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사건 2심 재판을 거치며

재판 후속지원을 하다보면 한 가지씩 힘이 나는 상황들이 생긴다. 검사가 사건해결에 의지가 있거나 판사가 의식 있는 사람이거나 나의 주변사람들이 나의 분노를 이해해 주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이 나는 상황은 피해자가 그 사건을 잘 극복해 갈 때다.

작년 6월 강제추행 사건으로 본회를 찾은 내담자는 현재 수원지방법원(가해자 실형 2년 6개월 선고)의 1심을 거쳐 고등법원의 2심을 진행하고 있다. 원래는 9월 27일이 선고일이었지만 여러 정황상 선고가 10월 18일로 미뤄졌고 현재는 11월 15일로 또다시 연기된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가해자는 처음부터 자신이 강제추행을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1심에서 그것이 거짓인 것이 밝혀졌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2심에서는 술에 취해 키스한 것만 기억난다는 1심의 주장을 전면 바꿔 상황에 대해 인정했지만 강제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판과정은 매우 지난하다. 특히 피해자가 그 날의 상황을 조목조목 진술해야 하는데 경찰과 검찰의 진술을 거쳐 재판장에서까지 진술을 하려면 정말 힘이 든다. 이쯤에서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이 피해를 받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입증해야 한다는 것에 무력감을 느낀다. 십분 이해한다. 모든 성폭력 피해자를 꽃뱀으로 모는 잘난 대한민국의 사법계는 그것이 자신들의 정의라 착각을 하고 있다.

피해자는 다시금 2심 재판장에 섰다. 판사는 대놓고 물었다. “어차피 합의할 거 얼마에 할 겁니까?” 피해자는 대답했다. “나는 돈을 위해 지금까지 온 것이 아니다. 내가 받은 피해에 진심 어린 사과나 뉘우침이 없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합의금은 생각해 본 바 없기 때문에 액수를 말할 수 없다.” 너무도 똑똑하게 대답하는 그녀가 나에게 정말 큰 힘을 줬다.

가해자는 선고가 있기 며칠 전 피해자에게 전화를 해 미안하다고 반성한다고 합의를 하자고 했다. 정말 뉘우치는 기색이 보이는 가해자를 보며 피해자는 용서를 생각하고 양형(형벌의 정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 했다. 그리곤 선고기일이 늦춰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10월초에 가해자로부터 내용증명이 날아왔다.

청춘남녀, 열정, 외로운 사람들… 이런 단어를 열거하며 피해자의 주장을 일축해 버렸다.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나는 너무 화가 났지만 피해자는 오히려 침착하게 너무도 정확한 반박문을 써서 우리를 방문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성폭력을 아직도 과격한 성관계, 꽃뱀이 합의금을 위해 쓰는 술수 등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든 법조계에 있는 사람이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들은 그런 시선으로 피해자를 괴롭히고 더욱 큰 상처를 준다. 이번 사건 또한 이런 성폭력 통념에 의해 어렵게 끌게 된 것이지만 피해자의 건강한 의식으로 그나마 형평을 찾으려 하고 있다. 11월 15일 이 사건의 고등법원 선고가 기다려진다.

한황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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