북한의 여간첩 모란봉의 모란꽃이라는 터무니없는 간첩누명을 썼고 김대중 내란 음모조작 사건에 관련됐다는 죄명도 뒤집어 쓰게 되는 주인공 이현옥은 당시의 여성들을 대변한다. 거짓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안기부원들은 성고문을 하고 가족을 협박한다. 그로 인해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 이현옥은 결혼 후에도 폭도라는 것을 속이고 결혼했다는 서울의 시댁어른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언론에 5·18을 증언하고 나서는 것조차 제지당하며 그는 망월동 묘역의 영혼들과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이처럼 ‘모란꽃’은 여성이 처한 2중 3중의 역사적 고통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5월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또 이 연극에선 대인시장과 양동시장 등 각 시장의 노점상 아주머니들과 각 동별 부녀회에서 음식을 만들어 시위대에 전달하던 일, 주먹밥을 나눠주고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하자 적극 헌혈운동을 벌였던 일 그리고 검정리본을 만들어 죽어 가는 이들의 넋을 달래는 일 등 여성들이 벌인 운동들을 다시금 살려낸다. 그 동안 간과됐던, 혹은 외면하고 있던 5월 항쟁의 다른 주인공들을 이제야 돌아보게 된 셈이다. 분명 함께 존재하고 함께 경험했으나 배제된 여성들. 그렇게 배제된 여성들의 아이들은 어머니의 증거를 간직하기라도 한 냥 너무도 분명한 5월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다. 혀를 빨거나 심장이 약하며 정서불안이 있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5월 항쟁 22주기와 더불어 22살의 나는 여전히 올해도 가슴이 아리고 혀를 빨며 깜짝 깜짝 놀래는 나를 발견했다. 나의 이 5월 증후군은 80년 5월의 상흔이며 내 주위의 모든 어머니들의 증거라는 생각이 든다.

강문진영(조선대학교 3학년·her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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