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지역·종교·평화·환경운동 내 여성주의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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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이너>

“여성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아졌지만 여성노동자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고 10인 이하 사업장에 근무하고 있다. 큰 사업장 중심의 노총 구조로는 여성노동자의 조직화에 성공할 수 없다. IMF 이후 여성노동자의 조직률은 5%로 떨어졌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여성노동운동가들이 독자적인 여성노조를 출범시키게 됐다.” 1999년 양대 노총으로부터 분리돼 독자적인 영역으로 출범한 전국여성노조의 배경이다.

최상림 전국여성노조 위원장은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화하려면 여성들이 갖는 삶의 조건들 즉, 모성보호와 가정과 직장 양립문제, 관계지향적 인간관계 등 여성의 특성에 맞는 노동조합의 모델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여성노조는 비정규직 문제, 모성보호, 직장내 성차별과 폭력 등 이슈에 대응하는 한편 대안적 노조운영방식에 대한 고민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1999년 발족한 여성환경연대 역시 꾸준히 환경운동을 해왔던 여성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단체다. 여성환경운동가들은 환경운동단체 내 여성들의 비율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주요 결정권은 남성들에게 있고 여성들은 주로 동원 대상으로 인식된다는 점, 육아와 가사를 담당해야 하는 여성활동가들을 조직이 배려하지 않는 점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왔다.

여성환경운동가들은 더 나아가 ‘여성과 환경’ 이슈에 대한 진지한 접목을 시도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성환경연대 측은 “지구의 위기, 생명의 위기는 인간중심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물신숭배 문화가 빚은 결과”라며 “여성적 가치인 공존과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는 에코페미니즘을 주창하고 있다. 여성환경연대는 친환경적인 문화를 확산시키고 여성환경운동 정책을 개발하는 한편 여성환경운동가 양성과 교류에도 활동의 큰 비중을 두고 있다.

2001년에는 오랜 기간 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해 활동해왔던 여성활동가들이 이주여성인권연대를 창립했다. 창립멤버인 안양 전진상 복지관 이금연 관장은 “이주노동자 문제라고 하면 연수제 폐지, 전체적인 노동권 등을 주로 이야기하지만 여성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는 성폭행과 성차별, 성매매, 결혼과 양육 등 여러 가지 인권문제가 보인다”며 “이주여성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기구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주여성인권연대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필리핀, 러시아 여성들의 성매매와 인신매매 문제, 국제결혼가족 문제 등의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평화운동의 영역에서 건져낸 여성주의는 세계적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망을 형성하는 값진 결실을 맺고 있다. 90년 11월 발족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활동은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운동으로 출발했으나 ‘전쟁과 여성인권’이라는 이슈로 발전·확장됐다.

정대협의 윤미향 사무처장은 “92년 유엔인권위원회 활동을 통해 보스니아 여성강간캠프 등 국가권력을 이용한 여성인권침해에 대응하는 각국 여성평화단위들과 연대하게 됐고 위안부 문제를 ‘성노예’ 문제로 조명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1991년 1월16일 미야자와 일본 수상의 방한을 계기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한 수요시위는 2002년 8월 14일로 521차를 맞이했으며 이같은 할머니들의 싸움은 ‘묻혀진 여성의 역사를 드러내는 용기 있는 투쟁사’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1992년 고 윤금이씨 살해사건을 계기로 미군범죄피해자 인권보호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위해 1993년 결성한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는 최근 들어 기존 반미·평화단체와는 다른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정유진 전 사무국장은 “활동을 하면서 여성주의를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민족문제에 여자가 나서서는 안 된다는 말을 7년간이나 들었다. 이 운동에 이렇게 헌신하는 여성들이 있는데 왜 민족문제에는 남자만 나서야 하는가. 민족과 이데올로기 중심의 반미운동권이 갖는 모순이 다 그 말에 담겨있다고 본다.” 정씨는 “여성과 아이들, 사회적 약자를 배제시키는 남성중심 담론에서 벗어나 정말 나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어 평화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1999년부터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고양시민의 러브호텔 난립저지운동은 여성이 중심이 된 풀뿌리운동으로 지역여성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일산신도시 내 러브호텔의 수는 9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늘었으며 러브호텔 내 룸살롱, 안마시술소, 유리방 등 성매매 업소가 성행하고 있다.

러브호텔 반대운동의 불씨를 살려나간 것은 다름 아닌 지역여성들이었다. 가정주부들이 러브호텔 실태조사를 벌였고 거의 매일 고양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끈질기게 운동을 전개했다. 고양시는 러브호텔 난립저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주민들은 이에 더 나아가 신축 중인 러브호텔 허가취소와 영업중인 곳을 매입해 폐쇄시키라고 요구하는 한편 ‘호텔 한뼘사기’ 운동을 전개했다. 이런 열기는 올해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고 고양시 여성들의 활동은 전국적인 러브호텔 반대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보수적인 한국종교계에서도 ‘성평등’을 요구하는 여성종교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00년 11개 천주교 여성단체들은 가톨릭여성단체연대를 결성해 ‘여성 사목위원 20∼30% 할당’ 등을 요구했으며 2001년 3월에는 주교회의 산하에 최초로 여성신도들의 단독기구를 꾸렸다. 개신교 여성들은 2001년 4월 ‘교회내 성폭력 추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교회내 성폭력금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여성목사 안수문제와 성역할 고정관념적인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불교계에서도 2000년부터 불교여성학 논의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불교여성개발원이 설립됐다. 올해 5월 완공된 ‘전국비구니회관’은 1980년부터 ‘비구니들의 1평 사기’ 운동을 펼친 지 22년만에 거둔 성과. 비구 중심의 종단운영을 비판하며 “비구니 스님의 위상 강화를 위해”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2001년 11월 원불교 여성교무들은 원불교학과 입학시 일괄적으로 받는 정녀지원서가 “순결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킨다”며 폐지를 요구하고 정녀선서를 집단적으로 거부했다.

올해 6월 각 종교계에서 ‘호주제 폐지를 위한 종교여성연대’를 발족시키고 호주제가 종교의 근본교리와는 무관한 것임을 주장하며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여성종교인들은 신앙의 차이를 극복하고 성평등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연대하고 있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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