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한국의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6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지난 해 한국 여성들의 출산율은 1.3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다. 출산율이 낮아지는데 미국과 영국의 경우 100여년이 걸린 것과 달리 한국은 30년이 채 못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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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한국 여성들은 아이 낳기를 꺼리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출산율 감소의 원인으로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늦은 결혼, 아이 한 명당 들어가는 높은 교육비 등을 꼽는다. 물론 그것들도 중요한 이유지만 정작 여성들은 다른 말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임신을 하기가 싫다는 것이다. 모성은 성스럽다고 추켜세우면서도 정작 모성을 실천하기 위해 임신한 여성들을 함부로 대하고 혐오하는 사회. 그런 한국사회에 시위라도 하듯 출산 파업을 일으키고 있는 여성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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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자리양보 받은 적 없어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 말하는 첫 번째 불만은 우리사회가 임산부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저자이며 저명한 산부인과 의사인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임신은 산모가 주변의 지지 속에서 자신의 몸과 아기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하며 “임신한 여성이 다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고 도움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은 너무나 근시안적이며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한꺼번에 위협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즉 여성들은 임신 기간 동안은 사회적으로 충분히 배려 받아야 하는 임시적 약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런 인식이 부족하다.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겪은 어려움들을 가장 먼저 이야기한다. 임신 말기가 되면 임산모들은 치골이 벌어져 서 있기가 힘들어진다. 이것은 아기가 골반에 자리잡으면서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또 부른 배로 인해 발을 제대로 볼 수 없어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불안하다. 그러나 임산모들의 이런 불편함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 남자들한테 한번도 자리양보 받은 적이 없어요. 배불러 서 있어도 다들 모른척하더라구요. 젊은 남자들 너무 얄미워요. 대오각성해야 돼요.”(황금희씨, 30대)

“버스를 타면 기사아저씨가 (내가) 앉을 때까지 신경 써서 기다려주고 배려해야 하는데 전혀 신경을 안 써서 깜짝깜짝 놀랐어요. 택시를 탔을 때도 얼마나 심하게 달리는지 중간에 내린 적도 있어요.”(이화씨, 30대)

“지하철에서 혹시나를 기대하며 노약자석 앞에 섰는데 앉아있던 20대 여성들이 모른척하더라구요. 그런데 60이 될까말까한 젊은 할아버지가 승차하자 스프링처럼 일어나는 거예요. 조만간 임산부가 될 수도 있는 20대 여성들조차 임산부를 외면하는 현실이 씁쓸했어요.”(김언정씨, 30대)

임신중인 직장여성들은 물론이고 전업주부일지라도 시장도 가야하고 병원도 가야하는데 ‘배불뚝이 아줌마가 왜 나와 돌아다니나’하는 시선 때문에 임신 8개월이 지나면 집 밖을 나가기가 무섭다는 여성들. 출산 경험이 있어 임산부의 힘듦을 절절히 이해하는 아주머니들만이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짐을 들어주더라고 꼬집는 이들은 학교와 사회에서 노인공경뿐만 아니라 임산부에 대한 배려도 교육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배가 남산 만한데도 나만 부려먹어

여성들이 토로하는 또 한가지 어려움은 임신 중에도 해야 하는 아내와 며느리 역할이다.

“평상시 가사일을 하지 않던 남편이 아내가 임신했다고 제대로 일을 하겠습니까. 사실 임신하게 되면 남편이 100% 가사일을 맡아도 힘들어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70% 정도는 남편이 해야 돼요.”(강시현씨, 30대)

“해산달 가까워서 시댁쪽 친척 한 분이 돌아가셨어요. 사흘동안 손님들이 들이닥치는데 내내 서서 일을 해야 했어요. 멀쩡한 남자들 다 놔두고 배가 남산같은 나를 부려먹은 거죠. 내가 며느리이니까. 누구 하나 임산부니까 들어가 쉬라고 하지 않았어요. 결국 그 여파로 아이도 빨리 나왔어요.”(아무개씨, 40대)

여성들은 임신 중에 배려 받지 못한 경험이 두고두고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고 입을 모은다. 남편과 시집식구들 모두 아이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임산부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심하다는 것이다. 이화씨는 이에 대해 불만을 얘기했더니 남편마저 ‘엄살’이라고 몰아 세우더라며 한숨을 쉰다.

임신은 질병?

임산부들은 분명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그렇다고 임신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병은 아니다. 배려가 아닌 염려는 도리어 임산부들을 좌절케 한다. 임신을 하면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김언정씨는 “배려를 안 해주기 때문이지 임신 자체 때문에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주변의 지나친 염려로 오히려 회사를 그만두는 여성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한다.

임신을 하게 되면 임산부의 가족들은 먹을 것, 입을 것, 해야 할 것에 대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낯선 사람들조차 임산부에게 다가와 배를 토닥거리면서 조언을 해준다. 임산부의 친구들은 제왕절개나 진통, 좋지 않은 임신결과 등에 관한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인 것처럼 말한다.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임신의 이미지는 임신을 언제 재앙을 몰고 올지 알 수 없는 위기상황으로 생각하게끔 만들어버린다. 결국 임산부는 환자가 아닌데도 환자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게 된다.

“임산부가 병원에 다니면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의사와의 상담이지 진료가 아니다”라는 황금희씨는 병원에서 임산부를 환자라고 부르는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영애씨(40대)도 “임신 6개월쯤에 조울증에 시달렸는데 아이 낳고 2∼3년 후에야 그게 급격한 호르몬 변화 때문이란 걸 알았다”면서 산부인과에 의사나 간호사 이외에 여자 상담사가 있어서 여성들이 자신의 몸의 변화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세세한 것들을 상담해주면서 그건 병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이라고 알려줬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돈 없으면 애도 못낳아

임신을 하면 돈 들어가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임신·출산과 관련된 것들은 하나같이 왜 그리도 비싼지.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와 닿는 것은 병원비다. 산부인과에서는 ‘정상적인’ 임산부들에게 한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방문해 초음파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초음파 검사라는 게 병원마다 가격이 천양지차라서 가장 싼 곳은 8천원부터 대개의 개인병원들은 2∼3만원, 종합병원은 5∼6만원, 이름난 병원은 8만원까지 받는다.

여성들은 초음파검사가 임산부에게 필수적인 것이라면 의료보험에 포함시켜야 하며 가격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여성들은 원하지 않는데도 병원측에서 강제로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호주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한 여성은 임신 중 초음파 검사를 단 한번 했을 뿐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한국의 임산부들은 출산할 즈음에는 초음파 사진이 수북하게 쌓일 정도다. 산부인과측은 태아가 기형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치료과정으로 초음파 검사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들은 병원이 태아를 볼모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자연분만을 특수분만으로 탈바꿈시켜 수중분만·르미에르분만·그네분만 등 갖은 분만방법을 늘어놓고 상품처럼 파는 병원을 상업적인 백화점에 비유하기도 한다.

“내가 다니는 병원 상담실에는 아예 임신·출산용품 직원이 있었어요. 임산부가 당하는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액세서리들만 넘치는 거예요. 상담을 받는 게 아니라 온갖 상품들의 설명을 듣는 거죠.”(황금희씨)

병원측의 불친절과 상업성에 치여 다시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분통을 터뜨리던 여성들은 한때 입고 말 블라우스 하나에 20만원을 호가하는 임부복으로 이야기를 옮겼다. 임신 5∼6개월이 되면 평상복은 더 이상 입을 수가 없다. 그러나 임부복을 사러간 여성들은 우선 ‘공주풍’의 남세스런 디자인에 놀라고 믿기지 않는 가격에 두 번 놀란다. ‘환하고 이쁜 옷을 입어야 태교에 좋다’는 어른들의 강요에 눈물을 머금고 사기도 하지만 커다란 박스티와 남편의 옷으로 버티어보기도 한다.

그나마 최근에는 직장여성들을 위해 평상복 스타일의 임산부용 의류 브랜드들이 많이 나오기는 했지만 가격면에서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여성들은 속옷 또한 임산부용을 따로 입어야 한다는 말에 거들 10만원, 브래지어 7만원, 팬티 3만원이라는 고가에 구입했지만 그것만큼 쓸모 없는 게 없다면서 절대 사지 말 것을 강력히 권한다. 아기장난감 대여점처럼 임부복도 대여해주거나 구제품을 싼값에 파는 가게들이 생겨난다면 여성들의 부담은 훨씬 줄어들 수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임부복 중고거래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단계다. 여성단체나 환경단체들도 새 사업으로 구상해 볼 만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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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보호 위해 이것부터

강하고 동시에 가장 상처받기 쉬운 임산부들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배려가 우선되지 않는 한 여성들에게 임신은 축복이 될 수 없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임신한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한다. 임신을 한 티가 덜 날수록 사람들은 더 좋아 보인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임신이란 견뎌내고 무시하고 극복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이런 사회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여성들은 임신을 꺼리고 싫어할 수밖에 없다.

혹여 임산부를 배려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이들은 김언정씨가 쓴 다음의 사항들을 꼭 실천하자!

▲버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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