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은 화장품의 역사에 길이 기억될 날이다. 한국산 화장품 광고가 첫 선을 보인 날이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한국 최초의 화장품인 ‘박가분’. 글씨만 가득한 박스 형식의 신문광고가 사진이 별로 없었던 당시 상황을 잘 말해준다. ‘살빛이 고와지고 죽은 깨 없어지는 박가분을 화장하실 때 잊지 마시옵.’이라는 광고 문구는 마치 시조를 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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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층 따른 차별화 전략 필수

그 시대 여성상 광고로 표현돼

컬러TV는 화장품 시장 활성화 일등공신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 법. 1930년대 화장품 광고는 전체 신문의 13∼16%를 차지할 정도였다. 물론 대부분이 일본 제품이었다. 광고가 많아지면서 글과 그림 일색이었던 화장품 광고에도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1940년의 일이다.

겉으로 보면 그다지 관계가 없는 듯한 전쟁과 화장품. 그러나 광고는 둘의 연관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1941년 진주만 사태 후 일본 화장품의 광고가 급속하게 줄어든 것이 그 한 부분이다. ‘결전 하 근로 여성의 건강미에는 반드시 영양 크림으로’라는 당시의 광고 문구에서도 연관성은 확인된다.

그러나 해방 후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화장품 시장은 전성기를 맞게된다. 화장품 완전 자유화에 따른 결과다. 이에 발맞춰 광고의 숫자와 형태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전체 지면이 8개에 불과했던 신문에서 5단·전면의 화장품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라디오 광고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순 한글로 제작된 것도 이 때다. 급기야 1970년에는 국내 화장품 광고·신문 인쇄사상 최초로 전면 컬러 광고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한편 1961년 태평양화학이 만든 업계 최초의 PR지인 ‘화장계’의 등장은 화장문화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델도 변했다. 초기에는 얼굴만 나오던 것이 1959년에는 수영복 차림의 여성 모델이 등장,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러나 미니스커트와 바캉스가 유행했던 당시 상황을 생각한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81년은 화장품 업계에 은총이 내린 시기. 컬러TV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색조 화장품을 비롯한 전체 화장품 시장이 활성화되는 데 있어 컬러TV는 일등 공신이었다. 화장품 광고가 활성화될 요소는 그 뿐만이 아니다. 1987년까지 줄곧 30개였던 일간신문이 1989년에 70개로 늘었고 하루에 12면으로 묶여있던 발행 면 수는 1989년에 20면으로 증가했다. 화장품 업체들의 고객층이 30대 이상의 여성에서 20대로 내려온 것도 이 즈음의 일이다.

광고 속 여성, 시대상 반영

화장품 광고의 주인공은 단연 여성이다. 광고 속에 비친 여성들의 모습에서 그 시대의 여성상을 발견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1980년 전에는 모델의 얼굴이나 전신이 나오는 정적인 모습의 광고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980년에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행글라이딩, 말타기 등 스포츠 장면이 자주 나오고 있는데 이는 여성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 흐름은 1990년대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산소 같은 여자’라는 카피로 인기를 모은 태평양화학의 ‘마몽드’가 그 대표격이다. 프랑스어로 ‘나의 세계’를 뜻하는 마몽드라는 브랜드에 걸맞게 ‘나의 삶은 나의 것, 성취는 남자의 것만은 아니다’라는 주제로 광고를 이끌어내 여성들의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모습을 광고로 그려냈다.

‘여성 크림에 신세지는 남성은 안 계십니까?’1962년 태평양화학이 선보인 ABC 남성 전용 크림의 광고 카피다. 머리를 단정하게 넘길 수 있는 포마드가 전부였던 시절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남성 포마드는 1950년이 지나서야 남성들의 품안에 다가갈 수 있었다. 일본 군국주의 하에서는 머리를 강제로 짧게 해야 했기에 머리 화장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방은 남성들에게 머리 기를 자유와 함께 포마드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도 안겨주었다. 1950년대는 그야말로 포마드의 전성시대였다. 20년 가까이 인기리에 팔렸던 포마드였지만 장발이 유행하기 시작한 1970년부터는 피부용 크림에 그 왕좌를 넘겨주게 된다.

‘남성이 화장품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 물음이 남성용 크림의 시대를 열게 만든 열쇠였다. 이 물음 덕분에 터프한 남성이 화장품을 쓴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남성은 스스로 사는 것보다 여성이 선택하는 제품을 쓰게 된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결국 남성용 화장품에서도 여성이 공략 대상이 됐다.

정형화돼지 않은 X세대 공략하기

흔히 X세대라 불리는 젊은 층만을 겨냥한 광고 전략이 나온 것은 1990년대의 일이다. 1993년에 출시된 ‘트윈엑스’와 ‘레쎄’는 톡톡 튀는 신세대들의 취향에 맞게 기존의 화장품 광고와는 차별화 된 내용으로 구성했다. 트윈엑스는 ‘나, X세대?나를 알 수 있는 건 오직 나!’라는 주제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갔다. 여기에 하나의 이미지만을 선호하지 않는 X세대의 취향에 맞춰 각각 핸섬하고 터프한 이미지의 대표격인 김원준·이병헌을 모델로 채용했다.

레쎄의 경우 ‘정형화돼지 않은 나의 시도’를 기조로 광고가 전개됐다. 그저 예쁜 모습보다는 바보스러운 표정 혹은 면도하는 여성을 내세움으로써 나만의 개성을 중시하는 신세대 여성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성년이 되기 6개월 전을 뜻하는 독특한 숫자 20½을 내세워 명확한 목표층을 설정하는 과감함도 보였다. 수요층을 정확하게 공략하는 마케팅이 무엇인지 트윈엑스와 레쎄는 광고로서 보여주었다.

조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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