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약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우리나라가 여전히 일본의 식민통치 하에 있었을 때 내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힘도 세고 부유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식민지 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면? 모르긴 몰라도 아무도 다니지 않는 밤거리에서 돌로 맞거나 테러를 당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선 남성의 지위가 월등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피해를 보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뜬금없이 이런 상상을 하는 이유는 정말로 여성으로 살아가기는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기보다 어렵다는 걸 종종 실감하기 때문이다. 같은 선상에 놓인 문제더라도 여전히 남녀의 권력관계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나는 이제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있다. 이때까지 충분히 남성들의 성차별적 언어사용과 성폭력적 행동에 적응됐다고 생각했는데 ‘시민과 법’이란 교양과목을 들으며 나는 매주 분노에 몸을 떨어야 했다. 강의를 하는 강사의 고의적인 남녀차별적 발언 때문이다.

지금은 ‘가족법’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이 가족법이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지… 호주제에 대해 배울 때였다. 우리나라는 여성이 시집을 가게 되면 호적을 파가야 하지만 성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보다 ‘남녀평등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결혼을 할 때 부부간 재산제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은 아주 평범한 한국의 남자라고 생각하며 만약 자신이 결혼을 할 때 자신의 아내가 ‘부부재산계약’을 맺자고 했다면 자신은 아마 부인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그 이유는, 부부간의 법이라는 것은 이혼할 때만 적용되는 것이므로 결혼도 하기 전에 그런 계약을 맺는 것은 행복하게 함께 살 마음이 없는 것이고 이혼을 염두에 두고 있는 여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부부재산계약은 남성의 지위가 월등하게 높은 한국에서는 남성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해도 상관없지만 남성들은 하지 말라고 남학생들에게 ‘신신당부’ 한다. 심지어 여성계에서 주장하는 부부재산 공동명의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부부별산제’에 비해 너무 남녀차별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여성계가 역차별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째서 나는 이런 말을 듣고 그냥 입술을 꼭 깨물 수밖에 없는지. 그 순간 내 머리 속에 ‘주먹이 법보다 가깝다’는 말이 떠오른 것은 내 신경이 너무 과민했기 때문일까? 이 수업에 참가한 여학생들 수는 전체의 절반 정도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교수가 그런 말을 버젓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남성’이고 또 ‘교수’라는 월등한 지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보다 이런 사람들은 주위에 많다. 그리고 남자들과의 의사소통은 딱 거기까지가 한계다. 권력을 누가 쥐고 있느냐가 중요하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가 그 권력을 어떻게 휘두르든 알아서 기라는 식의 발상. 정말 믿을 수 없고 믿기 싫지만 이것이 남자들의 방식이다.

인종간의 차별이나 국가간의 권력관계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저항하고 반대하고 있으면서 남녀간의 권력구조는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정말 남성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여성들이 느끼는 억압이나 분노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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