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

새벽 2시.

두터운 점퍼로 가을을 꿀꺽 삼키며 겨울을 입질하고 있는 입동의 청계천 고가.

쌀쌀했던 기온이 잠시 누그러진 며칠동안 바쁘게 움직이는 일상들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일상들은 쇼핑객들의 옷차림에서 느낄 수 있었지만 밥상을 나르는 아줌마는 긴소매 티셔츠에 조끼, 앞치마를 두른 게 전부였다. 잠시나마 날씨가 주춤한 사이였을까. 입동의 새벽은 밥상을 나르는 아줌마에게는 계절적 의미를 찾기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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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주머니가 상가에 배달할 새벽 밥상을 머리에 이고 쇼핑객들 사이로 빠른 걸음을 옮기고 있다.<사진·이기태>

밥상 아줌마는 “아이고, 나 가야해”하며 환한 웃음을 던지고는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며 이내 쇼핑센터로 휙하고 사라진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을 때 두터운 점퍼 차림의 인파들이 쉴새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도매상은 주문된 점퍼 수량 확인에 여념이 없고 소비자는 옷감을 요모조모 들여다보고 점퍼를 확인한다.

6·13지방선거이후 청계천 주변을 일터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청계고가 아래 횡단보도를 지나며 입담을 나눈다. 화두는 청계천 복원사업에 따른 걱정거리 얘기로 시작해 청계천을 하천으로 다시 복원하자는 쪽과 섣부른 복원이 아니냐는 얘기로 공방을 벌이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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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 10년 경력인 유경자(30)씨가 여섯 개 바늘이 있는 컴퓨터 자수기 아래 샘플 원단을 끼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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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로변 인도에 내놓은 의류들 사이로 짐 자전거가 바쁘게 지나가고 있다.

오후 2시.

청계천은 가난한 서민들의 삶터다. 30여 년간 청계 5가에서 의류노점상을 하는 최점순(66)씨는 자신의 나이 30대 중반에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와 일터로 잡은 것이 청계천로변에서 노점상을 시작한 계기가 돼 지금까지 의류 소매 노점을 하고 있다.

“불안하지. 이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라고 청계천복원사업에 대해 불안한 심경을 털어놓는다. 5남매 중 막내를 지난 3월에 결혼시켰다는 그의 현실적인 고민은 무엇보다 일터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내 고민? 내 걱정은 노점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잖아.”

이런 걱정 뒤에는 당신의 노후와도 관련이 있다. 60세가 넘은 지금도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억척스럽고 가난한 삶터에 이제 일터의 소멸이란 작은 자의 또다른 사회적 소외에 직면해 있는 듯 보였다.

평화시장내 상가에 입주해 컴퓨터 자수 일을 하고 있는 이양희 실장(28)은 청계천 내 작업시스템에 대해 “전자동이면 이곳 청계천, 동대문에서 버티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메카는 동대문이다. 동대문을 찾는 소매상이나 소비자는 10대와 20대를 상대로 하거나 발빠른 패션의 변화와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며, “대량 생산이 아닌 아이디어 상품으로 1년에 서너개 이상의 상품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평화시장내 동화상가 등지에는 전자동화된 시스템 즉 컴퓨터 자수기 등을 마련해 새로운 디자인, 빠른 변화를 일궈내고 있다. 자수를 예로 들면 지난 60,70년대만 해도 충열된 두 눈을 누르며 미싱과 밤을 꼬박새며 돌려야 했지만 지금은 여섯 개 혹은 10여 개 이상의 바늘이 달린 컴퓨터 자수기를 이용하고 있다. 직원은 한 두명이 고작이다. 노동강도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는 얘기다.

노찾사의 노래 <사계>는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고 70,80년대 전후반을 노래했다. 이제 밤엔 쇼핑객들로 북적대고 미싱은 자동으로 바느질을 하고 있다.

사진·글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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