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성 불능에 빠진 두 여자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통해 여성심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시도해온 연출가 임영웅 씨가 소설가 김형경의 작품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연극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이전 그의 소설 ‘담배 피우는 여자’로 성공적인 공연을 이뤄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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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소설을(2001년 11월 발행) 연극화하는 작업은 새로운 매체의 방식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텍스트의 흐름을 따라가며 작가 특유의 문체를 음미하는 소설읽기의 즐거움에 덧붙여 상상을 실재 무대에 재현해 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게 쏠쏠하다.

이 연극은 한마디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자 그 뿌리에 놓인 사랑의 통증을 철저히 해부하고 치료하는 과정이다. 두 여주인공 세진과 인혜는 학창시절부터 수십 년 지기다. 건축설계사로 카피라이터로 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두 여자는 그러나 각자 다른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무대에는 두 개의 다른 삶의 터가 준비돼 있다. 세진을 위한 정신분석의의 사무실, 그 반은 인혜의 방.

평범한 가정에서 모범적으로 자랐으나 성불구인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 이혼한 인혜는 자신의 삶과 사랑이 통속적이길 거부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유로운 성을 향유하는 듯한 인혜에 반해 세진은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외가에 버려지고 성인이 된 후 당한 성폭력으로 사랑불능, 성불능의 상태에 빠져 생의 가위눌림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이 연극의 흥미로운 점은 자신을 억누르는 고통의 단초를 찾아내기 위해 세진이 치료받는 과정에 있다. 심상한 듯, 그러나 “왜 자기 자신을 위해 분노하지 않느냐?”는 정신과 의사(박용수 분)의 질문에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지 않으려 방어의 벽을 치던 세진(이항나 분)이 점차 상처의 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그것을 보는 관객의 가슴에 퇴적된 사랑의 울화를 녹이는 주술치료와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성의 폭식증에 빠진 인혜가 사랑의 진정성에 다가가는 도정에서 만나는 ‘정선 아라리’ 가락이다. ‘통치마 밑에다 소주병을 차고서, 깊은 산 한중허리로 임 찾아가네...’처럼 통속의 본질을 확 드러내버리는 정선 아라리 가락은 무한히 원하지만 숨기는 것이 미덕이라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소심증을 가차 없이 비웃는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느끼는 사소한 상처를 못 느낄 거에요. 여성이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상처를 갖고 시작하는 셈이지요. 그래서 여성들이 무엇인가를 선택하려는 바로 그 순간 심리학적으로 의식보다 무의식이 먼저 움직입니다.” (김형경 작가의 말)

윤혜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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