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땅에도 비는 내리고…

그 날은 비가 왔다.

비가 어찌나 그윽하게 내리는지 마치 안개로 떠 있다 제 힘에 겨워 내려앉는 듯했다. 차를 세우고 비오는 거리를 바라보니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이런 날은 제아무리 ‘먹고잽이’에다가 풍선같은 ‘뚱띠’라도 그리운 이가 떠오르는 법이다. 추억을 온몸에 휘감고 동네 어른을 만났다. 잘생긴 얼굴, 아니 잘생겼다기보다 예쁜 얼굴이다. 잘 웃는 모습이 소년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동네공부 시켜 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띄어 흔쾌히 따라 나섰다. 꼭 공부 못하는 사람이 공부 좋아한다고 하지요? 바로 접니다. 어라라? 근데 이 어르신이 원천유원지로 달려가는 게 아닌가. 원천유원지는 수원 소재라는 건 나도 알고 있는데…. 원천유원지는 가끔 머리 식히러 가는 곳이다. 큰 저수지를 빙 둘러싸고 있는 70년대식 놀이동산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음식점과 모텔도 제멋대로 번쩍거리는 곳이다.

“여기가 지금은 수원 땅이지만, 옛날에는 용인 땅이었지….” 말하시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여름이면 해마다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났단다. 옛날 수지읍의 동네병원에서 의사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고, 그 때만 해도 옛날이라 원천유원지의 저수지 사고는 용인의 문제였다.

그러다가 어쩐 일인지 수원으로 넘어갔다.

퇴락한 가문의 역사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넘어 인적 드문 어느 산 마을에 들어섰다. 야트막한 무덤 옆길에 차를 세우고 비오는 산길에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려섰다. 가는 꽃비가 옷을 적시는 가운데 동네 어르신은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여기가 이의동, 저쪽이 상현동, 저기는 하동인데 옛날에는 여기도 다 용인 땅이었어. 이 묘 앞에서 마을사람들이 해마다 ‘길마재(독바위) 줄다리기’ 대회를 했어. 대단했지.”

어르신은 그 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줄다리기 하는 흉내도 내보이셨다. 하기야 83년도에 수지 땅에서 수원 땅으로 넘어갔다니 옛날이라고 해 봐야 불과 20년도 안된 시절이다.

“이따 가보겠지만 연화장 자리가 용인하고 맞물려 있어. 옛날에는….”수원보다 용인에서 더 가까운 시설이 수원 소유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수지와 가깝다.

물론 납골당인 연화장은 수지 사람들도 이용하는 곳이다. 수원시 폐기물사업소도 이의동이니 예전엔 용인 땅이겠지. 수지에서 원천유원지로 가는 길에 있으니 당연히 수지네 땅인 줄 알았다.

수지가 수지만 맞는 줄 알았더니 꼭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빼앗긴 땅이름인지, 줘 버린 땅이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비오는 날 동네공부를 하며 짠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시작하는 이상화의 시가 빗속을 헤집고 가슴속으로 어왔다.

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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