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대 한판’은 한해 각 대학의 여성주의자들이 모여 활동을 공유하고 운동방향을 짚어보는 자리다. 2002 여성연대 한판은 8월 19∼21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개최됐으며 여성노동운동의 방향, 교수 성폭력 문제, 성매매, 진보와 여성주의 등 이슈에 대해 논의했다. <편집자 주>

이제 서로 알아본 우리, 손을 잡다

얼마 전 친구에게 기지촌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기지촌 여성들이 직접 만든 작품들로 열린 <언니들내음>이라는 전시회에 데려갈 참으로 말을 꺼냈는데 그 친구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반응을 하면서 다른 화제로 얼른 말을 돌렸다. 평소에 성폭력이나 여성운동에 관심을 가지던 사람이었기에 그 반응은 나를 적잖게 놀라게 했다. 아마도 ‘성매매’라는 말이 친구에게는 잘 와 닿지 않는 이야기고 매춘여성은 나와는 거리감이 있는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대학에서 여성운동을 하는 우리들 역시 이런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기지촌 언니들을 만나고 학내에서 새움터 활동을 알리고 물품 판매를 하면서도 단지 지원하는 수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앞선다. 새움터가 뭐냐고 물어보는 학우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드러날까 난색을 표하던 언니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내가 너무 쉽게 성매매를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나의 관점과 태도를 점점 더 성찰하게 된다.

이번 한판에서 마련한 ‘성매매’ 토론회 자리는 이런 나의 고민을 심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이번 세미나는 기지촌 언니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기초세미나와 성매매와 여성노동에 관해 토론하는 세미나 등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 자신의 관심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주제별 세미나였는데, 특히 한판에서 처음으로 성매매 사안을 접하게 된 사람들에게 언니들과의 대화는 무척 의미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대학내 여성운동 활동가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대학 내에서 반 성매매 운동 고민하기’라는 토론이 이어졌다.

성매매 파트는 를 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제목 그대로 포르노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과정,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스웨덴의 영상물이었는데 포르노 생산과정에서 여성이 자아를 상실하고 고통받는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줬다. 현실을 똑바로 마주 대하는 것은 끔찍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을 각자의 마음에 담게 됐을 것이다.

여기저기 모듬을 지어 무게실린 고민들을 풀어놓으며 한판의 밤은 깊어갔다. 이제 서로를 알아본 우리, 자매의 손을 잡으면서…

김이 정민

‘진보’와 여성주의의 갈등

성매매·성폭력·여성노동이 작년 한판에서도 얘기됐던 주제인 반면 ‘진보/여성’은 올해 처음으로 제기된 주제다. 물론 그 전에도 ‘운동사회 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는 많이 제기돼 왔지만 진보진영과 여성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이슈를 여성주의자들이 모여서 함께 토론한 것은 처음인 셈이다.

그것은 아직도 이 문제가 풀기 어려운, 혹은 말을 꺼내기 민감한 주제라는 것과 동시에 그럼에도 올 한해 ‘김규항 사태’를 비롯해 ‘메이데이 여/聲’이 겪었던 문제 등 진보와 여성주의의 관계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선 발제를 들으면서 발제자의 두통을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 아프다…’라는 말 외에 다른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여성운동 혹은 여성주의자들에 대한 진보진영의 시선은 낯설지만 진부한 것이기도 하다. ‘부르주아 페미니즘’이다 ‘엘리트 페미니스트’다 등의 비난이 아직까지 나오고 있다. 또한 여성운동은 부문운동으로 사소하고 부차적인 운동으로 여겨진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진보’라는 개념 속에 그들이 만들어 놓은 ‘학생운동’ 속에서 ‘여성주의’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학생운동과 여성운동을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 학생운동 속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 진보와 여성주의의 경계에 선 모든 사람들이 더 많은 혼란과 두통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여성주의’라는 같은 지향을 공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각자가 어떤 곳에 위치하고 있느냐에 따라 주변에서 받는 시선도, 서로에게 보내는 시선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서로를 알아본 우리, 자매의 손을 잡다’라고는 하지만 그들 사이의 차이라는 것 역시 쉽게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후 여성주의와 학생회 조직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위계적인 조직이 아닌 연대체가 어떻게 꾸려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여성주의자인 동시에 학생운동을 고민하는 자로서 겪었던 문제들과 어려움, 다른 여성주의자들에 대한 섭섭함과 기대들이 얘기됐다.

그러나 많은 혼란과 생각들 속에서 아직도 나는 ‘머리 아프다’라는 말 외에 다른 결론은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어려운 문제다.

김한 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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