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의 죽음으로 시작된 싸움, 이젠 군대의 구조적 문제 보여

“사람들은 바위에다 계란치기라고 쉽게 얘기해요. 하지만 전 계란도 계속 치다보면 바윗돌을 깰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신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떠들다보면 하나라도 달라지고 하나라도 줄어들지 않을까해서 이 활동을 시작한 거예요. 군측은 우리가 지쳐서 포기하기를 바라겠지만 저처럼 가슴치는 부모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그런 아픔을 더 이상 물려주지 않기 위해 결코 그만둘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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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군가협 회원 어머니들이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정무대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마이너>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폭력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이하 군가협)의 김정숙 회장은 진작에 이런 모임이 생겼더라면 지금보다 피해를 더 줄일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그런 아쉬움은 때론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가 군가협을 이끌어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군가협이 생겨난 배경은 1998년 2월에 발생한 김훈 중위 사망사건이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김훈 중위에 대해 군수사당국은 자살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유가족들은 이의를 제기했고 천주교 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도움을 요청했다. 천주교 인권위는 곧바로 진상규명 작업에 동참했으며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군 의문사는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됐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군에서 의문사한 박현우 일병의 어머니 이혜숙씨가 주축이 되어 ‘전국군폭력희생자유가족협회’(이하 전군협)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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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가협의 김정숙 회장.

유가족들의 요구는 군에서 자살로 처리된 사망 사건을 재수사해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가족들만으로는 조직적이고 폐쇄적인 군을 상대하기가 벅찼고 또한 정치사회적 경험의 부족으로 군의문사라는 문제에 구조적으로 접근하기보다 개별 사건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유가족들간에 갈등이 생겨나자 2000년 10월에 천주교 인권위 산하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폭력근절을 위한 가족모임’으로 재결성됐고 이듬해 9월 군가협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군가협이 갖는 특징은 민가협이나 유가협처럼 어머니들이 중심이 된 ‘어머니 운동’이라는 점이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자식의 죽음은 대부분 전업주부이던 군가협 어머니들의 삶을 크게 바꿔 놓았다. “자식의 죽음만으로도 억울한데 자식에게 누명을 씌우기까지 했으니 하루하루가 고문을 당하는 듯 지옥과 같은 삶”이었다. 그러나 같은 상처를 입은 유가족들을 만나면서 여성들은 힘과 위로를 얻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식이지만 유가족들끼리는 “죽는 날까지 그걸 잊을 수 없다”는걸 말하지 않고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유가족들과의 만남은 우연히 발생한 듯한 자식의 죽음이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한 깨달음은 군가협 어머니들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평범한 어머니의 삶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내 자식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초기 전군협에서는 다른 어머니들의 고통과 슬픔을 돌아보지 못한 채 그들을 동원하고 자기문제 해결에 이용하려 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단 한건의 사건도 해결하지 못했고 오히려 어머니들을 지치게 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바위에 계란치기라며 활동을 포기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일부의 어머니들에게는 의식상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당한거나 이쪽이 당한거나 저쪽이 당한거나 새로온 사람이 당한거나 그 과정이 너무 똑같아요. 새로 온 사람들은 여기에 접수했으니까 금방 뭐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예요. 군에서는 은폐하려 하고 우리는 그걸 벗겨내려 하니까 대립이 되는데 그게 쉽게 벗겨지나요? 하지만 하다보면 달라지지 않겠느냐, 하다보면 군이 은폐한게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유가족들은 생계문제도 있고 해봐야 별 반응도 없고 해서 지치기 마련입니다. 또 여지껏 내려온 역사가 그거니까요. 하지만 그게 잘못된 거죠. 더 이상 물려주지 않아야 할 잘못된 관행이죠. 그러니 이제라도 우리가 나서서 법도 개정하고 군당국을 개혁시켜야합니다.”

군가협 운동은 이렇게 어머니들이 의식적으로 저항하기를 결정했을 때 시작됐다. 어머니들은 사회운동의 주체가 돼 직접 거리에 나가 서명을 받고 집회를 계획하고 실천하고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호소문을 전달했다. 스스로 활동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처럼 군가협 어머니들 또한 매달 마지막주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국방부 앞에서 항의집회를 갖는다. 열두 유가족이 중심이 돼 군의문사에 대한 국가책임을 묻는 행정소송도 진행중이다. 6월 5일에는 종묘공원에서 지난해에 이어 ‘군의문사 군폭력 희생자 합동추모제’를 열고 거리행진도 벌였다.

또한 군가협 어머니들은 5명의 회원들로 자체 조사단을 꾸려 군의문사 사건이 접수될 때마다 유가족들과 함께 군부대에 재조사를 신청하고 부대를 방문해 현장조사를 벌인다. 그러나 사건초기 현장에 가보면 사고현장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기 일쑤이고 군사보안지역이라는 이유로 군은 유가족들의 현장출입을 제재하고 사진촬영을 통제하고 부대원들과의 면담에 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투명성있게 하려면 유가족과 제3의 기관이 들어가서 사건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재연해야 사실이 밝혀질 것 아니예요. 하지만 군은 수사자료도 군에게 불리한건 다 빼버리고 유가족들에게는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강하게 항의할 때만 들어주는 척 보여주는 척 하고 말이예요. 지난 1월에는 비디오 테잎을 내놓으라고 군측에 감금되기까지 했어요.”

지난 1월 21일 군가협 어머니들은 김병민 이병 사망사건에 대한 군측의 사건설명을 듣기 위해 유가족들과 함께 부대를 방문했다가 브리핑 내용을 촬영한 비디오테잎을 압수하려는 무장 군인들에 의해 16시간동안 불법으로 감금당한바 있다. 이 사건은 우리 군의 폐쇄성과 폭력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군가협 어머니들은 이처럼 사건 처리과정에서 군의 폭력성

을 접하면서 군의문사를 넘어서 군대내 폭력문제로까지 관심을 넓히게 되었다.

“군은 밀폐된 공간이예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밖에서는 전혀 모르죠. 군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문민정부 들어서도 달라진건 없어요. 학생들은 그 실상을 잘 몰라요. 작년 국감자료를 보면 군대내 구타와 가혹행위, 괴롭힘 등 군 폭력으로 인해 정신질환을 앓는 이가 한해 5천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성폭행도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우리 단체가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크게 활동을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군폭력 예방을 위한 활동들을 벌여나갈 계획입니다. 군폭력 예방과 대처방안을 적은 수첩을 제작해서 논산 훈련소에 비치하구요, 각 부대마다 돌아다니면서 군폭력예방 강의도 하려합니다. 또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군대관련 문제와 법에 관한 교육도 하구요.”

군가협 어머니들은 자신들이 활동한 이후 그래도 구타사고가 줄어들었다고 얘기한다. 국회 국감자료를 살펴보면 매년 300여명에 이르던 사망자 수가 98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2000년도에는 182명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자살사망자 수는 줄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자살률이 늘어났다는건 군의 조사 왜곡이 심해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런 만큼 우리단체가 해야할 일이 더 많아진 셈이죠. 우리의 활동을 더 많이 알리고 더 열심히 싸워야죠.”

수동적인 피해자로만 머물러있던 어머니들이 군을 변화시키고 폭력을 근절시키고자 스스로 일어섰다. 이들의 외침이 언제까지 메아리없는 반향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것일까. 이제는 정부와 군당국이 대답할 때이다.

군의문사 관련 제보 (02)777-6602 www.kmid.org

이정주 기자 jena21@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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